금융지주 회장 승계, '외부인사 후보' 강요가 최선일까
입력 2022.12.05 07:00
    취재노트
    금감원 '지침'에 비상경영 BNK금융 내부 규정 변경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 있다지만 현장선 주먹구구
    "주주들은 외부인사 선호 안해. 금감원, 형식에 집착"
    회장-이사회 '짬짜미' 관행도 고쳐야...신뢰 회복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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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인사 회장후보'가 국내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 개선에 의미가 있을까. 적어도 금융감독원은 그렇게 생각하는듯 하다. 관련 규정이 명확치 않음에도 금감원은 감독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강요하고 있고, 이를 받아든 각 금융지주는 주먹구구식 적용으로 무력화시키고 있다.

      압력이 강해질수록 불만은 커진다. 회사 입장에선 억울하다. 막상 주주들은 경영 안정성을 고려해 외부인사를 선호하지 않는데, 금융당국이 형식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금감원 입장도 이해 못할 수준은 아니다. 경영진과 사외이사가 '짬짜미'해 회장을 뽑는 관행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달 4일, BNK금융지주가 이사회를 열고 최고경영자 추천 및 경영승계 절차 규정을 수정했다. 김지완 전 회장이 가족 이슈로 갑작스럽게 물러난 이후 비상경영체제가 가동됐는데, 새 회장을 뽑기 전 급히 '룰'(rule)부터 수정한 것이다.

      배경엔 금감원의 압박이 있었다는 전언이다. 이전 규정은 사실상 내부 승계를 명문화하고 있었다. 외부 인사는 이전 회장이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는 특정 상황에서만 추천이 가능했다. 규정 변경 이후, BNK금융지주는 2곳의 외부기관을 통해 새 회장 후보 추천을 받기로 했다.

      금감원은 2015년 지배구조 내부규범 제정 및 2016년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발효 이후 본격적으로 민간회사인 주요 금융지주의 회장 선임 절차에 관여해왔다. 물론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 각 지주회사의 '지배구조 모범규준'에는 '후보를 외부로부터 추천받을 수 있다'고만 돼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에는 '절차에 대해서는 이사회가 정한다'고 써있다.

      금감원의 무기는 '지침'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정 절차를 위해 외부인사 추천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지침에 사실 큰 디테일(세부요건)은 없다. 각 회사들은 이를 '최종후보군(숏리스트)에 최소 1명 이상 외부인사를 포함시키라'는 뜻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 결과 '보여주기식' 외부인사 후보가 난립하고 있다. 은퇴한 전직 계열사 임원을 외부인사로 포장해 후보로 올리는 게 2018년까지의 가장 흔한 수단이었다. 이런 관행이 이슈가 된 이후엔 그룹 밖에서 인사를 추천해오긴 하지만, '들러리'라는 오명까지 벗기진 못하고 있다.

      회장 후보군에 포함시키는 방식도 전근대적이다. 각 지주사는 내부규범을 통해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따로 지정한다. 이 부서에서 회장 후보군을 관리하며, 선정 절차가 개시되면 대략적인 잠재후보군(롱리스트)을 이사회에 보고한다.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외부인사 후보 당사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사회에서 압축후보군(숏리스트)를 확정하고 난 뒤, 해당 후보에게 전화해 "당신이 회장 숏리스트로 선정됐으니, 와서 관련 인사와 접촉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서명하시고, 때 되면 면접 보시라"라고 통보하는 식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현직 회장, 혹은 내부 후계자 위주로 이미 구도가 짜여진 후라는 점이다. 아예 경쟁구도가 형성되질 않는다. 

      2017년 KB금융의 경우 윤종규 현 회장을 제외한 후보자들이 모두 면접을 고사하며 싱겁게 윤 회장이 단독 후보로 선정됐다. 최근 신한금융의 경우도 비슷하다. 외부인사로 김병호 전 하나금융 부회장을 숏리스트에 포함시켰지만, 곧바로 면접 의사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김 후보는 불과 6개월 전인 지난 5월 베트남 호치민시개발은행 회장으로  취임해 현지 경영에 전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모양새가 좋지 않다보니 최근 2~3년 사이에는 숏리스트에 선정된 후보들이 일단 면접 절차에는 응하도록 하는 게 이사회의 이른바 '숙제'가 됐다.

      일례로 2017년 윤 회장 외 후보가 전원 사퇴했던 KB금융의 경우 2020년 회장 선정 절차땐 숏리스트 4명 전원이 면접에 응했다. 하나금융의 경우 2022년 회장 후보로 선정된 이성용 신한DS대표, 최희남 전 한국투자공사 사장이 면접에 참석했다. 앞서 2021년 외부인사 회장 후보였던 박진회 전 한국씨티은행장은 면접에 불참했다.

      외부인사 회장 후보들이 면접을 고사하는 일이 잦아지자, 금융권 일각에서는 지주 측에서 '최선을 다해주면 보답하겠다'며 계열사 사외이사직 등을 제의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기도 했다.

      기존 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이 야합해 '그들만의 리그'에서 회장을 선임하지 말고, 널리 좋은 이를 구해 경쟁시키라는 취지에 반대하는 이는 많지 않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점이다. 당장 외국인을 비롯한 핵심 주주들이 외부인사 후보를 선호하지 않는다. 국내 4대금융지주에서 채용비리 등 법적인 이슈가 얽히지 않았을 경우, 기존에 일하던 회장의 연임에 주주들이 찬성하는 비율은 최근 10년간 평균 95%에 달했다.

      물론 지주사 입장에서도 금융당국의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란 목소리가 나온다. 회장ㆍ사외이사ㆍ이사회 의장이 학연과 지연 등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던 역사가 불과 5~6년전에도 펼쳐졌다.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은 사외이사 다양화와 회장 후보군 다양화 외에는 마땅치 않은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너무 투박한 방식으로 필요 이상의 이슈화를 끌어낸 것 역시 사실이다. 윤석헌 전 원장 시절 금감원은 부원장ㆍ국장급 간부들이 직접 지주 사외이사들을 만나 특정 후보의 선임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직접 전달했다. 현 이복현 원장은 아예 이사회 의장들을 모아 놓고 회장 승계 시스템의 절차와 공정성 담보 등을 주제로 간담회를 열 정도였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개입이 통하려면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시선을 지난달로 돌려보자. BNK금융지주가 회장 관련 규정을 수정하고 난 뒤, BNK금융지주 노조, 지역사회, 지역 재계는 한 목소리로 '수정 반대' 의견을 내놨다. 금감원이 개입해 외부인사를 회장으로 추천 가능하게 바꾼 이유는 모피아(MOFIA;재무 관료 퇴직자)를 낙하산으로 내려 꽂기 위해서라는 의혹이 확산해서다.

      한 금융권 고위 임원은 "애초에 BNK금융이 내부 우선승계를 원칙으로 한 건 그만큼 정치적 외풍에 의한 낙하산 인사를 차단하고 지역 경제를 잘 아는 전문가가 경영을 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금감원의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외부인사 회장 후보'가 받아들여지려면 농협금융ㆍ지방금융지주 등 정부 입김을 우려하는 민간회사에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악습부터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