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L 시장 활성화 조짐에 채비 나서는 기관들…높은 조달비용·한정된 인력풀은 한계
입력 2022.12.05 07:00
    만기 연장해도 고금리 때문에 이자 부담 확대…"NPL 시장 확대될 것"
    외국계 PE·국내 공제회 등 운용사, NPL 관련 펀드 조성해 대응 나설 듯
    높은 조달금리·한정된 인력풀은 한계…"이번에도 기대감에 그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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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고금리 시대가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의 부채 상환 부담이 여느때보다 확대되고 있다. 부실채권(NPL)과 구조조정(CR) 시장이 다시금 활성화할 것이란 기대감이 전보다 커지면서 공제회, 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 기관투자자(이하 기관)들은 전담팀을 꾸리거나 관련 펀드를 만드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간 기관들은 높은 경쟁률에 따른 NPL 가격 하락으로 펀드 수익률을 맞추기 어려워 NPL 투자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장이 확대되면 투자기회를 엿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협소한 NPL 관련 인재 풀(Pool)을 비롯,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한 회사채나 CP(기업어음) 발행에 수반되는 비용이 높은 점은 부담 요소로 거론된다.

      "그래서, 이번엔 정말 NPL 시장이 커진대요?" (한 대형 자산운용사 운용역)

      지난 10년간 이어진 저금리 시대를 지나며, NPL 시장은 존재감을 잃어갔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NPL 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NPL은 은행에서 부동산담보대출을 받고 대출이자가 3개월 이상 연체된 무수익 여신이다. 은행은 건전성 확보를 위해 해당 자산을 유암코나 NPL 투자전문회사 등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매각한다. 정부는 부실화된 채권이 쏟아지는 것을 막고자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는 안을 택했고 은행권은 이에 따랐다. 덕분에 NPL 매각 규모는 세간의 기대처럼 확대가 되진 않았다.

      그러나 금리가 치솟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지적이다. 미국 연준(Fed)의 기조에 따라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잇따라 올리면서 가계를 비롯, 국내 기업들도 은행 대출에 대한 상환이 힘에 부치게 됐다. "현재로선 만기 연장이 된다고 해도 고금리 이자를 버틸 재간이 없는 상황이 됐다"라는 푸념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당장 내년 초부터 NPL 시장이 다시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는 배경이다. 심지어 정부 부처도 관련 전문가를 통해 NPL, CR 시장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더불어 부실 기업의 증가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자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실제로 대응에 나서려는 투자업계 움직임도 눈에 띈다. 우선 NPL 전담팀을 신설해 NPL 펀드를 조성하는 운용사들도 늘고 있다. 올해 중순에는 국내 일부 증권사들이 부동산PF 사업 관련 NPL을 관리하는 펀드를 조성한 바 있는데, 최근에는 대형 공제회들도 NPL 투자를 위한 블라인드펀드를 신설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시기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NPL 시장이 커졌던 것을 고려하면, 올해 중순쯤부터 NPL 관련 펀드를 만들 것 같다는 말이 많았다"라며 "NPL 투자를 위한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하는 공제회들은 그나마 투자할 자금이 남아있는 곳들이며 유동성이 남아있지 않은 곳들은 이마저도 어렵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NPL에 담보로 제공된 사업장을 인수하는 사례도 있다.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상위권인 D 건설사는 인허가가 진행돼 사업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사업장이 담보로 제공된 NPL을 최근 염가에 인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국계 PE들이 국내 NPL 및 CR 시장을 눈여겨보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다수의 외국계 PE들은 국내에 설립된 법인을 통해 국내 NPL 시장 확대 조짐을 살피고 있다. 부도가 날 가능성이 있는 건설사를 묻는 외국계 PE 관계자의 질문도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들은 부동산PF 위주로 사업을 전개해온 중소형 증권사를 인수하고자 하는 의지도 내비추고 있다.

      운용사들이 NPL 투자 채비에 새로이 나서는 것과 관련해 한 구조조정 관련 투자업계 관계자는 "운용사들은 펀드 수익률 7~8%를 맞춰줘야하는데, 그간 워낙 NPL 시장 경쟁이 치열했다보니 NPL 가격이 올라 수익률을 맞추기 어려워 투자에 나서는 움직임이 적었다"라면서 "예상대로 NPL 시장 규모가 커질 경우 NPL 가격이 안정화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관들은 주식·채권·부동산 등 투자할 곳이 없는 상태인 까닭에 필연적으로 구조조정 기업에 투자하는 스페셜시츄에이션 펀드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내다봤다.

      각 금융지주의 NPL 투자전문회사들도 오래 전부터 조직 재정비에 나선 상태다. 우리금융지주는 올초 NPL 투자 전문회사인 '우리금융에프앤아이'를 공식 출범시켰고 하나금융지주의 자회사인 하나에프앤아이도 기업구조조정 투자를 개시했다. 

      다만 신용평가업계는 대외적인 불확실성을 감안한다면 금융계열사인 투자전문회사들이 기투자한 NPL 자산의 회수가액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NPL 관련 인력 풀(Pool)의 부족도 여전한 한계점으로 거론된다. 지난 10년 동안의 호황기를 거치면서 NPL 운용역으로 지냈던 사람들은 주식, 채권 등 다른 시장을 커버하는 운용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NPL 시장은 '그들만의 리그'라며 소외된 영역이라는 의미의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고, NPL 운용역이 소위 '자본시장 내 3D 직업'이라고 여겨졌다고 이들은 회상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NPL 업계 자체를 떠나버린 인력이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한 NPL 관련 투자업계 관계자는 "NPL에 대한 세간의 기대가 큰 상황과 별개로, 관련 인력 부족과 더불어 NPL 투자대금 마련을 위한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발행의 조달 비용이 늘어난 점도 고려해야할 부분"이라며 "NPL 시장이 개막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또다시 기대감으로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