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이 앞장서는 ‘신(新) 관치’...금리 개입에 CEO 인사까지 혼란스런 금융권
입력 2022.12.15 07:00
    금융당국, 예금금리 및 은행채 자제까지 전방위 개입
    BNK금융 시작으로 우리금융 신한금융 등도 ‘압박설’
    금감원 필두로 재현되는 ‘신 관치금융’이란 지적도
    혼란스런 금융위기 속 당국의 금융권 개입 이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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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연말 은행권 인사를 앞두고 금융당국의 ‘신(新) 관치’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혼란스러운 금융시장 속 예금금리, 은행채 등 크고 작은 당국의 권고에 이어 금융지주 수장 인사에 개입한다는 ‘외압설’마저 불거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관치라는 세간의 지적을 적극 부인하고 있지만 이미 금융권에서는 금융감독원(금감원)을 비롯한 당국의 눈치를 적극 살피는 모양새다. 아직 정권 교체 초기인 만큼 내년에도 금융사들을 행한 당국의 압박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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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최근 BNK금융지주, 신한금융그룹, NH농협금융 등 굵직한 금융지주 회장 인선의 윤곽이 드러난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관치금융’ 색채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무조정실장 출신인 이석준 차기 NH농협금융 회장은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로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초기 좌장을 맡아 정책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국정감사 이후 자진 사퇴한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의 자리에도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박대동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 등 관료 출신 인사들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남은 금융권 인사에도 모피아(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가 대거 등장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앞서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금융권 예상을 뒤엎고 용퇴를 결정한 데에도 정부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란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 회장의 용퇴는 외부는 물론 신한금융 내부에서도 뜻밖이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조 회장이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면접까지 참여했다가 자진 사퇴를 밝혔다는 점 역시 석연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연말 인사철 이전에도 이복현 금감원장을 필두로 크고 작은 금융권 개입은 적지 않았다. 앞서 강원도 레고랜드 및 흥국생명 사태 등 채권시장 혼란이 정점을 찍었을 당시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당분간 은행채 발행을 자제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이에 유동성 위기 국면을 우려한 은행들이 수신금리 인상 등으로 대응방안을 마련하자, 이번에는 금리경쟁을 삼갈 것을 권고해 금융권에서는 ‘은행들의 손발을 묶어놨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당장 은행권에 보험사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채권안정펀드(채안펀드) 출자 등 시장 안정을 위한 크고 작은 요청을 해둔 상황에서 은행권에만 부담을 지운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그동안 국내 금융 역사에서 관치금융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새 정권 들어 그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는 평가다. 검사 출신이자 윤 대통령 사단으로 불리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금감원 수장을 맡은 뒤로 검사국 내 지위가 올랐을 뿐 아니라 금융사에 ‘칼끝’을 휘두르는 사례도 많아졌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이 원장이 취임한 뒤로 김지완 전 BNK금융지주 회장의 ‘자녀 특혜 의혹’과 관련한 수사가 급물살을 탔고,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두고서는 이 원장이 직접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 원장이 취임한 뒤로 이전과 달리 금감원 내에서 금융사를 대상으로 한 검사 진행 속도가 빨라진 분위기”라며 “금융위원회(금융위)보다도 금감원이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민간 금융사들도 적응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우리금융 및 KB금융 등 아직 인사가 나지 않은 금융지주 역시 회장 인사 결과를 점치기 어렵다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금융권에서는 당분간 새 정권 입김을 각별히 주의하는 모양새다. 금융지주 회장 인사 등 굵직한 건들은 물론, 은행채 발행이나 금리 인상 등 앞으로 시중은행의 영업과 관련한 사항에서도 당분간 당국의 눈치를 적극 살피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외이사들의 임기가 내년 초 대거 만료된다는 점도 금융지주들로선 불안요소다.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들 가운데 내년 초 임기가 끝나는 이사는 총 41명으로 전체의 약 70%가 넘는다. 이 때문에 인사 시즌을 맞아 당국이 금융지주 이사진을 비롯한 지배구조 개편에도 손을 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원장은 지난달 각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금융사 지배구조의 핵심축인 이사회와 경영진의 구성 및 선임 절차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작년 국정감사 이후 김 전 BNK금융지주 회장 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돼 결국 자진 사퇴로 이어지는 것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올 것이 왔다’라는 평이 많았다. 손 회장의 경우에도 금융당국에서 불완전판매와 관련한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사실상 연임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조 회장의 용퇴를 두고서도 타 금융사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