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봐도 'R' 신호…불황과 침체에 대비해야 할 자본시장
입력 2022.12.21 07:00
    유동성 과다 호황 단기간에 사라진 2022년
    내년 자금시장 경색ㆍ경기침체ㆍ거래절벽 우려
    부문별 전략ㆍ목표 구체적으로 세워야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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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넘치던 유동성과 치솟는 밸류에이션을 향유하던 호시절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금리인상으로 촉발된 올 하반기 시장경색은 기업ㆍ금융사ㆍ사모펀드(PEF)를 모두 움츠리게 했다. 

      2023년 상황은 더욱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미국 경기침체 우려와 중국경제 위기설 발발, 국제유가와 원화값 하락 등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신규 투자는 커녕, 비용감축에 안간힘을 쓰며 금융사들은 자본확충에 혈안이 되어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R' (Recession)의 신호만 가득하다. 침체와 불황에 대비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M&A거래. 올해는 '굽기' 어려웠는데 내년엔 '재료찾기'도 어려워진다? 

      올 한해 대기업 혹은 막강한 실행력을 갖춘 IT기업의 해외투자나 대형 사모펀드(PEF)의 신규투자가 없지는 않았다. 롯데그룹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ㆍ네이버의 포쉬마크 인수ㆍ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은 어려운 시장 상황에도 불구, 단행한 의미 있는 거래들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수면 아래 드러나지 않은 투자와 거래건들이 쿠킹 과정에서 엎어지거나 계약서 작성 직전까지 갔다가 내년 이후로 밀리거나 파기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해당 회사의 주가나 실적이 너무 떨어지거나 인수자금 절반 가까이를 채워준 은행ㆍ증권사들이 인수금융 제공 자체를 꺼리면서 돈을 못 모으는 일들이 많았다. 상황은 새해에 더 심해질 전망이다. 

      매각 측에서 투자매물이 나와야 하는데 지난 10여년간 기업 혹은 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움직임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몸을 사려왔고 이런 시기에 급매물(Fire Sale)로 비핵심사업 분할(Carved out)해서 매각해봤자 제 값을 못 받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중견ㆍ중소기업들 사이에선 어떻게든 버티면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지 오래. 이런 상황이니 올해는 자칫 쿠킹은 커녕, 딜소싱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어떻게든 거래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모펀드(PEF)나 벤처자금들은 '전략'을 명확히 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PE들은 한국내 투자비중을 늘릴 것이냐 줄일 것이냐,  어느 정도 수익성을 기대하고 글로벌 인력과 리소스를 배분하느냐를 고민할 상황이다. 리즈널 혹은 로컬 PE들은 바이아웃 거래가 어렵다면 그로쓰캐피탈 투자건을 더 발굴할지, 올해 투자 빈티지에서 어느 정도 이익을 감안할지를 방침을 정해야 할 상황이다. 

      기업공개(IPO)시장 내년 침체 본격화…공모주 시장 '꽁꽁'

      최근 2년간 '황금기'를 구가했던 기업공개(IPO) 시장도 내년엔 본격적인 침체에 들어갈 전망이다. 공모주 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완전히 얼어붙으며 업종ㆍ규모를 불문하고 거래 소화가 쉽지 않은 상황인 까닭이다. 

      연말은 보통 IPO 대목으로 꼽히지만, 최근 한 달 새 공모를 정상적으로 진행한 곳은 바이오노트 한 곳 뿐이다. 그나마도 공모가를 공모희망가 밴드 최하단의 절반 수준으로 결정해야 했다. 올해에만 13곳의 기업이 상장 절차를 철회했고, 12월 들어서는 사실상 원금보장 상품에 가까운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마저 잇따라 기관 수요 모집에 실패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년 중 예정된 빅딜(big deal)이 없는 건 아니다. 올해 상장을 시도했다가 철회한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오일뱅크, SK쉴더스, 원스토어, 골프존커머스, CJ올리브영, 라이온하트스튜디오 등 공모 규모가 최소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에 이르는 곳들이 대기하고 있다. 11번가나 케이뱅크, 컬리 등 2023년을 타깃으로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회사들도 있다.

      다만 현재 이들 중 구체적이고 본격적으로 상장 준비를 진행하고 있는 회사는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최근 한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글로벌 기준금리 인상 기조는 어느 정도 일단락 된만큼, 공모주 시장의 분위기만 다소 돌아선다면 다소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상장을 진행하려는 회사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시가 어느정도 방향을 잡을 때까지 주식시장에선 '불황형 자본조달'이 이어질 전망이다. 유상증자를 통해 급한 불을 끄려는 금융회사ㆍ코스닥 상장사들의 자금 수요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한 공모 전환사채(CB) 등 '공모 메자닌 시장'의 부활을 점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채권시장 '크레딧 이벤트'에 허덕…내년 좀 낫겠지만 그래도 걱정

      부채자본시장(DCM)은 롤러코스터 타듯 상반기 고점에서 하반기 저점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1년 안에 극적으로 시장 분위기가 바뀐 해는 흔하지 않다. 연초만해도 저금리 기조에 힘입어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이 줄을 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바뀐다는 기대감 속에 신규 투자 자금 수요가 늘면서 우량 대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하반기, 특히 4분기 접어들면서 예상치도 못한 크레딧 이벤트 들이 속속 터지면서 분위기는 말 그대로 180도 반전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지급보증 불가 가능성을 시사한 레고랜드 PF-ABCP 디폴트 사태, 영구채의 만기가 정말 ‘영구적’일 수 있다는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연기 사태가 정말 약속이라도 한 듯 연이어 터졌다. 시장 참여자들간의 신뢰가 한 순간에 무너지자 채권 시장은 급속도로 경색됐고, 이는 잠재적 불안 요소였던 한전채와 부동산금융 시장의 트리거를 건들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를 방불케 할 정도로 국내 금융시장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렇다보니 DCM 부문에서 증권사들의 올해 순위 경쟁을 논하는 건 큰 의미가 없게 됐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우량기업들의 대규모 미매각들이 속속 등장했고 주관증권사들은 시장에서 소화하지 못한 회사채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됐다. 힘들 때 도와줌으로써 내년 DCM 실적 또는 그 이상의 딜(Deal) 주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길 바랄 뿐이다. 

      문제는 내년. 그래도 올해보다는 기업들의 회사채발행과 자금조달 수요가 더 있을 것으로는 보는 분위기다. 하지만 금리수준이 워낙 과거와 비교할바가 못되어 기업들의 의사결정이 쉽지 않다. 더 큰 우려는 행여나 또다른 크레딧 이벤트가 발발해서 시장을 다시 뒤숭숭하게 하지 않을까 여부다. 금융사들도 이런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고민하고, 모호하지 않은 구체적이고 확실한 전략과 대비책을 세워야 할 시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