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2011? 저축은행 부실화 우려...'새해가 고비'
입력 2023.01.03 07:00
    저축은행 경쟁적 수신 금리 인상...2011년 '데자뷔'
    3년새 3.5배로 커진 부동산금융 본격 부실화 우려
    수신금리 먼저 치솟으며 예대금리차 급락...수익 악화
    자본확충 가능한 저축은행 생존력 차별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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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2011년 7월, 한 저축은행이 7년 만기 적금 상품을 선보였다. 이율은 연 8%였다. 당시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3.25%, 저축은행 평균 수신금리는 5%였다. 금융당국의 건전성 점검을 앞두고 유동성이 메마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역(逆)마진 상품을 내놓은 것이었다. 이 저축은행의 이름은 신라저축은행이었고, 8% 적금 출시 후 2년도 채 되지 않은 2013년 4월 결국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최근 시중 저축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수신 상품 금리를 올리며, 2011년 저축은행 연쇄 영업정지 사태를 떠올리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스(PF)라는 주력 수익원이 부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동성이 메마르며, 유동성 확보를 위해 고금리 예적금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데자뷔(deja vu;기시감)가 느껴진다는 평가다.

      신용평가사들도 한 목소리로 저축은행에 대한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한국기업평가ㆍ한국신용평가ㆍ나이스신용평가 등 신용평가 3사는 모두 저축은행의 새해 전망을 사업환경 '비우호적', 실적전망 '저하', 신용등급 전망 '부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장 큰 부실 위험은 역시 부동산 관련 금융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도화선이 된 부산저축은행 사태 역시 1조원에 가까웠던 부동산 관련 대출의 연쇄 부실화에서 시작됐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현재 국내 저축은행의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금융 비중은 196%에 이른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말 기준으로는 80%에 불과했다. 

      1조5000원 안팎이었던 부동산금융 전체 규모도 3년새 3.5배 이상 늘어나며 4조원을 넘어섰다. 이중 본PF보다 부실 위험이 큰 브릿지론 비중이 절반에 육박한다. 비(非)아파트 비중이 85%, 후분양 비중이 65%로 분양 위험 역시 높다는 분석이다. 평균 담보비율(LTV)은 75%로, 낙찰가율이 떨어질수록 손실 위험이 커진다. 지난 9월 80.1%였던 평균 낙찰가율은 지난 11월 76.2%로 급락한 상태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저축은행 여신포트폴리오 특성 상 전체 여신 내 비중이 높아 저축은행 자산건전성 지표의 방향성은 부동산 경기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며 "2023년 PF대출 및 브릿지론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의 신용위험 확대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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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은행의 핵심 수익원이라고 할 수 있는 예대마진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예금 만기는 평균 1~2년이고 대출 만기는 평균 3~4년이다보니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한 부담이 예금에 우선 전가된 것이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아직 양호한 예대마진을 유지하고 있지만, 저축은행의 경우 평균 예대금리차가 지난 9월 2%대에서 10월 1.8%대로 급락했다. 

      반면 대출금리 상승은 기준금리 인상분의 반영이 더딘 상태다. 게다가 일반 대출 20%, 중금리대출 16.3%라는 법정 상한선도 있다. 저축은행 평균 유동성비율은 140%로 규제비율인 100%를 크게 상회하지만, 1년 이내 만기도래 자산/부채 비율이 73%로 관리 부담은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12조원에 달하는 개인 신용대출의 부실화도 부담이다. 저축은행 가계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2.1%에서 올해 6월말 기준 3.1%로 급등세다.

      한국기업평가는 "수신금리 상향조정에 따른 수익성 저하가 자본적정성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조달금리 상승에 대응할 만한 수익성 개선 방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새해 저축은행 업계는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과 시중 유동성 감소 등의 영향으로 영업환경은 갈수록 악화하는 가운데 ▲예대금리차는 더욱 줄어들며 ▲부동산금융 및 가계신용대출 자산의 대손부담은 커지고 ▲건전성 하락 추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큰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결국 자본확충을 통한 위험 완충이 가능한 곳인지 여부가 생존을 좌우할 변수가 될 전망이다. 2019년말 14.8%였던 저축은행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은 현재 12.9%까지 내려온 상태다. 최근 3년간 유동성 팽창 국면에서 저축은행 자산은 크게 늘었지만, 자본확충 속도는 이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지 여부가 이제 더욱 중요해질 거란 분석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수시입출금통장에 5% 금리를 주는 상품이 출시된 것을 보고 저축은행권의 유동성 확보 부담이 더욱 피부에 와 닿았다"며 "이전에 비해 저축은행 건전성도 크게 좋아지긴 했지만, 지난 하반기 '만기연장'을 통해 부실화를 피한 자산들의 실제 상환 여부가 판명날 새해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큰 과제"라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국내 은행권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당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31곳의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고, 예금보험공사에서 부실 정리를 위해 27조원의 공적자금이 지원됐다. 이 중 지난해 말까지 회수한 자금은 13조5500억여원으로 절반에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