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도 메리츠, 저기서도 메리츠…올해 금고문 활짝?
입력 2023.01.19 07:00
    부동산PF 집중하던 메리츠에 우려 섞인 관전평
    메리츠證 실적 방어 성공에 대규모 현금 확보
    연초부터 롯데건설 백기사로 등장한 메리츠
    대기업 파트너 맞아 제도권 금융지주 도약?
    "부동산 하락기 대규모 출자 준비" 전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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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자본시장 이해관계자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금융사는 단연 메리츠금융그룹이다. 지난해엔 주주환원책과 지배구조 개편 발표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올해 초엔 존 리 전 대표의 퇴진으로 내홍을 겪던 메리츠자산운용을 매각하며 이목을 끌었다. 무엇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특화한 메리츠그룹이 침체기에 접어든 부동산금융 시장에서 어떠한 전략을 펼칠지에 대한 기대감과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이제껏 메리츠금융그룹은 NH·신한·KB·우리·하나 등과 같은 메이저 금융회사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단순 비교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지만 은행과 비은행 사업의 균형을 맞추고, 전통적인 기업금융 부문에 힘을 쏟으며 그룹사 전반의 시너지를 이끌어내는 대형 금융지주회사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메리츠가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부동산 부문이다. 종합금융회사업(종금)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어 다른 일반 증권사에 비해 자본의 규제를 받지 않은 탓에 적극적인 신용공여 업무를 할 수 있었고, 이에 특화한 공격적인 영업을 이어왔다.

      부동산 부문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만큼 수익성보단 리스크가 더 부각돼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부동산 경기 침체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난해말부턴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가 컸다. 그러나 국내 증권사들의 지난해 3분기 실적이 발표되고 한 해 추정치가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우려는 부러움(?)으로 변모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예상(에프앤가이드 기준)되는 메리츠증권의 영업이익은 약 9470억원이다. 미래에셋증권의 영업이익 전망치 약 9739억원에 이어 국내 증권사 가운데 가장 큰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메리츠증권의 2021년 영업이익은 약 9490억원으로 지난해와 유사한 수준인 반면 국내 대형 증권사들의 실적 감소치는 대부분 두 자릿수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메리츠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부동산 관련 익스포저에 대한 우려는 끊이질 않았지만 현재 상황에선 자체적으로 감당할만한 수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발부채와 대출채권을 비롯한 메리츠증권의 부동산 익스포저 규모는 2020년 3월 말 기준 9조원을 웃돌았으나 지난해 3분기 기준 5조9000억원 수준까지 감소했다. 고위험 PF 사업장의 비중도 다른 초대형 증권사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메리츠화재의 경우 부동산PF 대출을 취급함에 있어 A급 이상 시공사의 책임준공과, 선순위 투자, 담보인정비율(LTV) 50% 이하 등의 투자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부각하지 않는다는 평가다. 메리츠캐피탈 또한 부동산PF 대출의 90% 이상이 선순위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메리츠증권을 중심으로 메리츠그룹이 상대적으로 고위험 부동산PF 익스포저를 줄이는 과정을 메리츠가 잠시 '숨고르기'에 돌입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부동산 부문에 대한 신규 출자를 자제해 현금을 확보하고, 부동산의 본격적인 하락기 및 경기 침체기에 자금을 대거 풀어 자산을 확보하겠단 기조가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계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메리츠그룹이 고위험 부동산PF 익스포저를 꾸준히 줄여왔고 특히 지난해부터는 부동산과 관련한 신규 투자를 거의 하지 않으면서 현금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며 "부동산 가치가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한 올해부터는 대규모 출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높다"고 평가했다.

      최근 롯데그룹과의 전략적 협업도 유사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투자는 메리츠그룹에 새로운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도 나온다.

      롯데건설의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롯데그룹 전반의 리스크로 전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롯데건설은 15% 이상, 최대 20% 수준의 고금리 외부 자금조달을 추진했고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십시일반 대여금을 출연했다. 이 가운데 백기사로 나선 곳이 메리츠그룹이다. 메리츠그룹은 롯데건설과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매입 투자 협약을 체결하며 롯데그룹 계열사와 함께 총 1조5000억원을 투자하는데 9000억원가량을 출자했다.

      9000억원의 자금은 선순위 대출이다. 물론 1조5000억원의 자금만으로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완전히 종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메리츠의 입장에선 롯데물산, 호텔롯데가 원리금 상환까지 중첩해 이자자금보충 의무를 부담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상당히 안정적인 구조를 짠 것으로 평가 받는다. 상대적으로 낮은 재무 위험으로 대기업과 전략적투자자(SI)와 공고한 파트너십 관계를 맺으면서 메이저 금융사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단 의견도 적지 않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금융업계에선 올해부터 롯데그룹에서 파생할 거래들에 관심이 상당히 높다"며 "향후 예상 가능한 자본시장 거래에서 다른 금융기관과 비교해 메리츠그룹이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의도 증권가에선 메리츠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에 백기사로 등장하는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롯데건설과 함께 유동성 위기 상황으로 거론되는 중견 건설회사에 출자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물론 금리의 가파른 상승기, 부동산의 가파른 하락기, 유동성 위기의 기업들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메리츠의 소위 '줍줍' 전략이 빛을 발할 수 있는지는 지켜봐야 한다. 현재 상황에선 메리츠금융지주, 메리츠증권, 메리츠화재 등 주요 계열사들의 주가가 연일 고공행진하며 투자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 완료 이후 주주환원책의 이행, 공격적인 사업 전략의 성과 등을 숫자로 증명해야하는 것이 가장 큰 현안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