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리스크' 도사리는 이머징마켓…투자회수 불안감 커지기 시작
입력 2023.01.26 07:00
    성장세에 각광받던 이머징마켓 투자시장
    지정학 리스크·사기 불안에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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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해외서 사업기회를 찾는 기업이 늘며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은 크게 주목받아왔다. 선진국 대비 낮은 진입장벽과 높은 성장 기대감이 그 배경이었다. 시장에 유동성이 넘치던 2020년에는, 국내 투자사들이 이머징마켓에서 성장세를 보이는 스타트업들을 펀드에 담는 데 열을 올리기도 했다.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편인 이머징마켓의 경제 성장 둔화가 예상되고 있다. 투자건 회수에 대한 우려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한 번이라도 신흥시장 투자를 검토해본 투자업계 관계자들이 그간 깨달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아봤다.

      먼저 70년 넘게 분쟁을 이어오고 있는 파키스탄과 인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대표적이다.

      최근 롯데케미칼은 파키스탄 자회사인 LCPL(LOTTE CHEMICAL Pakistan Limited)을 파키스탄 화학 기업에 매각했다. LCPL은 롯데케미칼이 2009년 네덜란드 페인트업체인 악조노벨로부터 약 147억원에 인수한 PTA(테레프탈산) 기업이다. 

      14년 만에 차익을 1800억원을 올리며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롯데그룹의 고민도 만만찮았던 것 같다. 외화반출 이슈 때문이다. 파키스탄처럼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국가들은 유사시 외화반출을 꺼릴 위험이 잠재 돼 있다.

      롯데그룹은 해당 리스크를 최소화하길 원했다. 롯데케미칼이 LCPL 매각에 나설 당시 다수의 원매자가 인수 의사를 밝혔는데, 롯데그룹은 파키스탄 현지 투자회사 아시아팍(Asiapak)과 NH투자증권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선정하려는 의지가 큰 분위기였다. 국내 증권사 펀드를 통해 국내 통화로 인수대금을 수월하게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NH투자증권은 투자 검토를 중단했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안하면 회수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결국 현지 화학회사에 매각하게 된 롯데케미칼 측은 "외화반출 리스크를 인지하고 있으며 관련 장치를 마련해뒀다"라고 설명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파키스탄 관련 투자는 다소 위험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국내에선 사모펀드(PEF) 운용사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가 2011년 파키스탄대우버스를 인수한 펀드의 GP로 참여한 바 있는데, 해당 건 이후 파키스탄 관련 투자는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피치,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도 지난해 부채부담이 크다는 점을 근거로 파키스탄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한 상태다.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크다고 평가받는 나라들은 대체로 투자대상으로 잘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대형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파키스탄, 인도 이런 곳에 투자를 위한 출장을 간다고 하면 오히려 말리는 분위기"라며 "가더라도 불의의 사고와 관련해 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인도도 코로나 확산 이후 '뜨는 투자처'로 떠올랐다. 세계 2위 인구 대국으로 당시 투자 열기가 상당했던 플랫폼 관련 스타트업들의 월간활성화사용자수(MAU) 급증을 기대할 수 있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코로나 봉쇄조치가 완화된 2020년 6월부터 인도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입이 확대되며 해당 연도 상반기 기준 FDI 투자액은 400억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VC 뿐만 아니라 네이버 등 일반 기업들도 인도 스타트업 투자에 관심을 가졌다.

      현 시점에선 인도 또한 쉽지 않은 투자처라고 입을 모은다. 특허법의 기준이 다소 모호한 까닭에 투자한 기업과 유사한 사업을 영위하는 또다른 기업이 생기더라도 대법원의 판결까지 20년 가까이 소요돼 대응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인도의 비누 제조기업 실사에 나섰다가, 종교를 기반으로 인건비를 절약하는 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회상했다.

      예기치 못한 리스크가 늘 도사리는 국가로는 몽골, 중국, 인도네시아를 꼽기도 한다. 

      과거부터 국내 기업들이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자로 다수 뛰어들었던 몽골. 포스코그룹은 2017년 몽골의 정치·경제적 혼란을 원인으로 들며, 2012년부터 추진하던 몽골 석탄열병합발전소 건립 프로젝트에서 철수했다. 몽골의 아파트와 석탄화력발전소를 잇는 온수관을 유목민들이 훼손해, 온수를 훔쳐쓰던 것을 나중에 발견한 얘기도 회자된다.

      중국 또한 투자금 회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곳 중 하나다. 중국 제조기업에 투자한 한 PEF는, 해당 기업이 회생절차에 들어감에 따라 자산 일부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는 롯데케미칼이 반텐주에 초대형 석유화학단지를 짓는 '라인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거나 현대차가 인도네시아 상용차 시장에 뛰어드는 등 국내 대기업이 기회의 장으로 여기는 곳이다. 그러나 역사가 짧고 섬이 많이 중앙정부만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 한계로 지목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도 어렵지만 회수가 더 어려운 것이 이머징마켓 투자임을 뒤늦게 깨닫는 분위기"라며 "이머징마켓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여러 기업들이 사업 기회를 노리지만, 대기업조차 문서 위조나 지정학적 리스크 검토에 애를 먹기도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