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PF 셀다운펀드' 출시설…2008년의 기시감
입력 2023.01.30 07:00
    취재노트
    美, 펀드 포트폴리오 지분 유동화 상품 'CFO' 경고등
    韓, 증권사들 PF대출 묶은 PF 셀다운펀드 출시 고민
    "2008년 금융위기 단초된 CDO와 유사" 평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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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미국 금융가에선 펀드담보부증권(CFO; Collateralized Fund Obligation)의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일종의 자산담보부증권(ABS)인 CFO는 펀드 운용사가 보유한 기업 포트폴리오 지분을 유동화해 자금을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펀드레이징 시장이 급격히 경색하면서 지난해부터 해당 증권의 발행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국 금융당국(보험감독자협의회; NAIC)이 CFO 리스크를 짚기 시작한 이유는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미국은 2000년대 초부터 2008년 금융위기 직전까지, 전쟁의 장기화 속에 경기 부양을 위한 저금리 기조를 이어갔고 이는 누구든 돈을 빌려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했다. 고객의 이자 부담은 적고, 주택 가격은 상승하는 추세였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은 우량등급(Prime), 중간등급(Alternative; Alt-A), 비우량등급(Subprime)을 막론하고 대출 상품을 팔 수 있었다.

      멈출 것 같지 않았던 부동산 가격의 고공행진이 멈춘 건 2006년.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고객군은 역시 비우량등급(Subprime)이었다. 주택담보대출(Mortgage)의 상환 능력은 높지 않은데 주택가격이 떨어지자 시세 차익으로 대출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금융회사들은 주택저당증권(MBS)을 발행하고, 투자은행(IB)들은 MBS를 사들여 이를 조합해 부채담보부증권(CDO)를 발행하며 자금 흐름을 만들어 냈는데, 비우량(서브프라임) 등급 대출이 부실화하자 CDO 상품과 투자자들의 연쇄적인 부실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최근 우리나라 금융기관들, 특히 중소형 증권사들 일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채권을 한데 묶어 투자자들에게 셀다운(재판매)하는 상품, 이른바 PF셀다운펀드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 개별 사업장의 PF 대출에 대해 고정적인 수익을 공유하는 상품은 종종 찾아볼 수 있었지만, 수십 곳의 PF 대출 채권을 묶어 상품화 해 투자자를 모집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실제로 국내 한 중소형 증권사는 보유하고 있는 수십억원 단위의 PF 대출 채권을 묶어 할인율을 적용해 투자자들을 모집하는 PF셀다운펀드 출시를 구상중이다. 어떤 자산을 포함할지, 그리고 할인율을 비롯한 세부사항은 구체화하지 않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투자자를 모아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당히 높은 할인율을 적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셀다운펀드에 우량 자산만으로 구성돼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고, 할인율까지 높게 책정된다면 투자자들에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부동산 PF 상황을 고려하면 리스크가 작은 우량 사업장으로 여길 수 있는 곳이 과연 몇 곳이나 될 지 예단하기 어렵다. 특히 규모가 작은 중소형 증권사들이 주로 담고 있는 지방 PF 사업장은 이미 부실화한 곳들이 많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상품과 마찬가지로 CFO 역시 포트폴리오 지분에 대한 신용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개별 PF 사업장에 대한 평가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에서 경고등이 켜진 펀드담보부증권(CFO), 2008년 금융위기의 단초가 된 부채담보부증권(CDO), 불안한 부동산 시장 속 등장하기 시작한 한국의 PF셀다운펀드의 공통점은 한데 묶인 자산중 일부가 부실화하면 해당 상품은 물론 투자자들까지 연쇄적으로 리스크가 전이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2023년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은 급등세가 시작한 2019년 이전으로 회기하고 있다. 주택·오피스·인프라를 막론하고 자산 가치는 떨어지고, 금리 상승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대형 건설사들마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우발 채무, 악성 PF에 대처하기 위해 15%가 넘는 금리를 감수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10여년전 저축은행 사태를 겪은 학습효과에 정부는 금융기관을 총동원해 부동산 PF의 위기가 경제 전반의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은 인정할만 하지만, 어디까지나 유통 시장의 자금 경색을 막아내는 유동성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미봉책으로 볼 수 있다.

      시공사의 우발채무는 증가하고, 분양 시장은 얼어붙고, 착공도 하지 못한 PF 사업장의 M&A 매물도 등장하는 상황임에도 PF대출의 사실상 무조건적인 연장, 수익성 검토도 마치지 못한 브릿지론의 본PF 전환 등 정부의 PF안정화 대책들이 마치 부동산 시장에 자금이 잘 돌고 있는 듯한 착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