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후보가 소환한 '황영기의 추억'...머나먼 우리금융의 '안정'
입력 2023.01.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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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윤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 (그래픽=윤수민 기자)

      "관가에선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에 대한 평가가 당연히 좋죠.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지 않은 시점에 모피아(재정부 출신 관료)의 대부격인 인물이 온다는 건 우리금융에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우리금융 내부 사람을 회장에 앉히자고 손태승 회장을 굳이 주저 앉혔을까요?" (한 금융권 관계자)

      "우리금융 내부에서는 당연히 내부 출신을 원하죠. 매크로 환경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지주회사 재출범 이후 성장 전략을 세우고 이끌어가야 하는데 외부 인사가 오면 현황을 이해하는 데만도 한 세월이 소요될 겁니다. 임종룡 후보가 최근 언론에 자주 눈에 띄는 건 오히려 '든든한 뒷배'가 없어서 그런 거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한 우리금융 관계자)

      우리금융그룹 차기 회장 경쟁이 내부 이원덕 우리은행장 대 외부 임종룡 전 NH금융 회장ㆍ전 금융위원장의 2파전으로 수렴하는 모양새다. 27일 열린 지주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에서 이 두 사람이 최종후보군(숏리스트)에 포함되며, 둘 중 누가 이사회의 선택을 받을지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우리금융 내부에서는 임 전 위원장이 유력 후보로 언급되는 것 자체를 배척하는 분위기다. 과점주주 민영화 후 내부 출신 손태승 회장이 지주 재전환과 비은행 확장을 추진해 온 상황에서 다시 관가와 연이 깊은 외부 출신 최고경영자가 날아오는 게 탐탁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금융그룹은 2001년 지주 출범 이후 1대~3대 회장이 모두 외부 출신 낙하산 인사였다. 특히 삼성그룹 출신으로 우리금융지주 회장직을 바탕으로 KB금융지주 회장직까지 진출한 2대 황영기 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당시 황 회장은 삼성의 일류 문화를 우리금융에도 심을 거라는 기대감과, 이를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해 민영화에 기여할 거란 평판을 업고 회장에 선임됐다. 재임기간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등 성과가 없지 않았지만, 직설적 언행으로 인해 대주주였던 예금보험공사의 눈 밖에 나면서 최종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당시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관치(官治) 인사의 끝'이라는 평가를 내놓곤 했다.

      이후로도 정부의 입김을 등에 업고 낙하산 의혹이 짙은 인사들이 잇따라 우리금융그룹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들은 하나같이 '주주가치 제고, 민영화 완수'를 과업으로 내걸었지만, 우리금융그룹은 실적으론 만년 4등에 머물렀고, 완전 민영화 역시 2016년 겨우 첫발을 뗀 뒤 2021년에야 완성됐다. 

      2016년 과점주주 민영화 이후 행장으로, 또 회장으로 선임된 내부 출신 손 회장은 독립된 인사권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런 손 회장이 금융당국의 압박 속 연임을 포기하고, 행정고시 24회 출신 임종룡 전 위원장이 후보로 언급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 금융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행시 25회 출신이다. 우리금융 과점주주들은 대부분 금융회사들이고, 이들이 추천한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모피아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조직의 성격과 문화가 완전히 다른 NH농협금융지주 경영 경험이 우리금융그룹 경영에 도움이 될 지도 미지수다. 하나금융, 신한금융에 이어 KB금융도 내부에서 키워낸 최고경영자 후보군이 차기 회장으로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금융만 '외부 인사'가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도 합리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정부 지분이 남아있는, 주인없는 금융회사에 금융당국이 인허가권을 무기로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와 다름없다는 날 선 비난이 우리금융 안팎에서 나올 법도 하다.

      더 큰 문제는 우리금융에서 이런 낙하산 인사가 계속 반복될지 여부다. 모피아-과점주주-이사회로 이어지는 우리금융의 새 관치 구조가 동작한다는 게 이번 회장 선임을 통해 드러난다면, 우리금융은 또 다시 지난한 낙하산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조직의 생리를 잘 이해하는 내부 출신 최고경영자 후보군과 자질 논란이 없을 수 없는 외부 인사를 동일 선상에서 경쟁시키는 건 오히려 조직 안정성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다. 이는 지난 20년 간의 우리금융그룹 역사가 보여준다.

      한 전직 우리금융 고위관계자는 "한일은행-상업은행의 파벌싸움보다 더 우리금융의 발전에 해로운 영향을 미쳐온 게 바로 관치 낙하산 인사"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