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철회한 컬리…롯데ㆍ신세계ㆍSK와 합친다면?
입력 2023.01.30 07:00
    취재노트
    2021년 4조 인정받은 몸값, 유동성 침체에 급전직하
    PEF 등 투자유치 어려워…이익 낼때까지 버틸지 의문
    '최초' 브랜드 가치는 여전…사업부진 대기업 탐낼 만
    투자 부담 줄이고 시너지 제고…인수·합병도 가능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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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컬리는 2015년 국내 최초로 새벽 배송(샛별배송) 시대를 열며 이커머스 시장의 총아로 부상했다. 2021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에 등극했고, 같은 해 상장전투자유치서 4조원의 몸값을 인정받았다. 상장 기대감도 커졌는데 컬리는 여전히 비상장사다. 국내외 증시를 두고 좌고우면했고 작년부터는 유동성 축소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컬리의 몸값은 계속 하락했고 올해 들어 상장 철회를 발표했다.

      컬리의 성장 모델은 쿠팡과 닮아 있다. 매년 매출을 키우고 점유율을 늘려가면 언젠가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손실을 감수하고 투자할 자금을 꾸준히 유치했느냐는 점은 다르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지원을 받은 쿠팡은 작년 3분기 흑자전환으로 ‘계획된 적자’를 입증했다. 반면 컬리는 상장 무산으로 난처해졌다. 작년 ‘뷰티컬리’를 런칭했고, 신사업 추진 여력도 있다는 입장이지만 당장 이익을 내서 현금 소요에 대응하긴 어렵다.

      컬리가 바람대로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 받으려면 현금을 계속 소진(Cash burning)해야 한다. 연간 적자폭을 2021년 수준(2177억원)으로 유지한다 쳐도 큰 돈이 필요하다. 시장의 유동성은 부족하고, 이커머스에 대한 평가도 아직 박하다. 최근 컬리의 몸값은 1조원 이하로 거론된다. 지금 수천억원을 투자한 곳은 당장 ‘불안한 이커머스사’의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사모펀드(PEF)나 벤처캐피탈(VC)이 컬리에 투자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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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리가 당장 사업으로 큰 이익을 내거나 외부에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것보다 대기업과 손을 잡는 편이 현실성이 크다. 돈이 급한 컬리와 온라인 커머스 사업이 부진한 대기업이 연합하면 서로의 아쉬운 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쪽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문사들이 움직일 수도 있다.

      컬리는 업계 최초의 새벽 배송, 풀 콜드 체인 시스템 등으로 선구자로서의 존재감이 각인돼 있다. 강력한 상품 큐레이션 능력을 갖추고 있어 고객들의 충성도도 높다. 2019년 60% 초반이던 신규 고객 재구매율은 이제 80% 수준에 이른다. 아직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고객들에게는 유용한 플랫폼이고, ‘강남 주부 필수앱’이라 불리던 브랜드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컬리는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수도권 이외 지역으로 물류센터를 확장해왔다. 주력이 신선식품이다보니 인건비와 유지비가 많이 들었다. 공헌이익이 흑자라는 컬리의 목소리가 큰 공감을 얻기 어려웠다. 기존 물류센터의 가치는 떨어지는데, 새로 짓는 비용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갖춰둔 물류 역량을 활용할 수 있다면 비용 부담은 줄이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주요 대기업의 이커머스 성적표는 부진하다. 롯데쇼핑은 2020년 그룹 내 쇼핑앱을 통합해 롯데ON을 출범했지만 회사 매출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때 10조원 이상의 몸값이 기대됐던 신세계그룹의 쓱닷컴은 작년 상장을 철회했다. 실적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어 언제 다시 상장을 추진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이베이코리아(현 지마켓) 인수 실익도 현재로선 모호하다. SK그룹의 11번가 역시 최근 상장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

      대기업은 여러 가지 서비스를 출시하며 이커머스 사업의 이미지 변화에 나서고 있지만 성과는 크지 않다. 컬리와 손을 잡는다면 부족했던 브랜드 색채를 일거에 보강할 수 있다. 독주 체제에 접어든 쿠팡에 대항하려면 컬리와 대기업이 강점을 갖고 있던 ‘신선식품’ 영역의 영향력만큼은 유지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기업 입장에선 가치가 낮아진 컬리 경영권을 그대로 인수하는 것이 간편하다. 기존 컬리 투자자라면 투자 때보다 낮은 가격에 경영권 주주가 바뀌는 것이 달갑지 않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컬리가 버티기 어렵다.

      대기업의 이커머스 사업과 컬리를 합병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이 역시 컬리 대주주와 투자자들의 지분가치 희석 등을 고려해야 한다. 다만 지금은 컬리나 대기업 이커머스 모두 기업가치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비슷한 가치에 합친다면 양쪽 주주 모두 큰 손해 없이 사업을 공유하게 된다. 시너지 효과가 난 후에는 기업가치 상승의 과실도 누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