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단협의체 출범, PF 연명치료 시작…97년 '기아차' 부도유예와 종금사 공멸 재현 우려?
입력 2023.01.31 07:00
    취재노트
    부동 PF발 위기 부각되자 정부가 채안펀드 등으로 유동성 공급
    은행 동원시켜 대출금리 조절하고 지원책 마련
    PF시장 자금돌기 시작했지만 사업장과 금융사 위기 여전
    자칫 미봉책 실패로 돌아가면 97년처럼 리스크 확대 전이 될수도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위원회가 부동산 PF 사업에 관여하는 대주단협의체 구성을 준비중이다. 현재는 2009년 마련된 'PF 대주단협의회 운영협약'의 적정성을 점검하고 있는데 조만간 주요 금융그룹 수장들과 구체화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구체적인 지원책이 발표되지 않았음에도 금융시장에선 벌써부터 "PF 시장 연명 치료가 시작했다", "폭탄 돌리기의 서막"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부동산PF 시장 불안에 대처하는 금융 당국의 기조가 비교적 명확했기 때문이다.

      관(官)이 주도한다. 선제적이다. 과하다고 보일만큼 유동성을 공급한다.

      실제로 정부는 부동산 PF발 위기가 번질 조짐이 나타나자 채안펀드, 제2채안펀드를 출범하며 시장에 유동성을 끊임 없이 공급했다. 롯데건설과 태영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의 위기론이 불거지면서 자본시장의 마지막 안전판인 '은행'을 조기 등판 시켰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신호에 맞춰 대출 금리를 조정하고 은행채 발행을 줄이면서까지 90조원의 지원책을 냈다.

      이번 달 정부는 브릿지론을 본PF로 전활할 수 있는 사업자보증, PF자산유동화증권을 대출로 전환하는 보증프로그램을 신설한다. 13조원가량을 투입해 브릿지론이 본PF로 모두 전환하면 당분간은 멈춰선 PF사업장도,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는 PF사업주도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PF시장에 자금이 돌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금융사들이 돈을 빌려주기 시작하며 법정 최고금리까지 치솟았던 시행사와 건설사에 대한 대출 금리도 10% 초반까지 내려왔다.

      이 같은 금융기관들의 '태세전환'은 안정성과 이윤을 추구하는 목적보단 강력한 금융 당국의 기조에 보조를 맞춘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정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이 앞장서 부동산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고는 있지만 "PF시장의 위기감이 사라졌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세를 찾았다"고 여기는 이들은 없다. 부동산 경기의 하락은 끝을 알 수 없다. 유통 시장에 돈이 돈다고 해서 부동산PF 사업장과 보증을 선 시공사, 신탁사, 금융사들의 리스크가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결국 정부가 연일 쏟아내는 '부동산 금융' 지원책들은 “어디 하나 쓰러지는 곳을 만들지 않겠다”는 원칙 아래 시행되는 미봉책들로 보이는게 사실이다.

      정부가 고민중인 '부동산 대주단협의회 부활'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같은 맥락이다.

      대주단협의회가 출범하면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대주단은 기존 PF대출을 연장을 시행하게 된다. 은행은 물론 PF와 연관한 금융기관들 상당수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그 대상과 규모는 가늠할 수 없지만 30조원 이상의 PF대출을 보유한 은행들이 포함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물론 모든 사업장이 아닌 '정상 사업장'에 국한하는 조건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부동산 하락기에 정상적으로 여신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할 수 있는 사업장이 거의 없다는게 맹점이다.

      대주단협의회 출범은 당장 수많은 PF사업장과 이에 얽힌 사업주, 보증사(건설사, 신탁사 등)의 숨통이 트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불투명한 여신 회수에 대한 부담은 오롯이 협의회에 참여한 금융기관들의 몫이 된다. 그 부작용은 길게는 수년 뒤 나타나기 때문에 당분간은 부동산 PF 시장이 안정했다는 '착시효과'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주도해 금융기관 대출 연장을 유도했으나 이후 더 큰 폭탄으로 돌아온 사례가 있다. 바로 외환위기 당시 기아차 처리 과정에서 종금사들이 공멸한 일이다.

      1997년 한보그룹과 삼미그룹이 부도처리된 이후 금융기관들이 기업 여신을 빠르게 회수하자 당시 문민정부는 '부도유예협약'을 출범했다. 금융기관의 대출 회수로 인한 부도처리를 막겠다는 취지인데 세간에서는 '부도방지협약'으로 불렸다. 당시에도 "어차피 쓰러질 기업을 금융권이 부담해 연명시킨다"는 비판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출범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유예협약은 결국 실패작으로 판명받았다. 당시 기아차그룹의 1997년 7월 부도유예협약 가입이 종합금융사 공멸의 뇌관으로 작용했다. 이때 기아 계열사 18곳이 부도유예협약에 가입하자 약 4조원에 달하는 종금사의 채권이 일시에 동결됐다. 은행과, 생명보험 그리고 종금사의 채권이 묶인 동안 외국계 금융사들은 재빠르게 채권을 회수했다. 결론적으로 1998년과 1999년 16곳의 종금사가 사라졌다.

      그래도 과거엔 기업이 주도적으로 자구안을 마련해 채권단의 만기 연장을 유도하는 자율협약, 또는 대주단이 경영권을 쥐고 기업의 채권회수 전략을 마련하는 워크아웃 등의 기업 구조조정이 활발했다. 벽산건설과 남광토건, 우림건설, 중앙건설, 한일건설, 쌍용건설, 금호건설, 경남기업, 동문건설, 동일토건 등의 건설사들은 워크아웃을 통해 일부가 살아났고 일부는 사라졌다.

      기업은 비용절감과 자산매각 등 금융기관의 대출 만기 연장을 얻어내기 위한 모든 노력을 쏟았다. 칼자루를 쥔 금융기관들은 채권을 회수하기 위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이 마저도 안되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통해 채권을 회수 했다. 

      한마디로 무조건적인 대출 연장은 없었다는 의미다. '연명치료'가 시작된 지금과는 궤를 달리했다. 

      주택 시장 미분양 위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주택뿐 아니라 오피스와 인프라 모두 자산 가치의 하락이 예고돼 있다. 물론 과거의 학습 효과 인해 주요 건설사들은 물론 대형 금융기관들의 위기 대처 능력은 비교적 높게 평가 받고 있다. 억지스러운 정부의 개입이 자칫 시장주도의 구조조정을 미루는 역효과를 낳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