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는 기업의 든든한 후원자일까, 고금리 노리는 사냥꾼일까
입력 2023.01.31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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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메리츠증권이 이번 롯데건설과 조 단위 규모의 펀드를 만들긴 했지만, 앞으로의 파트너 관계는 글쎄요. 기업금융 부문에서 장기적인 협업 관계를 이어갈 만한 평판이 되나요?”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

      지난달 메리츠증권이 롯데건설과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매입하는 투자를 진행한 뒤 증권가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메리츠증권이 좋은 금리 조건으로 거래를 따왔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어려운 시기에 놓인 롯데건설을 이용해 잇속을 차렸다는 질투어린(?) 시선도 만만치 않다.

      사실 메리츠증권은 여느 증권사와 달리 기업금융 부문의 비중이 크지 않다. 통상 대형 증권사들은 굵직한 대기업과 오랜 기간 관계를 쌓으며 회사채 발행이나 계열사 상장 거래를 맡으며 수수료 수익을 올려왔다. 반복적인 업무가 많아 수수료가 높지는 않지만, 대신 안정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메리츠증권은 개별 딜(거래) 위주의 사업성 평가를 기반으로 한 부동산금융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려왔다. 

      그렇다 보니 증권가에선 메리츠증권을 ‘어려울 때 찾는 기업’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고객사의 관계를 감안해 기업금융 거래를 꾸준히 이어가기보다 그때 그때 고수익을 올릴 만한 거래를 찾아다닌다는 점에서다. 금번 롯데건설과 조 단위 펀드 조성에 성공했음에도 메리츠증권의 대외적 평판을 감안 시 롯데그룹과 돈독한 관계를 맺을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이 많지 않은 배경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모 CB(전환사채) 사태에 메리츠증권 이름이 지속 거론되는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몇년간 KH그룹이나 에디슨모터스, 세종메디칼 등 중소기업들을 위주로 전환사채(CB) 발행에 나서왔다. 문제는 이들이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KH그룹이나 에디슨모터스는 현재 경영진들이 검찰수사를 받고 있고, 세종메디칼 역시 내실보단 테마성으로 주가가 급등락을 이어온 회사다. 

      만약 메리츠증권이 다른 증권사처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기업금융을 키우고자 했다면 굳이 이들 기업의 CB 발행을 맡았을 리가 없는 셈이다. 대신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잡거나, 만기이자율이 4~6%에 이르는 등 투자 위험성을 낮추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즉, CB 발행사 자체의 내실보다는 개별 거래로 올릴 일시적인 수익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은 몇몇 기업의 전환사채 발행 시에 담보를 잡고 내줬는데 부동산 거래에 정통한 점을 장점 삼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만 CB 발행 기업들의 면면을 볼 때 대부분의 대형 증권사에서는 담당자가 검토조차 하기 어려운 곳들이 많다. 혹 내부 심의에 올리더라도 통과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메리츠증권이 CB 발행을 맡았던 많은 기업들이 해당 자금을 시설운영이나 인수합병(M&A)에 사용하겠다고 했지만 결국엔 국채를 사는 데 그쳤다는 점은 의아한 부분이다. CB를 투자하며 담보를 잡을 목적으로 국채 등 우량 증권을 사도록 하는 것은 일반적인 증권사의 영업활동으로는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많다. 

      한 대형 증권사 CB 발행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은 CB 투자자의 손실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국채를 사도록 한 것인데 이는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다”라며 “더욱이 궁극적인 목적이었던 회사의 가치를 증대하는 행위에 쓰이지 못했다는 점은 일반적인 자금조달 취지에는 어긋나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위험 때문에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중소ㆍ중견기업들을 대상으로는 CB 주선을 맡는 데 상당히 주의를 기울인다. 특히 자금운용 목적으로 M&A를 거론했을 경우 웬만하면 이를 주선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다. 증권사들은 통상 CB 발행 주선을 맡은 뒤 이를 기관투자자에 셀다운(인수후 재매각) 해야 하는데, 애매모호한 M&A 목적으로는 매각이 쉽지 않은 탓이다. 

      공장 증설이라든가 시설 관리 등 경영상의 목적이 아닌 CB 발행은 이 같은 편법 또는 불법 행위 여지가 많기에 사전에 문제가 될 여지를 차단하려는 목적이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은 극단적으로 말해 ‘돈만 되는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라는 평판이 있다”라며 “그만큼 수수료 수익이 적더라도 장기적인 관계를 보고 영업을 하는 행위는 메리츠와는 결이 맞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리츠증권도 방어논리는 있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CB발행은 주로 바이오ㆍ벤처 및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발행하는데, 다른 방법으로 조달이 안되니 CB발행에 나서는 것"이라며 "해당기업이 그 담보 조건하에서도 발행에 동의했기 때문에 거래가 성사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모든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삼는다. 위험성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좋은 조건으로 경쟁사보다 딜(거래)을 따오고 이를 통해 남다른 사업수완을 발휘한 메리츠증권을 부러워하는 IB맨들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문제가 터지니 이제서야 증권사를 탓한다고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모든 위험성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설사 메리츠증권이 철저한 담보 설정과 고금리 조건을 설정해 금전적인 손실은 피했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의 평판은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이런 점 때문에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당장의 수익이 적더라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기업금융 사업에 목을 메는 것일 수 있다. 

      금융당국 역시 이 같은 불법적인 사모 CB 발행을 두고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불공정거래, 증권사, 분식회계 감리, 공시위반 검사 등 여러 전담부서와 합동대응반을 마련, 사모 CB 악용 사례를 잡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금융투자검사국에서는 이와 같은 불법행위를 은폐하거나 조력한 혐의가 발견되는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신속하게 검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지난해 “앞으로 CB, BW(신주인수권부사채) 시장의 교란행위를 유념해서 보겠다”며 검사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수사를 하게 될 테지만 경우에 따라 주선사인 증권사도 적절한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