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는 어렵다
입력 2023.02.01 07:00
    Invest Column
    • 지난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있었던 금융위원회 신년 업무보고엔 윤석열 대통령과 경제 수장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과 교수·연구위원 등 전문가 그룹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이 금융산업의 국제화와 경쟁력 강화를 주문하며 미국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산업집적단지) 사례를 재차 언급한 것이 주목을 받았다. 보스턴엔 글로벌 빅파마(Big Pharma)와 로펌, 회계법인, 투자은행(IB) 등이 함께 모여 있어 시너지가 나고 있다는 점을 들며 이른바 보스턴 스타일의 금융투자회사 육성을 강조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한국판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보스턴의 현 상황,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알게 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다.

      보스턴 내 바이오 클러스터에는 글로벌 빅파마 20곳 중 18곳이 있고 유입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메사추세즈주 캠브리지시(12만명), 보스턴시(68만명)의 인구가 80만명 정도인데 그 중 바이오테크 연구개발(R&D) 인력 5만5000여명, 투자 및 경영 등 관련 인력 4만명 등 10만명이 바이오테크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 비해 한국 전체 바이오 인력은 10만명이 안된다.

      클러스터를 구성하는 것은 글로벌 빅파마와 무수한 바이오테크 스타트업들, 여기에 투자를 하는 벤처캐피탈(VC), MIT·하버드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연구소 등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 차원의 투자지원금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민관의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이 곳에서 모더나, 바이오젠, 앨라일람, 블루버드바이오 등 세계적인 바이오테크들이 탄생했다.

      보스턴에서 바이오테크 투자를 맡고 있는 이성환 SV인베스트먼트 이사는 이곳의 투자 방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투자 유치를 받기 위해 VC를 찾아가면 VC는 빅파마를 찾아가 사업을 설명해보라고 한다. 

      창업자가 빅파마랑 티타임을 가지면서 100개가 넘는 아이디어를 던지면 빅파마는 그 중 한 두가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창업자는 그 결과물(?)을 들고 VC를 다시 찾아가면 VC는 투자를 하고 창업자는 그 돈으로 클러스터 내 공유랩에서 연구개발에 돌입한다.

      이렇게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에서 빅파마가 심사를 하고 VC를 중심으로 펀드레이징 되는 자금 규모가 우리돈으로 1년 평균 2조4000억원에 이른다"

      보스턴,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메사추세츠 캠브리지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공룡 제약사, 스타트업, VC들이 한 데 모여있고 전 세계 바이오 투자자금이 여기로 몰린다.

      대덕연구단지와 KAIST 등 산학연계가 이뤄지고 있는 대전이 한국의 보스턴이 될 수 있을까. 그럴려면 한국 대기업뿐 아니라 그 이상의 글로벌 기업들이 자진해서 와야 하고, 산학 협력 수준을 높이려면 카이스트 수준의 대학교가 더 있어야 한다. 특정 산업에 정통한 투자자들이 있어야 하고, 수많은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모험자본이 넘쳐야 한다. 그게 대덕연구단지와 그 주변에 다 있어야 한다.

      그러기엔 제약 요소들이 너무 많다. 바이오에 국한해서 얘기하자면 차라리 한국의 바이오 대기업과 금융사들이 지금이라도 LP(유한책임투자자)로서 보스턴으로 진출,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 씨를 뿌리고 그 과실을 기다리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무작정 특정 무언가를 벤치마킹 해 지금부터 새로 인프라를 구축하느니 기업·금융·대학이 손을 잡고 직접 해외에서 투자를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낫다. 그게 선진화, 경쟁력 강화의 선결 조건이 아닐까.

      문제는 경제 수장과 금융사 CEO들이 한 데 모인 자리에서 대통령이 굳이 '보스턴'을 콕 집어 한 마디 했다는 거다. 대통령의 본뜻이야 기업과 금융사, 컨설팅사들이 '원팀(One Team)'이 돼야 한다는 걸테지만, 자칫 이것이 오역돼 정말로 보스턴 스타일의 기업과 금융투자회사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처럼 금융당국의 입김이 강할 때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과 금융사들은 뭐라도 해야 할 판이다. '한국판 OOO'이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당장 국내 대형증권사들을 한국판 골드만삭스로 육성하겠다고 한 것만 해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