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법 복잡한 HMM 매각…'돈' 필요한 산은 vs. '포트폴리오' 필요한 해진공
입력 2023.02.03 07:00
    산은, 회계법인 등에 HMM 매각 컨설팅 RFP 발송
    구조조정 대비 및 투자 등 필요 자금 대응 필요해
    해진공도 함께 매각 나서야 경영권 프리미엄 기대
    해진공은 '지분 있어야 관리 용이'…미묘한 시각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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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새해 들어 HMM 매각이 본격화한 가운데 1·2대 주주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어떤 방안을 마련할지 관심이 모인다. 구조조정 및 투자 자금이 필요한 산업은행 입장에선 웃돈을 최대한 많이 챙기려 하지만, 해운업 지원과 관리가 중요한 해양진흥공사는 HMM 지분 매각에 보수적인 기류가 있다. HMM 매각은 4조원대의 몸값을 감당할 국내 기업을 찾아야 하고, 향후 경영권 지분으로 전환될 수 있는 영구채 처리 문제까지 검토해야 하는 난이도 높은 거래로 평가된다.

      산업은행은 최근 국내 대형 회계법인 등에 HMM 매각 컨설팅 자문사 선정을 위한 제안요청서(RPF)를 발송했다. 컨설팅을 통해 HMM 매각 타당성 및 방식, 잠재적인 인수후보군 파악 등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성과에 따라 매각 주관 업무까지 이어질 수 있어 회계법인들의 관심이 높다.

      산업은행은 HMM 지분 20.69%를 가진 최대 주주다. HMM이 정상화하며 구조조정 목적을 달성했고, 관리 업무는 해양진흥공사에 대부분 이관했다. 작년엔 2021년 HMM 전환사채(CB) 전환권 청구에 따른 ‘회계상 이익’ 때문에 정부에 대규모 배당금을 지급하는 부담이 생겼다. 산업은행으로선 HMM 지분을 보유할 실익이 없어졌다.

      산업은행은 최근 구조조정 기업에 투자한 자금의 '회수율'보다는 민영화 자체에 집중하는 추세다. 그러나 HMM의 경우엔 본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수조원을 지원해 영업이익 10조원을 거두는 우량 회사로 바꿔놨으니, 지분 매각을 통해 최대한 많은 자금을 회수할 필요성이 있다.

      아울러 작년부터 산업은행의 자금 부담도 커졌다. 실적이 연결되는 한국전력의 부진으로 은행으로서 자본적정성이 악화했다. 2021년 3분기 15.67%이던 BIS총자본비율은 1년 사이 13.08%로 떨어졌다. 채권시장안정펀드, 증권사 유동성 공급, 부동산 PF 안정화 프로그램 등 맡은 일이 많다. 이 외에도 배터리, 반도체, 벤처 등 돈 쓸 곳이 늘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동성을 최대한 마련해야 한다.

      산업은행은 HMM 1대주주지만 단독으로 매각을 추진해선 큰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2대주주인 해양진흥공사(지분율 19.96%)와 함께 보유지분 매각에 나서야 경영권 프리미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반면 해양진흥공사는 산업은행과 입장이 다르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올해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HMM 매각 컨설팅 계획을 밝히며 산업은행과 발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공사는 '해운사의 선박 도입과 유동성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기 때문에 지분을 팔아서 차익을 챙기는 것이 최우선 목적이 아니다. HMM은 공사의 최우선 '포트폴리오'이기도 하다.

      한 회계법인 파트너는 “해양진흥공사는 해운업 분야에서 존재감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HMM 지분을 계속 보유하길 강하게 원했다”며 “정부 윗선에서 나서니 등 떠밀려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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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올해부터 해운업이 다시 침체기로 접어들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흥국증권은 최근 리포트에서 올해 경기 침체로 미주와 유럽향 물동량이 각각 4.7%, 3.9%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해양진흥공사에선 향후 HMM의 자금 수요가 생길 때 신속하게 지원하려면 일부 지분은 유지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컨설팅 시기를 둘러싼 시각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산업은행은 7월까지 HMM 매각 절차를 마친다는 데 무게를 두는 반면, 해양진흥공사는 그때까지 매각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HMM은 그간 쌓아둔 자금을 M&A에 쓰는 방안도 검토해 왔다. 컨테이너선(매출 비중 93%)에 극단적으로 치우친 사업구조를 안정적 운임이 나는 LNG, 벌크 등으로 확장하기 위함이다. 현대엘엔지해운, 폴라리스쉬핑 등 매물들을 살피기도 했지만 현재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임원 인사나 이사회 구성 등도 게걸음이다. 매각 전 변수를 만들지 않으려는 산업은행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지분의 시가는 4조원대다. 여기에 프리미엄이 얹어지면 5조원 이상도 기대할 만하지만, 이는 일반론일뿐 실현 가능성은 별개다. 외국계나 사모펀드(PEF)는 단독으로 인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잠재 후보군 중 수조원을 감수할 만한 곳은 현대차, 포스코, CJ 정도인데 모두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포스코홀딩스는 2022년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HMM 인수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HMM의 영구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핵심 과제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HMM 지분을 모두 팔더라도, 산업은행 등이 보유한 영구채가 모두 주식으로 전환되면 50% 이상의 지분율을 다시 갖게 된다. 이 때문에 기존 주식을 매각하되 영구채는 회사가 보유 현금을 들여 사주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는데, 채권자의 배임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한 해운업계 전문가는 “돈 쓸 곳이 많은 산업은행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위해서라도 해양진흥공사와 함께 지분을 팔려 하지만, 공사는 HMM에 발을 담그고 있어야 위기 시 지원하기 수월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강하다”며 “상업적 판단만으로는 시장가 4조원 이상에 영구채 문제까지 얽힌 회사를 살만한 곳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