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론 디폴트는 대우건설의 실책?…PF 트리거 '지방'·'미분양' 건드렸다
입력 2023.02.09 07:00
    취재노트
    울산 사업장 브릿지론→본PF 전환 무산
    대우건설 "손실 최소화 방안, 발 뺀 거 아냐"
    PF업계 "설마했는데 진짜 이럴줄 몰랐다"
    지방사업장 미분양 위기 재확산 우려
    "회사 이해되나 소탐대실 될 듯"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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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고 있는 가운데 대우건설이 PF 시장을 다시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대구에서 불거진 지방 미분양 문제가 또다른 뇌관으로 부각되는 와중에 대우건설이 울산 사업장의 브릿지론 디폴트를 선언했다. 업계에선 "레고랜드 사태 3개월 만에 '대형 사고'가 터졌다", "문제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거다" 한목소리를 내며 대우건설을 비판하는 분위기다.

      이번 사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해당 사업은 울산 동구 일산동에 총 644세대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설하는 울산 동구 일산동 푸르지오 주상복합 건축 사업이다. 대우건설은 시공사로서 브릿지론 후순위 연대보증을 서고 있었다. 그런데 대우건설이 브릿지론에서 본PF 넘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공사의 책임준공확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브릿지론의 본PF 전환이 무산됐다.

      대우건설은 공사도급 계약서상 '협조' 사항이기 때문에 법적 강제 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PF로 전환할 때 그 협조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금융회사 대주단에 공문을 보냈다. 그리고 후순위채권 440억원을 자체자금으로 상환 후 사업장에서 철수했다.

      일견 경영 판단 상으로는 대우건설의 결정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현재 인상된 공사비 원가(평당 700만원)를 감안하면 전체 시공규모만 1조원을 넘는 대형 사업장이다. 결국 1조원대 공사원가를 투입해도 미분양으로 자금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한 듯 하다. 시공사가 사실상 울산 부동산 시장에 대해 '숏(short)'이 필요하다고 보고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빨리 떠난 것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당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분양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걸 전제로 시에서 사업을 열어준 '조건부'였는데 지금 분양시장이 무너지면서 조건이 성립이 안 된 것"이라며 "회사의 현금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손실이 날 걸 알면서 굳이 사업을 진행할 필요는 없다고 본 것 같다"고 전했다.

      대우건설 측 역시 사업장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었다며 발을 뺏다기 보다는 채무 변제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입장을 전해 왔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회사도 리스크 측면에서 관리가 필요한데 사업장의 사업구조를 봤을 때 원활하게 진행이 안될 것 같다고 판단했다"며 "브릿지론의 경우 채권의 순위가 거의 후순위권인데 사업을 계속 진행한다고 가정하면 언젠가는 중단되고 그러면 부도가 나 더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 지금 손해를 보더라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현금으로 440억원을 변제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일단 회사는 관련 내용에 대한 보도자료를 낼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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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릿지론 규모는 1000억원, 본PF 규모는 1500억~2000억원으로 PF 투자자들을 모았고, 상당수 금융사는 내부승인까지 마친 상태였다. 졸지에 시공사가 사업장을 떠나버리니 투자자들과 금융사는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이럴 줄은 몰랐다", "대우건설이 배신을 때렸다"라는 거친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대우건설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제2의 레고랜드 사태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레고랜드 사태의 경우 강원도의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지급보증 철회 의사가 지방자치단체 전체로 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대우건설의 브릿지론 디폴트는 시공사가 수익성이 나지 않을 사업장에 대해 계약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손을 털고 나갈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켰고 이게 대우건설의 '실책'이라고 금융사들은 주장한다.

      부동산PF 관계자는 "시공능력 평가 6위에 이르는 대우건설이 이렇게 한다면 그 아래에 있는 건설사들은 어떻겠냐"며 "설사 대우건설이 의도를 갖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금 지방 사업장이 얼마나 미분양 리스크를 떠안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각인시킨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어떻게든 PF 리스크가 전이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금융당국의 노력과도 크게 배치된다. 금융당국은 은행 등을 통해 윗단에서 선순위 중심의 유동성을 공급, 이게 밑단으로 흘러가게 함으로써 위기가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려고 한다. 하지만 부동산 약세장이 지속되며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수 적체가 심화되고 있어 언제든 밑단의 부실이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다.

      신영증권은 최근 스팟 코멘트를 통해 "2022년 12월 전국 미분양 세대수는 6.8만세대로 2012년 7.5만세대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작년 10월 긴급 유동성 지원으로 1차 자금 위기를 막았던 현장의 만기가 도래하면서 울산 일산동 사례와 같은 PF 디폴트 발생 가능성이 보다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브릿지론을 포함한 부동산 PF의 유일한 현금수입원은 오직 분양대금이다. 이는 미분양이 해소돼야 가능하다"며 "그러나 시세 하락이 멈추지 않는 현재 국면에서 미분양 세대수는 분양물량이 늘어날수록 증가하는 수순이다"라고 진단했다.

      이 위기를 광역시 사업장에서 대형 건설사가 새삼스럽게 끄집어 낸 셈이다. 그것도 '지방', '미분양'이라는 PF의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렸다. 일각에선 "이전의 산업은행 산하의 대우건설이었다면 당국 기조에 반하는 조치를 할 수 있었을까" 반문하기도 한다.

      대주단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법적 대응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차원에서 더 큰 문제는 부동산 사업에 대한 금융사들의 시선이 한층 더 팍팍해질 거라는 점이다.

      PF업계 관계자는 "시공사가 수익성을 이유로 사업장을 떠난다면 금융사들은 계산기를 들고 수익성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사업은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조금이라도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들엔 사업 기회조차 주지 않을테고 이게 건설업계 구조조정을 더 빠르게 진행시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우건설이 앞으로 관급공사나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따내는 데 있어 이번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일단은 긍정적이진 않다. 무(無)에서 유(有)를 일으키는 PF 사업이라는 특성상 시행사, 시공사, 투자자 간의 신뢰가 절대적인데 대우건설이 이를 깼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영업이익 7600억원을 거두며 창사 후 최고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도시정비사업 수주액도 처음으로 5조원을 돌파했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현금흐름 등 재무적 수치가 악화하고 있고 이를 위해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하려는 대우건설 입장도 충분히 이해를 한다. 다만 시장 참여자로서, 또 지금의 시장 상황과 정부의 기조를 감안한다면 440억원 채무변제는 '소탐대실'이라는 실책성 카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