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SM엔터 참전한 하이브, '네이버 vs 카카오' 갈등으로 번질수도?
입력 2023.02.10 11:00
    하이브, 이수만 총괄 SM 지분 인수 및 공개매수 추진
    주주명부는 확정, 내달 주총에선 의결권 행사 어려워
    3월 이사 임기 대거 만료…'지분 일찍 샀어야' 지적도
    주가 급등, 카카오-네이버 갈등, 팬심 등도 고려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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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 참여를 공식화했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일부를 인수하는 한편 공개매수를 통해 소액주주 지분도 사들여 최대주주에 오를 계획이다. 몇 년간 구애 끝에 이수만 총괄의 마음을 잡을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인데 현실적인 난관도 적지 않아 보인다.

      늦어버린 지분 인수 시기

      하이브는 10일 공시를 통해 이수만 총괄의 SM엔터 보유지분 중 14.8%를 주당 12만원씩 총 4228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소액주주 지분도 공개매수를 거쳐 최대 25%(595만여주, 주당 12만원)까지 인수할 예정이다. 일련의 작업을 거쳐 SM엔터 지분이 최대 39.8%까지 늘어난다. 삼성증권이 공개매수 주관사로 나섰다.

      통상 지분율 40%는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당분간은 큰 의미가 없다. SM엔터는 내달 정기주주총회 권리주주 확정일을 작년 12월 31일로 정했다. 즉 하이브는 이번에 이수만 총괄과 소액주주 지분을 인수하더라도 의결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SM엔터 정관상 임시주주총회 때는 이사회 결의로 정한 날에 기재된 주주를 권리주주로 할 수 있는데, 회사 경영진의 반발을 감안하면 하이브에 유리한 날이 정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이브는 이미 2020년부터 이수만 총괄을 접촉해 지분 인수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상장 후 대규모 자금을 쥐게 되자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이후에도 유수의 대형 증권사와 함께 SM엔터 공개매수를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주주총회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주식을 작년에 인수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만치 않을 이사회 장악

      하이브의 주식 매집 시기가 아쉬운 것은 이사진이 대거 바뀌는 시기에 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SM엔터 이사회는 이사 4명의 3년 임기가 모두 다음달 끝난다.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 박준영 최고운영책임자 등 3명은 이수만 총괄의 반대편에 섰다. 회사는 오는 주총에서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를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하고 3명의 사외이사도 새로 뽑기로 했다.

      하이브가 최대주주에 오른 후 사외이사 교체 등 실력 행사에 나설 수도 있지만 장벽이 낮지 않다. 상법에 따르면 이사는 언제든지 주주총회 결의로 해임할 수 있으나, 특별결의 요건(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주식총수 3분의 1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지분 33%까지만 확보해도 이사를 교체할 수 있는 셈이지만, 경영권 분쟁이 있는 기업은 주주총회 참여도가 높다. 국민연금, 컴투스, KB자산운용 등 한 자릿 수 지분을 보유한 유력주주들의 판단도 중요 변수다.

      ‘임기가 있는’ 사외이사를 해임했을 시 법령이나 정관에 위배된 행위를 했거나, 정신적·육체적으로 경영자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기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와 같은 ‘정당한 이유’가 이유가 아니라면 사외이사가 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우리와 뜻이 맞지 않아서’와 같은 정도의 이유로는 사외이사를 이기기 어렵다. 뚜렷한 명분이 없다면 ESG 경영을 강조하는 하이브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이브 역시 오래 전부터 SM엔터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모르지는 않다. 의결권이야 내년에 생기겠지만, 한번 이사들의 임기가 시작되면 3년간은 이사회 장악이 어려워질 수 있다. 과거 한국토지신탁의 사례와 같이 최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고도 몇 년간 이사회를 장악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로선 이수만 총괄이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보기 어렵다. 하이브의 복안이 무엇이냐가 관심사다.

      1만원대→10만원대 훌쩍…너무 비싸진 SM엔터

      하이브는 성공적인 상장을 통해 공모자금을 대거 빨아들였고 이후 미국 이타카홀딩스, 힙합 레이블 ‘QC뮤직’ 등 대형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다. 증권가에선 여전히 대규모 자금을 쓸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지만 SM엔터가 그 정도 가치가 있느냐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SM엔터 주가는 이수만 총괄의 지분 매각 시도가 본격화하면서 상승세를 보였다. 하이브, 카카오, CJ 등 유력 회사들이 경쟁하니 몸값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1만원대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이제 10만원을 돌파했다. 이수만 총괄 지분 인수 및 공개매수 가격은 12만원까지 올랐다. 얼라인파트너스는 공개매수가가 낮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미들이 공개매수가를 더 올려달라 버티기에 들어가는 사례들도 많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최대주주에 올랐는데 경영권을 몇 년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자금 운용 면에선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갈대 같던’ 이수만 총괄의 마음을 잡기 위한 기회비용으로는 적지 않은 셈이다. 하이브는 이날 타법인 주식 취득을 위해 계열사로부터 3200억원의 단기차입금을 조달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가 이번 주주총회에서 SM엔터 경영진을 교체하긴 어렵고 임시주주총회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이는 현재 이사들의 ‘자발적’ 사임이 전제돼야 한다”며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하이브 입장에선 헛돈을 쓰는 그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네이버-카카오의 동거

      지난 7일 카카오는 SM엔터의 유상증자 신주와 전환사채(CB)에 2171억원을 투자해 지분 9.05%를 확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단 주요주주로 참여한 후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였는데, 하이브의 전격적인 등판으로 난처한 모양새가 됐다.

      현재 SM엔터 현 경영진과 카카오, 얼라인파트너스가 이수만 총괄과 하이브가 각각 한배를 탄 구도다. 표면적으로는 카카오와 하이브 대결로 비춰지지만 이면을 보면 카카오와 네이버의 경쟁 구도로도 볼 수 있다. 하이브와 네이버는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 하이브가 하는 팬쉽 플랫폼 위버스는 네이버와 관계가 깊다. 2021년 위버스컴퍼니가 네이버의 'V라이브 사업부'를 인수했고, 네이버는 위버스컴퍼니 출자로 주주가 됐다.

      이수만 총괄은 경영권 분쟁 중 신주 발행은 위법이라며 법원에 이를 중단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상황이다. 이 총괄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하이브의 낙승으로 이어지고, 반대의 경우 카카오와 하이브의 경쟁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시장의 관심은 하이브와 견줄 자금력이 있는 카카오가 맞불을 더 놓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다른 M&A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한 배를 타고 가는 그림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가처분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팬들은 하이브의 SM엔터 인수를 반길까

      하이브는 SM엔터의 1대 주주에 올라 1세대 K팝 회사에 걸맞은 안정적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한편 글로벌 사업을 위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공격적인 M&A(인수합병)을 통해 몸집불리기에 속도를 내지만 시너지 효과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이브 안팎에서 1조원을 들여 인수한 이타카 등이 아직 수익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 못하고 있어 해외 사업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분위기다.

       ‘공룡’ 하이브와 ‘1세대’ SM엔터의 결합이 시너지를 낼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실제 소비자인 케이팝 팬덤 등에서는 현실적인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이브는 소속 가수들의 팬미팅, 라이브 스트리밍(실시간 영상 중계), 유료 멤버쉽, 스페셜 앨범 등 ‘상품’들의 가격대를 대폭 높인 엔터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SM엔터도 결국 하이브의 운영 방침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SM엔터도 하이브 아래로 재편되면 수많은 레이블 중 하나로 입지가 좁아지게 된다. SM, JYP, YG 등 주요 대형 기획사가 확실한 각자 ‘색깔’을 가지고 경쟁하던 K팝 시장이 거대 대형 엔터사 아래 레이블 형태로 재편되면서 다양성을 잃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