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처 물색-자산 회수 이해관계 충족…대출채권 세컨더리 투자 수요 꿈틀
입력 2023.02.13 07:00
    신규 딜 드문데 고금리에 기관 목표 수익률 높아져
    저금리 때 조달된 대출채권은 가격 메리트 있기도
    인수금융·부동산PF까지 세컨더리 생겨날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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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M&A 인수금융, 부동산 부문을 막론하고 신규 거래가 줄어들면서 기존 딜에서 파생된 ‘세컨더리'(secondary) 딜을 찾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기존 대출채권 보유자는 자산을 정리해 유동성을 거둬들일 수 있고, 투자자는 전보다 싼 가격에 채권을 확보할 수 있다. 그간 국내에선 이런 방식의 자산 손바뀜은 활발하지 않았지만, 목표 수익률이 높아진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투자 수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한 외국계 금융사는 국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해외 대출 채권을 팔고 있다. 한 글로벌 사모펀드(PEF)가 작년 유럽에서 진행한 M&A의 인수금융 채권으로, 예상 수익률은 10%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컨더리 인수금융 투자는 PEF의 M&A 등에 최초 투자자로 참여하지 않고 현지 기관이 투자했던 대출채권을 인수하는 식이다. 가령 2020년 A스폰서가 B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조달한 7년 만기 인수금융 대출채권을 C기관이 2020년 신규 투자하고, 현재 2023년에 D기관이 C기관이 2020년부터 보유했던 대출채권을 사들이면 세컨더리 딜에 해당한다. 선진국에선 이미 일반화돼 있다.

      해외 인수금융 대출채권 세컨더리 투자는 통상 프라이빗(private) 딜로 사례가 많지 않지만, 2018~2019년 저금리 기조에서 국내 기관들의 관심이 높아진 바 있다. 해외 금융사 위주로 거래를 먼저 진행하고 수수료를 챙긴 후 국내 운용사와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최종 투자처를 찾는 방식도 많았다.

      해외에서는 '주식만 담보로 잡는' 인수금융의 특성상 위험성이 크고 금리도 높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 금융사보다 펀드가 담당하는 대출 비중이 높다. 상대적으로 인수금융의 위험성을 크지 않다고 보는 국내에선 해외 거래에 매력을 가질 만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 후에는 한동안 국내에서 해당 딜은 수요가 거의 없었다. 글로벌 경기가 불안정하기도 했고 경기 회복에 대한 확신이 없어 세컨더리로 해외에서 떠오는 인수금융 딜이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해외 왕래가 막히니 현지 자산 실사를 하기 어려웠고, 투자에 나서기 부담스러웠다.

      2021년부터는 팬데믹이 어느정도 진정되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는 올랐지만, 저금리로 펀딩한 돈으로 기관들이 충분한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투자처가 넘쳐났다. 국내 PF 딜 선순위 투자만 해도 7~8%대의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굳이 해외 세컨더리 딜을 찾을 이유가 적었다. 2021년 말부터는 유동성의 힘이 줄며 투자 동력도 약화했다. 한 글로벌 식음료 기업 M&A 인수금융은 작년 초 한국 시장에서 투자자를 찾았으나 난항을 겪었고, 연말에야 크게 줄어든 금액으로 투자자 모집을 마쳤다.

      최근에는 신규 투자처 기근과 높아진 가격 매력도에 일부 투자자들이 이러한 딜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지금 시장에서 돌고 있는 딜들은 보통 2021~2022년 저금리 시기에 조달된 대출채권들이다. 작년 이후 금리가 대폭 오르면서 ‘싸게’ 매수할 수 있게 됐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관들이 주식, 채권, 부동산 PF 등에서 높은 수익률을 얻기 힘들기도 하고, 아직 해외 부동산 등 대체투자도 경기 상황이 불확실하고 이미 물려있는 건들이 많아서 신규 투자를 진행하기 어렵다보니 기존 거래에서 ‘파생된’ 세컨더리 딜을 다시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대출채권 보유자 입장에서도 다음 투자처가 나타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 저금리 때 채권을 비싸게 샀다가, 쌀 때 파는 것은 아쉽지만 유동성을 만기 전에 먼저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금 소요에 대응하고 다음에 더 좋은 투자처를 찾을 기회도 생긴다.

      부동산 시장도 신규 거래 기근에 세컨더리 딜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 부동산 시장 위축 속에 공제회나 보험사 등 기관투자자들은 부동산 PF등 대체투자 포트폴리오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주식과 채권 등 전통 영역에서 최근의 금리 상승에 따른 높은 목표 수익률을 맞추기 쉽지 않다보니 당장 대체투자 부문을 대폭 축소하기도 힘들다. 

      통상 부동산에서는 세컨더리 거래에 참여하는 데 보수적이지만, 최근에는 투자를 검토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는 분위기다. 보수적인 투자성향을 가진 연기금이나 공제회 등이 중후순위 채권을 투자할 리는 없으니, 특히 목표 수익률이 높은 외국계 기관들은 중순위와 후순위를 상환하는 등 구조를 재정비해 세컨더리 투자를 진행하는 거래들도 구상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한 부동산 투자업계 관계자는 “요즘 신규 딜이 워낙 없어 원래 투자했던 지분을 파는 형태의 세컨더리 수요가 있다”며 “연기금이나 공제회 등이 대출금리가 높아지니 금리 수준을 맞춰주기 위해 부동산 PF관련한 세컨더리 론 펀드를 만들어보려고 하는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