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주총 패배 후폭풍…인적분할 기업들 지배구조개편 위기감 확산
입력 2023.02.15 07:00
    현대百 인적분할 안건 주총서 부결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 대거 반대 나선듯
    물적분할 대안이 인적분할?
    지배주주는 과세이연에 지배력 강화까지
    "똑똑해진 주주들에 세밀한 환원책 제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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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기업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 물적분할 방식은 사실상 추진하기 어려워졌고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인적분할 방식이다. 올해 지배구조를 개편하려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을 꾀하고 있는데 연초부터 현대백화점의 주주총회에서 제동이 걸리자 위기감이 고조했다.

      일반 주주들에게 동일한 비율의 주식을 나눠주는 인적분할은 물적분할에 비해 주주권보호 측면에서 좀 더 높은 평가를 받아온게 사실이고 금융당국의 제재에서도 다소 벗어나 있었다. 최근 진행하는 인적분할 기업들의 논란에선 중장기적으로 주주들의 이익보다 대주주 지배력 강화에 유리한 전략으로 사용된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똑똑해진 주주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선 기업들이 보다 세밀한 주주환원책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설득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첫 인적분할 안건을 임시 주주총회에 상정한 현대백화점은 해당 안건이 특별결의 요건(찬성률 66.7%)에 약 1.7%에 미달하며 통과하지 못했다. 최대주주를 비롯한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약 36%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수의 기관투자가 및 소액주주들이 반대표를 행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지분 8%를 보유한 국민연금도 반대표를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은 패인은 비교적 명확하다. 애초부터 캐시카우인 한무쇼핑을 사업회사(현대백화점)에서 떼어내 오너가 지배력을 가진 지주회사 아래로 옮긴다는 점이 주목 받았다. 현대백화점은 지주회사 행위제한 요건에 따라 한무쇼핑이 손자회사가 되면 투자활동에 제약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투자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같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주총을 앞두고 자사주 소각과 배당 계획을 발표했는데 주주들의 표심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현대백화점은 “향후 인적분할 및 지주사 전환 추진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향후 지배구조개편 작업과 사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인적분할 안건에 제동이 걸린 것은 드문 사례로 평가 받는다. 현대백화점의 실패는 재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했다. 현대백화점 주총 직후 한화솔루션의 분할 안건은 주총을 통과했지만 이달 14일 주주총회를 열고 파레트 사업부 인적분할 안건을 의결하려던 AJ네트웍스는 결국 인적분할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이외에도 상당수의 기업들이 분할을 추진하고 있는데 논란이 결코 적지 않다.

      OCI는 내달 주총에서 OCI 화학사업을 인적분할하고 존속법인의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한다. 역시 현물출자와 공개매수를 통해 지주회사가 사업회사 주식을 취득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선 이우현 부회장 등 오너일가의 현물출자가 예상된다. 역시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이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한다면 이우현 부회장의 회장 승진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다만 사업 분할에 대한 명분이 여전히 부족하단 지적이 적지 않다.

      오는 5월 주총이 예정된 동국제강도 유사한 형태다. 철강 사업을 쪼개고 공개매수, 현물출자 방식의 유상증자를 추진한다. 대주주인 장세주 회장, 장세욱 부회장이 현물출자하고 지주회사 지분을 신규로 취득해 지배력을 높이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수화학(3월), 대한제강(3월) 그리고 교보생명(2024년)도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설립을 계획중이다.

      기업들이 인적분할 후 현물출자를 통한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르는 것은 과세이연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도 하나의 원인이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주식을 현물출자하면 법인세 과세를 이연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올해 말까지 적용된다. 개인투자자의 경우 금융투자소득세 과세 이연 혜택이 있으나 대주주의 실질적인 이득이 더 큰 것으로 평가 받는다. 

      실제로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진행된 인적분할 총 193건의 과정에서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약 15%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익을 따지는 주주들이 늘어나고 주주권 행사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인적분할 발표 이후 주가가 하락하는 기업도 늘었다. 과거 LG에너지솔루션에서 시작한 물적분할의 논란의 핵심은 역시 주주권이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인적분할 역시 자사주의 마법,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등의 부작용이 점차 부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들이 긴장하는 이유중 하나는 최근 들어 국민연금이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섰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현대백화점 주총에 앞서 투자목적을 기존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는데 앞으로 인적분할이 예정된 기업들 또한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높은 곳들이 많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가 사실상 주주들의 집단화하고,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원년으로 본다"며 "주주들의 눈높이가 높아진만큼 보다 세밀한 환원책과 적극적인 설득과정이 수반하지 않으면 지배주주가 원하는 일방적인 지배구조개편 작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