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저하 기업들 감사의견 놓고 회계법인과 갈등 우려…지정감사제 곳곳서 파열음
입력 2023.02.16 07:00
    지정감사제 시행 4년 곳곳에서 불협화음
    작년 실적 저하 속 기업들 지정감사제 불만 커
    감사의견 놓고 곳곳에서 충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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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정감사제 도입 4년을 맞으면서 곳곳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회계투명성 강화란 이름 하에 시작되었지만, 기업들은 감사품질 상승은 커녕 비용만 증가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지난해 실적이 부진하면서 결산 보고서 작성을 놓고도 회계법인과 기업들간의 갈등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 8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주직적 지정감사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절달했다. 대한상의는 "주기적 지정감사제가 감사인과 피감기업 유착 방지 등 독립성 강화에 치중돼 감사 품질이 떨어지고 기업부담만 증가하는 부작용이 크다"고 주장했다. 

      지정감사제는 한 회사가 6년동안 동일한 감사인을 선임한 경우 3년간은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한 감사인에게 감사를 받게 한 제도다. 기업이 특정 감사인에게 감사를 받을 경우 분식회계의 위험이 크다는 판단에 2019년 발효돼 2020년 회계연도부터 적용되고 있다. 

      해당 제도 시행 4년에 접어들면서 지정감사를 받은 기업들은 새로운 회계법인을 감사인으로 선임했다. 일례로 3년간 안진으로부터 지정감사를 받은 삼성전자는 삼정을 새로운 감사인으로 작년 선임했다. 감사인이 새롭게 선임됨에 따라 이들이 내놓을 새로운 감사보고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정감사제의 취지상 새롭게 바뀐 감사인은 이전 감사인보다 엄격하게 회계감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처럼 회사와 감사인의 분식회계가 발생했을 경우 새로운 감사인이 이를 적발하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앉아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새롭게 지정되는 감사인과 기업들 사이에 긴장감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나 지난해에는 기업들 실적이 저하하고, 신용도가 떨어지는 상황이라 감사인과 기업간 갈등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외부감사대상 회사는 3만7519개사로 전년 대비 12.8% 증가했다. 최근 10년간 평균 증가율 5.5%의 두배 수준에 해당하는 증가율이다. 코로나 영향으로 경영악화가 심화하면서 부채가 늘고 외부감사 기준을 충족한 회사가 급증한 탓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선 주주총회를 앞두고 제2의 아시아나항공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감사인이 기존 회계처리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바 있다. 지난해 가뜩이나 실적이 않좋은 데다 감사인까지 바뀐 곳은 이런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다. 대한상의도 이를 우려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빈번한 감사인 교체로 전기 감사인이 검토한 재무제표와 감사보고서에 대해 신규 지정감사인이 과도한 지적을 하는 경우가 늘어 기업 재무제표를 수정하고, 주주 신뢰가 하락하는 문제도 있다”며 “실제 금감원에 따르면 비적정 의견을 받는 회사가 늘고 있고, 감사의견이 변경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지난해 대규모 M&A를 한 기업들도 결산 시즌을 맞아 회계법인과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일례로 재계에선 이베이를 인수한 이마트를 눈여겨 보고 있다. 지마켓은 지난해 3분까지 영업손실 525억원을 냈다. 통상적으로 1000억원의 이익을 냈다는 점에서 사실상 1500억원의 손실을 낸 것이다. 

      문제는 지마켓의 이런 실적 저하는 회계상으로 영업권 계상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다. 이마트는 지마켓을 인수하며 2조원의 영업권을 계상했는데 이에 대한 상각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매년 239억원의 감가상각비가 인식되고 있는데, 적자가 이어질 경우 영업권 상각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회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영업권이 자산이냐 부채냐를 놓고도 치열한 공방이 있는 가운데, 지정감사제 이후에 회계법인들은 영업권 상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영업권 자체가 미래의 수익을 가정해서 산정한다는 점에서 회계법인에게도 지나친 영업권 인정은 자칫 분식회계 이슈로도 불거질 수 있는 부담이 있다. 

      한 회계 전문가는 "적자가 날 경우 영업권 산출의 기본적인 가정이 달라지기 때문에 회계법인은 상각의 유인이 커지다"라며 "통상 결산 시즌 영업권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회계법인과 기업들간의 갈등이 깊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