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성과급 잔치는 끝났다"…대안 물색 분주하지만 마땅찮아
입력 2023.03.02 07:00
    저조한 실적·금융당국 눈치에 성과급 기대 저조
    기본급 협상부터 타업종 이직 등 대안 거론
    팀장급 "팀원 사기 꺾일까…내 몫 포기도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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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성과급 0원설(說)'.

      최근 증권가의 최대 화두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과급 잔치'가 이어지던 증권가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엔 중앙은행이 잇딴 금리 인상에 주식, 채권, 대체투자, 부동산 등 모든 부문에서 곡소리가 났다. 성과가 딱히 없기에 성과급을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는 것이 중론이긴 하나, 이 와중 수익을 올린 부서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

      대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주니어급 직원들 사이에서는 기본급 인상을 위한 협상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업종을 바꾸기 위한 '공부 열풍'이 일고 있다. 팀장급 임원들은 사기 진작을 위해 본인이 수령할 성과급여를 팀원들에게 나눠줄지 여부를 고민하는 중이다.

      "성과가 없으니 성과급도 없겠죠"

      증권업계에 따르면 내달 중 주요 증권사들의 성과급 지급이 마무리된다. 하나증권, NH투자증권 등이 지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는 높은 성과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대체로 인지하는 분위기다.

      기본적으로 증권사들이 '성과' 자체를 내질 못했다. 호황이던 증시가 한풀 꺾이며 위탁매매(브로커리지)를 비롯, 기업금융(IB) 부문 실적이 크게 하락했다. 실제로 실적 상위권을 주름잡던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모두 1년 만에 순이익이 절반 이상 감소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해 수익성을 방어해 온 중소형 증권사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려 금융당국의 지원을 받은 이래, 감독 대상이 됐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들을 대상으로 "성과급을 합리적으로 산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저조한 분양률에 본PF 대출 회수도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자산건전성에 경고음이 울리는 등 본업을 영위하는 것 또한 여의치 않다.

      한 증권업계 PF 부문 관계자는 "소속 부서가 수익을 낸 게 언젠지 기억이 안 날 정도인데 이런 상황에서 성과급을 바라는 것이 욕심"이라며 "안 잘리는 게 다행일 정도다"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한 중소형 증권사 PF 부서는 판교 지역의 한 오피스빌딩 투자로 억대 단위의 수익을 냈다. 하지만 성과급 기대감은 낮다. 이를 두고 증권업계 PF 관계자들은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투자 건은 하늘이 점지해준다고들 한다"라며 "그 기회가 요즘같이 증권사들이 어려울 때 찾아온 것이 안타깝다"라고 입을 모은다.

      기본급 올리기·성과급 나누기 등 대안 마련 나섰지만…

      지난 2~3년간 고액의 성과급을 누린 주니어급 사원들은 체감 수준이 다를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주니어급 사원들 사이에서는 기본급을 높이는 안이 주요하게 거론되고 있다. IB부서는 통상 기본급이 낮은 대신 성과급이 높은 편이다. 성과급 지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정규직으로 입사하더라도 연봉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협상이 쉽진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증권사마다 비용을 줄이는 분위기가 짙어서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성과급여 축소 요구는 증권사 관리 부서의 수요와 일치하기 때문에 되레 반가운 소식일 수 있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모 증권사의 경우 정규직 직원들의 기본급이 너무 높다며 대주주가 압박을 넣기도 한다.

      팀장급이 직원들과 성과급여를 나누는 것을 고민하는 모습도 연출되고 있다. 몇몇 증권사는 전체 성과급 규모에서 직급 순서대로 가져갈 파이(규모)를 결정해 부하 직원들에게 나눠주는데, 이 때 본인의 몫을 모두 팀원들에게 나누겠다는 것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팀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라도 성과급을 일부 챙겨주기는 해야할 텐데, 이를 위해 내 몫을 내놓는 안도 고민 중이다"라며 "그러나 이런 임금 지급은 일종의 하한선이 있어서, 차기 팀장도 자신의 몫을 팀원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전례를 만들까봐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아예 업종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나타나는 중이다. 특히 최근 부동산 PF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공부 바람'이 불고 있다. 인수금융, 인수합병(M&A) 부서로의 이동, 로스쿨 등 전문직으로의 직종 전환 등 관련 수요가 느는 중이다. 향후 증권가의 급여 수준이 하향평준화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투자 포트폴리오의 질(質)을 높이고자 대형 증권사에서 다소 업무 강도가 높은 투자기관으로의 이직을 준비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에 입사하는 주니어들은 대체로 급여 수준을 기준으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기본급이 낮은 경우 성과급까지 못받으면 타격을 크게 받을 수 있다"라며 "최근엔 이직의 기준이 '급여수준'에서 '본인의 성장'으로 옮겨가는 분위기가 일부 감지되는 중이다"라고 말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