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 감도는 보톡스 업계…소송 확대에 감염병법 개정 변수까지
입력 2023.03.03 07:00
    메디톡스, 대웅제약과 민사소송 1심서 기선 제압
    균주 출처 불확실한 다른 기업들로 확전 가능성
    작년 주인 바뀐 휴젤과는 미국 ITC 소송 진행 중
    균주 제출 의무 담은 감염병예방법 개정도 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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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보툴리눔톡신(이하 보톡스) 업계에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대웅제약과의 균주 전쟁에서 먼저 승기를 잡은 메디톡스가 이를 근거로 다른 보톡스 기업의 균주 출처를 문제 삼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휴젤과의 법적 공방이 진행 중이고, 이 외에 다른 기업과 쟁송 혹은 합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개정 여부도 중요한 변수다. 보톡스 등 생물테러 이용 가능성이 큰 병원체를 정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인데, 병원체 제출 의무가 새로 생긴다. 균주의 출처를 명확히 따질 길이 열리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라 보톡스 기업들의 사업지위에 변동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6년 보톡스 전쟁…민사 1심선 메디톡스 기선 제압

      2006년 메디톡스는 국내 1호이자 세계 4번째로 보톡스 제재를 개발했다. 2016년 대웅제약이 보톡스 제품을 출시하자 메디톡스는 자사의 균주와 기술을 도용했다며 국내에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대웅제약을 '영업상 비밀침해 혐의'로 제소하기도 했다.

      ITC는 2020년말 메디톡스의 손을 들어줬다. 균주 자체는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 판단했지만, 제조공정에 대해서는 영업비밀 침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듬해 메디톡스와 제휴사 미국 앨러간(ALLERGAN)은 대웅제약의 미국 파트너 에볼루스(EVOLUS)로부터 합의금과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대웅제약 제품의 미국 판매를 허용한다는 합의를 맺었다. 형사 소송에서는 대웅제약이 웃었다. 작년 2월 검찰은 대웅제약의 균주 관련 기술 유출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민사 소송에선 다시 메디톡스가 승기를 잡았다. 법원은 메디톡스가 대웅제약 측을 상대로 낸 501억원 규모 영업비밀 침해금지 청구 소송 1심에서 메디톡스의 손을 들어줬다. 소를 제기한 지 6년 만이다. 재판부는 대웅제약의 균주가 메디톡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에 손해배상금으로 400억원을 지급하고 해당 균주를 이용한 제품을 폐기하라고 했다. 대웅제약은 ‘1심의 오판을 바로잡겠다’며, 메디톡스는 ‘1심에서 인정되지 않은 부분을 바로잡겠다’며 각각 항소했다.

      균주 출처 의문 여전…메디톡스 확전 가능성 주목

      메디톡스가 보톡스 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했는데 앞으로 다른 기업들로 전선을 넓혀 나갈지 관심이 모인다. 회사는 자사의 균주와 공정을 불법 취득해 상업화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추가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1심 판결 후 메디톡스와 경쟁사들의 주가는 엇갈렸다. 다른 보톡스 기업들이 먼저 메디톡스에 ‘합의’를 요청해 올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979년 양규환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미국에서 균주를 들여왔고, 그 제자인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가 균주를 활용해 제품을 개발했다. 제테마는 2017년 영국 공중보건원(Public Health England) 산하 기관에서 상업용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균주를 도입했고, 2019년 코스닥 상장에 앞서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에 균주 유전자 정보를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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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외에 십 여 곳의 국내 보톡스 기업들은 대부분 영업비밀을 이유로 균주 정보를 자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부패한 통조림(휴젤), 마구간(대웅제약) 등 인공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균주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만 이런 균주들은 효율성이 떨어져 상업화하기 쉽지 않다 보니, 상당수 기업이 선구자인 메디톡스의 균주를 여러 경로로 들여와 활용하고 있을 것이란 추정을 하기도 한다.

      메디톡스는 휴젤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 작년 3월 균주와 영업비밀을 도용했다며 휴젤과 휴젤아메리카 등을 ITC에 제소했다. 메디톡스는 2021년 글로벌 소송 전문 로펌 ‘퀸 엠마뉴엘’을 선임해 소송전을 준비해 왔다. 매년 수백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ITC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소송 펀드’의 도움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펀드가 소송 비용을 대되, 승리 시 과실을 펀드와 회사 측이 나눠 갖게 된다.

      2월 초 휴젤은 소송을 조기에 종결해달라고 ITC에 요청했지만, 메디톡스와 ITC 소속 변호인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휴젤이 균주 및 공정에 대한 자료를 제시하면 도용 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작년 ㈜GS는 중국 CBC그룹 등과 컨소시엄을 이뤄 휴젤을 인수했다. 당초 균주 출처에 큰 문제가 없다고 봤지만 향후 법적 공방 결과에 따라 인수 성과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 특허 관련 소송에서는 당사자가 입증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주장이 맞다고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며 “휴젤이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 그에 따라 도용 여부가 판단될 것이고, 메디톡스가 그 논리를 가지고 국내에서도 다툼을 이어가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염법예방법 개정도 변수…균주 제출 및 검사 의무 부여

      보툴리눔 톡신은 1그램(g)만으로도 수십만명 이상의 생명을 앗을 수 있는 맹독 물질이다. 자연 상태에서 가끔 보고되던 균주였는데, 생화학 무기로 활용하기 위해 실험과 연구가 이뤄져 지금까지 발전했다. 각국에선 균주의 이동 생산을 철저히 관리한다. 세계적으로도 핵심 원천 기술을 가진 곳은 미국 엘러간과 솔스티스 뉴로사이언스(Solstice Neuroscience), 프랑스 입센(Ipsen), 독일 머츠(Merz), 중국 란저우 생물제품연구소 등 손에 꼽힌다. 유독 우리나라에 보톡스 업체가 많은 편이다.

      현행 법에서는 속임수나 그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생물테러감염병병원체 보유 허가를 받은 경우 질병관리청장은 그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탄저, 에볼라열, 두창 등을 비롯해 보투리눔 톡신 등이 생물테러감염병에 해당한다. 다른 회사의 균을 도용해 보유 허가를 받았다는 점이 드러나면 사업을 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다만 명확한 ‘조사권’이 없다 보니 관리나 규제에 사각지대가 있었다.

      이에 2021년말 생물테러감염병병원체의 출처, 관리, 취급자의 자격 등을 정한 감염병 예방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병원체 보유자는 30일 이내에 병원체를 질병관리청장에 제출해야 하고, 질병관리청장은 제출 병원체와 허가받은 병원체가 일치하는지 검사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 명확히 균주의 출처를 분석하고 허가 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민간에 널리 퍼져 있는 균주가 테러에 쓰일 위험성도 줄어든다.

      다만 개정안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관련 업계에서 과도한 규제라는 반발이 있어 발의 후 1년이 넘도록 개정 작업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법안은 소위원회에도 올라가지 못한 채 계류돼 있다. 여야간 정쟁이 장기화하고 있는 점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