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도 팔더니 SM까지…또 주주권 내려놓는 국민연금
입력 2023.03.03 15:38|수정 2023.03.03 15:39
    2주새 1170억어치 주식 매도
    8%에서 4%대로 지분율 급감
    국민연금, 하이브·카카오 지분은 유지
    일반투자, 주주권행사 결정한지 8개월만
    과거 LG화학 분할때도 대량 매도 이력
    경영참여 선언한 한진칼, 19년 주총 직후 주식 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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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연금이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대주주 지위를 내려놨다.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며 투자목적을 변경한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국민연금은 과거에도 경영권 분쟁을 비롯해 민감한 이슈가 불거진 기업에 대해 지분율을 대거 낮추는 모습을 나타내 왔다.

      올해엔 행동주의 펀드가 득세하며 각 기업별 주주총회에서 민감한 안건, 즉 찬반이 양립하는 안건들이 대거 상정될 전망이다. 과거에는 LG화학과 같은 물적분할 추진 기업들이 주목을 받았다면 올해엔 인적분할을 통해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 같은 기업들의 상당수는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 내부적으론 의결권 행사 방향을 명확히 결정할 의사결정 기구가 재정비되지 못한 상황으로 합리적인 의결권 행사가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국민연금은 지난 2월7일부터 2주에 걸쳐 SM 주식 총 1160억원어치(총 4차례, 매도일 종가 기준)를 매도했다. 매도 후 지분율은 4.32%로, 기존 8.96% 대비 4.64%포인트가량 줄었다. 지분율이 5%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공시 의무도 사라졌다. 약 4% 남짓의 지분이 남았기 때문에 '일반투자' 목적을 유지할 지는 미지수다.

      국민연금의 주식보유 목적은 크게 단순투자와 일반투자 그리고 경영참여로 분류한다. 국민연금이 경영참여를 선언한 기업은 없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보유 목적은 사실상 일반투자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6월 SM에 대한 주식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이는 경영진 면담, 공개서한 등을 요구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올해 들어 투자보유 목적을 일반투자로 변경한 현대백화점의 주주총회에서 인적분할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하며 안건 부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SM 지분 매각에 따라 국민연금은 올해 정기 주총 이후부터 4% 내외에 해당하는 지분율만큼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8%가 넘는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다면 몇 안되는 대주주로서 상당히 유의미한 주총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지만 국민연금 스스로 이 같은 역할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SM은 이달 정기주총 이후에도 하이브와 카카오의 경영권을 둘러싼 경쟁이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표대결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양새가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국민연금은 하이브 지분 6.6%, 카카오 6.4%를 보유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보유목적은 일반투자로 언제든 주주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설정돼 있다.

      국민연금이 민감한 이슈가 불거진 기업들에 대해 지분율을 낮추는 사례는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2020년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현 LG에너지솔루션) 분사계획을 발표하자 국민연금은 이사회 날부터 주총일까지 약 3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주식을 장내매도 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대거 사들인 것과는 상당한 대조를 이뤘다. 주총에서 분할안건의 찬성률은 80%가 넘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몇몇 기관만이 반대표를 행사했지만 대세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2019년 "장기투자자로서 단기보다 장기 수익률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히며  이후 한진칼에 대해 제한적인 경영참여를 선언했다.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에 대해 경영참여를 결정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주주총회 이후 5% 미만으로 지분율을 축소했고 수개월에 걸쳐 한진칼 지분을 꾸준히 매도하며 사실상 대주주 지위를 내려놓았다. 일부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되지만 국민연금이 공표한 '장기투자', '책임투자'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행보였다. 사실 이 외에도 남양유업, 효성 등 국민연금이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즉 승산 없는 기업들에 대해선 일찌감치 발을 빼는 모습들을 보이기도 했다.

      국민연금의 현재 상황을 비쳐보면 기업들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미지수란 평가도 있다. 국민연금은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거나, 찬반에 대한 결론을 명확히 내려야 하는 사안들에 대해선 의결권 행사를 위탁운용사에 맡기지 않고 직접 행사한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해 과거 포스코의 물적분할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사안들은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에 권한을 위임해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피하고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취지이다. 물론 구성원들의 전문성에 대해선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탁위는 3명의 상근위원을 포함해 총 9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6명의 비상근위원들 가운데 4명이 지난달 임기가 만료됐다. 여전히 새로운 구성원이 최종 확정하지 못한 상태로 사실상 올해 주주총회에서 활약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앞으로 다가올 주주총회에 시즌에 국민연금이 얼마나 유의미하고 합리적인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올해 주주총회 시즌엔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제안 안건이 주요 화제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일몰이 예정된 올해 일몰 예정인 지주사 전환 세제혜택을 받으려는 기업들의 인적분할도 꾸준히 추진될 전망이다.

      가장 민감한 기업은 역시 KT다. KT는 국민연금이 제기한 '투명성' 논란에 의해 차기 CEO 후보로 내정된 대표이사가 중도 후보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재공모 후 선발 과정에서도 잡음이 끊이질 않는데 여당은 적격후보 리스트(숏리스트) 발표 이후 '이권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비난하는 가운데 대통령실도 이에 힘을 실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표이사 선임에 대한 국민연금의 향후 표결 방향이 투자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