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SVB 파산 '급한 불은 껐지만'...여전한 시스템 리스크 우려
입력 2023.03.13 11:08
    2007년 이후 첫 은행 파산...미국 금리인상 리스크 첫 사례
    금융위기 비화 가능성은 낮지만...결국 '긴축'이 핵심 원인
    단기 자금 장기로 운용하다 '금리인상' 촉매로 부실 발화
    긴축 와중에 유동성은 공급해야 하는 상황...3월 FOMC 중요
    • 자산 277조원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문을 닫으며 최근 이틀간 금융시장이 불확실성에 출렁였다. 미국 정부가 예금자 전액 보호라는 발빠른 조치에 나서며 시장은 일단 안심하는 분위기다.

      SVB 파산은 지난해 3월 시작된 미국 금리인상으로 인해 금융기관이 망가진 첫 사례다. 2007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 은행이 파산한 사례이기도 하다. SVB 사태가 이전의 베어스턴스나 리먼브러더스 사태처럼 글로벌 금융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이 아직은 낮다는 분석이 많다. 다만 결국 '고강도 긴축ㆍ금리인상'이 핵심 원인인만큼 비슷한 사례가 추후 재발될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미국 정부는 12일(현지시간) 밤 SVB 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발표했다. 1인당 25만달러(약3억3000만원)인 예금자보호한도를 넘어 SVB에 맡긴 예금 전액에 대해 정부가 지급을 보증한다는 내용이었다. 

      구제금융(Bail-out)은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보호 대상은 예금자로 한정하며, 주주 및 채권자는 구제하지 않는다. 또한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b)가 상업은행에 단기자금을 빌려줄 때의 금리인 '재할인율'을 인하해 예금 인출에 대응하기 위한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대책 발표 이후 미국 S&P500지수 야간선물은 한때 1% 이상 상승세를 보였다. 유동성에 민감한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6시간동안 7%나 올랐다. 13일 오전 코스피지수도 보합세를 보이며 우려 대비 선방하는 분위기다.

      SVB 파산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파악된다. 

      SVB는 주로 스타트업ㆍ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예금을 받고 돈을 빌려주는 영업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벤처업계에 대규모 유동성이 유입되며 2017년 440억달러(약 58조원)였던 예금 규모가 2021년말 1890억달러(약 250조원)으로 5배 가까이 급증했지만, 대출은 같은 기간 230억달러(약 30조원)에서 660억달러(약 87조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SVB는 잉여자금을 주로 미국 장기 국채나 MBS(주택저당증권)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해왔다. 문제는 연준이 11개월간 기준금리를 425bp(4.25%포인트)나 급격히 올리며 터졌다. SVB의 자기자본이 163억달러(약 21조원)인데, 지난 1년간 채권 운용에서만 150억달러(약 19조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채권손실은 만기까지 버티면 되지만, 주된 예금자인 벤처기업들이 자금 환경 악화로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고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며 파산에 이른 것"이라며 "단기 자금을 장기로 운용한 '듀레이션'(가중평균만기) 문제"라고 분석했다.

      SVB 사태는 일단 '바젤3' 규제도 받지 않는 지역ㆍ중소형 은행의 이슈로 정리되는 분위기지만, 긴축으로 인한 시스템 리스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당분간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미칠 여파는 상당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미국 국채 2년물 금리가 지난 2일간 50bp(0.5%포인트)나 떨어졌다. 물가 상승 기조(인플레이션)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됨에 따라 연준이 3월 빅스텝(기준금리 50bp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5.08%까지 올랐던 2년물 금리는 현재 4.5%대까지 급락한 상태다.

      다만 미국 국채 선물 시장에 반영된 6월 미국 기준금리 전망치는 여전히 지금보다 100bp(1%포인트) 높은 5.50~5.75%다. 오는 23일로 예정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빅스텝(50bp 인상)이 있을 거라는 확률 전망치도 SVB 사태 이전으로 돌아왔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이번 SVB와 블랙스톤부동산펀드, 한국 부동산PF 사태는 모두 단기로 조달해 장기로 운용하다 사고가 난 케이스이며 촉매가 된 것은 급격한 금리인상이었다"며 "일부 주체들의 어리석은 운용 행태로만 매도하긴 어려우며, 이 때문에 연준이 안심하고 금리인상 경로를 바꾸지 않는다면, 결국 SVB 사태 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금융권은 일단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모습이다. 다만 13일 오전 '해외에서 투자를 받은 모 대형 벤처캐피탈의 유동성도 상당 부분 SVB에 묶여있다'는 등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금융위원회는 13일 아침 금융시장 현황 점검회의를 열고 금융감독원 등과 협조해 국내 금융회사의 건전성 및 유동성을 재점검키로 했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미국 연준은 바쁜 긴축의 와중에 예금자 보호를 이유로 유동성을 풀어야 하는 자가당착적인 상황과 마주하게 됐다"며 "3월 FOMC에서 연준이 어떤 방향성을 보이느냐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