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카·엔데버·쉐이퍼·이베이…'고가 인수' 해외 M&A 부담 본격화
입력 2023.03.16 07:00
    "숫자보다 미래 시너지" 韓기업 앞다퉈 해외社 인수
    엔터·플랫폼, 현지 네트워크 위해 '높은 몸값' 감수
    3000억 들인 쉐이퍼 빈야드, 현지서도 "너무 비싸"
    인수 1년여…시너지 모호한데 신세계 부담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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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기업들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엔터사, 플랫폼부터 와이너리까지 다양한 해외 기업들을 인수했다. ‘업계 최대’ ‘그룹 최대’ ‘국내 최초’ ‘조단위’ 수식어가 붙으며 주목받은 거래들의 현재 성적표는 마냥 훌륭하진 않다. ‘미래 시너지’를 염두에 둔 전략적 인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찌감치 평가를 내릴 이유는 없다는 시각도 있지만, 재무부담 등 '고가 인수'의 그림자가 점차 짙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1년 하이브의 이타카홀딩스(이하 이타카) 인수는 당시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대 거래로 주목받았다. 애초에 '고가 인수'를 감수한 거래였다. 뒤늦게 인수전에 뛰어든 하이브는 방시혁 의장이 직접 이타카 창업자 스쿠터 브라운을 설득해 거래를 성사시켰다. 팬데믹 여파로 이타카도 2020년 실적이 좋지 않았지만 방 의장이 오직 ‘시너지’에 집중하면서 조단위 투자가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이타카는 아직 이익 기여도나 통합 시너지 면에서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는 평가다. 작년 3분기까지 하이브 연결기준 매출에서 이타카가 차지하는 비중은 11% 정도다. 작년 4분기 하이브의 실적이 개선됐지만, 영업 외적으로는 이타카 영업권 손상차손(800억원) 및 주가하락에 따른 전환사채 평가손실(400억원) 등이 반영되며 당기순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하이브 경영진은 주요 매출처인 방탄소년단(BTS)의 군입대 공백 현실화로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 2월엔 미국의 힙합 레이블 ‘QC 뮤직’을 3140억원에 사들이는 등 '레이블 수집'에 공을 들이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 참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이브의 공격적 M&A 행보에 대해 시장에서는 얼마나 명확한 검토와 숙고를 거친 것이냐 하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내부 심사에서 탈락한 투자 건 방 의장이 '다시 살리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외 M&A는 특히 언제 실효적 효과를 낼 지 예측이 어렵다 보니, 최근 하이브 이사회에서도 해외 사업 리스크 관리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CJ ENM은 2021년 11월 미국 할리우드 제작사 피프스 시즌(구 엔데버 콘텐트)를 약 1조원(9300억원)에 인수했다. 회사 사상 최대 규모 M&A인데 인수 당시부터 평가가 엇갈다. 엔데버 콘텐트 모회사인 엔데버그룹홀딩스는 2020년부터 적자가 이어지는 등 ‘숫자’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다만 글로벌 제작 역량 강화, 네트워크 확대 등 장기적인 효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평도 많았다. 

      CJ ENM 입장에선 ‘1조원짜리 할리우드 입장권’을 산 셈인데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피프스 시즌은 작년 상반기까지 적자를 면치 못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제작이 지연되며 매출 기여가 크지 않았다. 다만 4분기 들어서는 영화 부문 매출이 크게 오르는 등 턴어라운드에 대한 기대감도 생기고 있다.

      당장의 재무적 부담이 문제다. CJ ENM은 피프스 시즌 인수자금 대부분을 단기 차입금으로 조달하며 부채비율이 130% 수준으로 높아졌고 순차입금이 급증했다. 콘텐츠 투자 확대 및 티빙 적자 지속 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지난해엔 순손실 1657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하이브의 이타카, CJ ENM의 피프스 시즌 모두 당장의 실익보단 ‘장기 시너지’를 보고 전략적으로 인수한 것”이라며 “팬데믹 초기 엔터나 플랫폼 기업들에 대해 적정 수준을 넘는 가치산정이 이뤄지는 경우 많았다는 점은 부담 요소"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이 작년 2월 2억5000만달러(약 3000억원)에 인수한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고급 와이너리 ‘쉐이퍼 빈야드(Shafer Vineyard)’도 고가 인수 여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세계가 인수 이후 처음으로 들여온 쉐이퍼 와인의 가격은 최대 18%까지 올랐다. 미국을 포함한 해외 시장에서 쉐이퍼 와인 가격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수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쉐이퍼 M&A는 국내 유통사가 처음으로 미국 와이너리를 인수한 사례다. 팬데믹 이후 작년 초까지 전세계에 유동성이 넘쳤고, 유명 와이너리의 가치도 크게 올랐던 터라 다소 비싼 값을 치를 수밖에 없었단 평가다. 미국 현지에서도 고가 인수라는 평이 있었다. 미국 와인 컨설팅사 인터내셔널와인어소시에이츠는 나파밸리의 고급 와이너리는 보통 직전 해 거둔 순이익의 15배에서 20배 정도에서 거래되는데 쉐이퍼 빈야드 M&A는 28배에 달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오너의 의지가 크게 반영되면서 ‘비싼 거래’ 성사가 가능했다. 와인 애호가인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나파밸리를 찾는 등 힘을 보탰다. 신세계그룹에선 경쟁사들에 와이너리를 빼앗길까 노심초사했는데, 정작 당시 투자업계에서는 신세계가 왜 거래를 덥석 받는지 의문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신세계가 2021년 말 인수한 이베이코리아(현 지마켓)의 사정도 비슷하다. 그룹 사상 최대 거래였지만 여전히 매출이나 이익 기여도가 미미해 경영진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3조원대 자금을 들이면서 ‘선 인수, 후 시너지 전략 수립’에 나서 혼란을 자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달 초 신세계는 SSG닷컴 공동 대표로 G마켓 출신 이인영 부사장을 선임했다. 기존 강희석 이마트 대표이사 1인 체제에서 ‘투톱 체제’로 바꿨다. 지마켓과의 협업 체제 강화와 계열사간 시너지를 노리겠다는 의미로 풀이되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앞서 시장에서 거론됐던 SSG닷컴-지마켓 합병 가능성도 크지 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 많은 돈을 주고 산 기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니 내부적으로도 압박이 큰 분위기”라며 “지금까지는 그래도 괜찮지만 재무제표에 부진한 숫자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평가 이슈 등이 부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