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로비 시 ITC 무력화 우려”…휴젤 보톡스 분쟁 조기종결 거절한 ITC
입력 2023.03.17 07:00
    메디톡스, 작년 균주 도용 문제로 ITC에 휴젤 제소
    ITC서 균주 비교하려면 산자부서 반출 승인 얻어야
    해 넘도록 승인 안나자 휴젤 ITC에 조기 종결 요청
    ITC "조기 종결하면 각국서 로비 늘어날 것" 반대
    절차 속행 예고…결과 따라 GS그룹 입지 달라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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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메디톡스와 휴젤의 보툴리눔톡신 분쟁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작년 메디톡스는 균주 도용을 이유로 휴젤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우리 정부의 균주 반출 승인이 늦어지자 휴젤은 사건 조기 종결을 요청했으나 ITC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외 정부 절차 문제로 ITC를 조기 종결하면 피고들이 자국 정부에 로비하도록 하는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ITC의 판단에 따라 메디톡스와 휴젤, 휴젤에 투자한 GS그룹의 입지가 크게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ITC는 지난달 22일 메디톡스와 휴젤의 소송을 담당하는 스탭 변호인단이 휴젤의 소송 종결 요청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는 의견서를 공개했다. 앞서 2월 2일 휴젤이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의 보툴리눔톡신 자료 해외 반출 승인이 지연돼 기업 경영에 타격을 입는다며 소송을 조기 종결해달라는 의견을 낸 데 따른 것이다.

      메디톡스는 작년 3월 휴젤과 휴젤아메리카 등을 균주 및 영업비밀 도용 혐의로 ITC에 제소했다. 그해 5월부터 ITC의 조사가 개시됐지만 해가 넘도록 가시적인 움직임이 없다. 맹독성 물질인 보툴리눔톡신을 국외로 반출하기 위해선 산자부의 승인이 필요한데 이 절차가 늦어졌다. 2019년 시작된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ITC 소송에서 산자부의 승인이 한달여 만에 이뤄진 것과 대비된다.

      현행 국내 법에서는 부정한 방법으로 보툴리눔톡신 균주 보유 허가를 받은 경우, 정부가 그 허가를 취소하도록 한다. 다만 아직 균주 제출 의무는 없기 때문에 도용 여부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 메디톡스 입장에선 ITC가 균주를 받아 도용 여부를 가려주는 것이 가장 실효적인 방법이다.

      휴젤은 메디톡스가 거짓 음해로 발목을 잡는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회사는 부패한 통조림에서 균주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데, ITC 절차를 거치면 주장의 사실 여부가 가려진다. 다만 균주 반출 승인 지연 등으로 법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자사와 무관한 문제로 절차가 늦어지는 터라 ITC에 조기 종결을 요청했는데, ITC가 이를 거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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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2일 ITC 의견서 일부 발췌

      ITC 스탭 변호인단은 외국 정부가 당사자들의 디스커버리(증거제시제도)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사를 종결하는 것은, 다른 피고들로 하여금 디스커버리를 거부하거나 자국 정부로 하여금 정보를 제한하도록 로비를 하게 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 가능성을 확실히 차단하기 위해 휴젤의 조기종결 신청을 기각했다는 것이다.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ITC가 우리 산자부의 절차 지연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듯한 뉘앙스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있다.

      ITC가 절차를 끝까지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만큼 메디톡스와 휴젤 모두 대응에 총력전을 펼 것으로 보인다. 메디톡스는 글로벌 소송 전문 로펌 퀸 엠마뉴엘(Quinn Emanuel)과 소송펀드(Litigation Fund)의 도움을 받고 있다. 휴젤도 올해 들어 산자부에 서류 반출 승인 요청을 이어가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과 ITC 소송에서 판정승했고, 지난달 민사 소송에서는 균주 반환 결정까지 이끌어내며 완승했다. 메디톡스와 휴젤의 ITC 소송이 '닮은 꼴 분쟁'인 메디톡스-대웅제약의 전철을 밟게 된다면 휴젤과 휴젤에 투자한 GS그룹도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GS는 작년 중국 CBC그룹 등과 휴젤 경영권 지분을 1조5587억원에 인수했다. 당초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하려 했지만 협의 과정에서 투자금을 2억5000만달러로 늘렸다. 휴젤의 최대주주는 아프로디테(Aphrodite Acquisition Holdings LLC)인데, ㈜GS는 아프로디테 공동최대주주인 특수목적회사(Dione Ltd.)의 최대주주다. GS그룹은 휴젤을 관계회사로 편입해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국내 보툴리눔톡신 업체 중 균주 출처가 확실한 곳은 메디톡스와 제테마 정도가 꼽힌다. 상당수 업체가 인공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균주를 발견했다고 밝히는데 자연 상태에서는 고효율의 균주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업체들의 균주 불법 도용이 만연해 있을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베인캐피탈이 휴젤을 인수할 때도, GS그룹 컨소시엄에 매각할 때도 균주 문제가 발목을 잡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GS그룹이 법률적 위험을 얼마나 살폈을지는 미지수다. 휴젤 투자금이 적을 때는 협상 과정에 깊이 관여하기 어려웠는데, 투자금을 늘린 후에도 균주 출처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글로벌 사모펀드(PEF)를 거친 만큼 위험이 제거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GS 이사외에 올려진 휴젤 투자 안건에 대해 한 검찰 출신 사외이사는 반대표를 던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GS그룹은 오너 일가 구성원들의 지분이 많지 않다 보니 경영을 이끌게 됐을 때 성과를 내기 위해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의 이사회는 사전에 의사를 조율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 출신 사외이사가 휴젤 투자건에 반대표를 던진 것은 이례적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