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SVB 만지작대다 갑자기 '규제 강화'로 돌아선 금융당국
입력 2023.03.22 07:00
    Invest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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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팡질팡, 오락가락이다. 

      불과 2주 전엔 자본금 250억원만 갖춰도 은행 인가를 내주는 '특화은행'을 검토하더니,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터지자 경기대응완충자본 부과ㆍ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 도입ㆍ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 도입 등 '자본 종합 규제 세트'를 들고 나왔다.

      관치(官治)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은행권 경영ㆍ영업관행ㆍ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이야기다. 출범 이후 내놓는 결론마다 '비현실적이다', '한 치 앞을 못 본다', '효용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금융당국의 체면만 깎아먹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불과 3달 전만 해도 금융당국은 '국내 은행업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없으며 집중도 역시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4개국 중 일반은행 기준 23위로 시장집중도 역시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결론이었다.

      대통령이 '지금 국내 은행업은 과점 시장'이라는 의견을 내놓으며 갑자기 판이 뒤집어졌다. 인가단위 세분화(스몰라이센스) 역시 TF 1차 회의 주제로 논의하며 급물살을 타는 듯한 모양새였다. 자본규제를 지방은행ㆍ인터넷전문은행 수준(250억원)으로 완화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인터넷전문은행 추가 인가, 저축은행 등의 지방은행 전환 등의 대안도 논의가 이뤄졌다.

      이때 성공 사례로 제시한 것이 SVB였다. 별도 인가단위에 따른 특화은행은 아니지만, 고위험 벤처기업만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특화은행처럼 기능하고 있다는 소개와 함께였다. 해당 논의가 이뤄지고 불과 열흘 뒤 SVB가 파산하며, 특정 고객에 자산이 집중되는 스몰라이선스 은행의 리스크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막상 인터넷전문은행의 '메기' 역할을 제한한 건 금융당국이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본격적으로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늘리라'며 압박하자, 인터넷은행들은 고신용자 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규제에 적응했다. 그 결과 고신용자 가계대출 부문에서 기존 시중은행들의 경쟁자가 다시 사라졌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시중은행들의 가계대출 예대마진차 확대로 이어지기도 했다.

      비은행 금융사에게 혜택을 줘 은행과 경쟁시키겠다는 구도도 비현실적이었다.

      TF의 2차 회의 주제는 비은행 금융사였다. 증권사, 보험사, 여신전문금융사에 지급결제 관련 업무를 허용해 소비자의 편익을 개선하고 은행과의 경쟁을 촉진시키겠다는 방안이었다. 은행의 주 업무인 지급결제와 대출ㆍ외환 분야에 타 금융업계의 진입을 허가하면 은행의 독과점 폐해를 방지할 수 있다는 복안이었다.

      막상 해당 방안을 접한 비은행 금융사는 일제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증권사들의 경우 법인지급결제 이슈는 16년 묵은 오래된 문제다. 지난 2007년 일종의 ‘가입비’ 명목으로 금융결제원에 특별분담금 약 4000억원을 지불했으나, 은행권의 반대로 법인지급결제 시행이 무산된 바 있다. 비은행 금융사 계좌의 경우 예금자보호법 대상이 아니라, 법인지급결제가 시행된다 해도 기업들이 거래 계좌를 옮길 가능성이 낮다는 현실적 한계도 지적된다.

      매크로 환경이 급변하자, TF의 논의 주제도 규제로 기울었다.

      TF는 SVB 파산 후 진행된 3차 회의에서 은행의 전반적인 자본비율 이슈를 논의했다. 경기대응완충자본 부과,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 도입을 검토ㆍ추진키로 했다. 금융당국이 은행에 직접 대손금 적립을 요구하는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 도입 역시 추진 중이다. 비은행권으로의 풍선효과를 고려해 비은행에 대한 추가 규제 여지도 열어놨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결론은 금융당국의 이전 입장과 다분히 대비되는 것이다. 당장 1차 논의에서 내놓은 '자본금 250억원 특화은행'부터가 그렇다. 은행의 건전성이 이슈가 된 시점에 자본력이 허약한 소형은행을 도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평가다. SVB 파산 직후 관계기간 긴급 회의를 열고 '국내 은행은 양호한 유동성과 충분한 기초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려놓고도, 추가 자본 규제에 나선다는 내용 역시 말과 행동이 다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TF에 참여하는 민간전문가의 구성이 지나치게 '교수'에 편향됐다는 분석도 있다. 1차 회의엔 민간전문가 5명 중 3명(신인석, 이항용, 권남훈)이, 2차 회의엔 7명 중 5명(신인석, 이항용, 권남훈, 이상규, 조성진)이, 3차 회의엔 5명 중 2명(이항용, 안수현)이 교수였다. 교수들을 제외하면 민간전문가는 조재박 KPMG 본부장, 최현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윤민섭 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위원 3명 뿐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에서는 지난해 9월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PF 위기가 같은해 7월 금감원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전수조사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며 "금융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반드시 불확실성과 후폭풍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