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CS 사태가 던진 명제 "은행의 제1 책무는 리스크 관리다"
입력 2023.03.22 07:00
    Invest Column
    • SVB·CS 사태가 던진 명제 "은행의 제1 책무는 리스크 관리다" 이미지 크게보기

      "은행은 리스크 관리를 못하면 망한다"

      너무 뻔한 명제이지만, 매번 망각한다. 그리고 사단이 벌어진다.

      미국내 자산 기준 16위이자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돈줄로 불리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소위 잘나간다던 스타트업 CEO들은 며칠 전만 해도 '잘 난 척'하고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뱅크런 사태가 터지자 말 그대로 얼굴이 '백지장' 상태로 은행 앞에 줄을 서야 했다.

      사실 SVB 사태는 명확히는 은행에 유동성 문제가 심각해서 생긴 건 아니다. 고객이 맡긴 예금을 다른 소비자들에 대한 대출보다는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 장기 자산을 구입하는 데 치중한 결과 나타난, 만기별 자산 관리 능력의 무능에서 빚어졌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을 전혀 예상치 못한, 리스크 관리 능력 부족이었다.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 사태는 리스크매니저먼트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크레디트스위스(CS)의 사업 부문을 보면 스위스 내 소매 및 기업금융와 자산관리사업을 총괄하는 스위스뱅크가 있고, 기타 지역의 자산관리를 담당하는 웰스매니지먼트 및 애셋매니지먼트, 투자은행 사업을 담당하는 인베스트먼트뱅크가 있다. 문제의 발단은 자산관리와 투자은행 부문이다.

      CS그룹은 2021년 1분기에 월스트리트를 뒤흔든 빌 황의 헤지펀드 '아케고스(Archegos)'와 관련, 한화 6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또 운용 중이던 그린실(Greensill) 등 공급망 금융(supply chain finance) 펀드가 부실화돼 약 22억달러 상당의 고객 자산이 반환 지연, 또는 상각됐다.

      이후 CS는 구조조정을 통해 영업경비를 절감하는 한편 자본효율성을 제고하고, 사업리스크를 경감시킨다는 계획이었지만 이미 회사 이름에 붙은 '크레디트(신용)'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결국 스위스 2위였던 CS는 스위스 1위 은행 UBS에 전격 인수됐다.

      상업은행이든 투자은행이든 은행(Bank)의 기본적인 책무와 보상은 고객이 믿고 빌려준 자금을 잘 관리하면서 이를 다른 고객에게 빌려주고 그에 대한 합당한 이자(또는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은행이 이자 장사를 한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그게 은행업의 본래 목적이다. 그리고 그 이자에는 그 돈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대한 보상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기고 빌리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은행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우리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대형 은행들이 망하는 건 흔치 않다. 영업이나 투자 최고책임자가 무능하다면 갈아치우고 적임자를 새로 잘 뽑아 그 능력을 키우면 된다. 그런데 리스크 관리는 그렇지 않다.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가 무능하면 은행은 한 순간에 망한다. CEO가 IB파트와 자산운용파트의 편만 들고 CRO의 의견을 무시해도 마찬가지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 때 은행들의 몰락이 그러했고, 지금 그 광경을 다시 보고 있다.

      한국 금융당국은 연초부터 은행들의 이자이익 의존도가 높다며 비이자이익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언론들도 동조해 너나할 것 은행들의 '이자 장사'를 비판하는 논조를 보인다. 그런데 유럽발 또는 미국발 은행의 위기 상황에서도 비이자이익 확대가 유효한 전략인지 묻고 싶다.

      당국이 한 마디 던지면 은행들은 비이자이익 확대 경쟁에 나설 게 뻔하다. 거기서 발생할 문제와 비용들을 현 금융기관들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오히려 '일을 크게 벌이지 않은' 국내 은행들의 보수적 경영을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