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적분할 반대해도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못해”…모호한 기준에 애타는 소액주주들
입력 2023.03.23 07:00
    주식매수청구권 권한 부여 '기준' 없다보니
    법안 개정 후 첫 정기추종에서 혼란 예상돼
    기준일이 지난 연말인데 이사회 결의는 그 후
    "실제 피해를 볼 주주들은 제도 혜택 못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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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물적분할을 하는 회사들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작년말 물적분할에 대해서도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됐지만, 올해 초 물적분할 결정으로 피해를 보는 주주들은 이번 정기 주주총회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구체적인 규정을 갖추지 못해 '소액주주 보호' 취지가 퇴색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작년 12월 20일 국무회의에서 자본시장법 시행 개정안이 의결됐다.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소액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식회사의 합병이나 영업양도 등 주주의 이익과 중대한 관계가 있는 법정 사항에 관하여 주주총회의 결의가 있는 경우, 이에 반하여 주주가 자기 소유주식을 공정한 가격으로 매수할 것을 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이는 작년 9월 5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일반주주 권익 제고방안’의 후속조치로 이뤄졌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한 ‘물적분할 시 소액주주 보호’ 차원이다. 해당 법안 개정으로 금융당국이 마련한 물적분할 관련 3중 보호장치(공시강화, 주식매수청구권 도입, 상장심화 강화)가 모두 제도화됐다. 

      개정 내용은 즉시 시행됐다. 올해 정기주총에서도 적용이 되는 제도다. 다만 올해 물적분할 결정으로 피해를 보는 주주들은 막상 권한을 행사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번 정기주총의 주주 기준일은 작년말 기준이고, 의결권도 그때 주식을 갖고 있던 주주에만 부여된다. 올해 초 물적분할 계획을 의결한 이사회 결의가 이뤄졌다면, 작년 말 주식을 갖고 있던 주주들만 의결권과 더불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예로 DB하이텍은 이달 7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반도체 설계사업(팹리스)을 담당하는 브랜드사업부를 분사해 ‘DB팹리스(가칭)’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회사는 같은 날 주주총회 소집결의와 동시에 물적분할 계획을 공시했다. 정기 주주총회는 오는 29일 열린다.

      DB하이텍 역시 이번 주총에서 주식매수청구권 및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준일은 작년 12월 31일로 정하고 있다. 즉 그 후부터 3월 7일 사이에 DB하이텍 주식을 매입한 주주는 회사분할결정을 공시한 시점 혹은 주총까지 주식을 가지고 있어도 이번 정기주총에서 물적분할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받을 수 없다. 의결권 역시 없어 물적분할 반대 표를 던질 수도 없다.

      이에 일부 주주 사이에선 '물적분할 발표도 나기 전을 기준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사회 결의날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적분할 계획을 모르고 주식을 매입했는데 갑자기 물적분할을 발표하면 주주로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이번 법안 개정으로 새로 나온 개념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 개정 이후 문제가 된 이유는 개정 이후 처음으로 ‘정기주총’과 ‘물적분할’ 이슈가 겹치면서다. 통상 물적분할은 임시주주총회를 통해서 의결을 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기존에는 주식매수청구권 문제가 주로 합병에서 발생했다. 합병 거래는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에서 미리 심사를 거쳐 통제가 가능했다. 정기주총이 아니라 임시 주총에서 의결하라고 기업들에게 지도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물적분할은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기 때문에 미리 당국이 개입할 틈이 없었다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허점이 '소액주주의 물적분할 반대 의사 및 권한을 보호한다'는 제도 도입 명분을 희석시킨다는 지적이다.

      개인투자자의 경우 작년말 주주기준일 이후 주식을 매도한 경우도 많다. 주식을 이미 판 투자자들은 의결권 행사에 큰 관심이 없다. 실제 물적분할로 기업가치나 주식이 영향을 받아 피해를 보는 주주들은 ‘현재’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들인데, 이들은 개정안의 적용대상에서 빠지는 상황이다. 결국 주요 기관투자자, 대주주가 표결을 이끌게 되고 ‘대주주만 좋은’ 표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제도적 허점을 당장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법으로 규정된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다. 작년말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되고 실행된 이후 처음 진행되는 주총 시즌이라 참고할 과거 사례도 없다. 법의 개정이 뒤따라야 하는 부분이다보니 한 기관에서 유권 해석을 내주기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당장 올해 주총은 어쩔 수 없어도 계속 해결되지 않으면 집단 소송 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법안이 졸속으로 개정됐고,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본인들 입맛에 맞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주총 시즌에는 당장 해결이 어렵지겠지만 향후 일어날 문제 방지를 위해서라도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