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준형 어려운데…재개발·재건축 신탁방식 늘리는 신탁사
입력 2023.03.24 07:00
    신탁사, 책준형 리스크에 보수적으로 접근
    신탁방식 정비사업장은 증가 추세…수수료도 '쏠쏠'
    둔촌주공 사태 이후 신탁방식 찾는 조합 늘어
    정부도 신탁사 통한 재개발·재건축 활용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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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프=윤수민 기자)

      책임준공확약 관리형토지신탁(책준형)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신탁사들이 신탁방식 정비사업에서 '먹거리'를 찾고 있다. 책준형에 비해 리스크가 낮고 수수료가 높아 최근 수주 및 완공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시공사 부실 위험이 커지자 신탁사도 쉽사리 시공사에 책준 확약을 약속하기 어려워졌다. 부동산 경기가 우호적이던 지난 몇 년과 달리 최근 책준형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책준형은 문제가 터질 경우 차입형 개발신탁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분석된다. 책준형은 시공사가 기한 내 준공하지 못한 경우 발생 비용을 신탁사가 부담하는 상품이다. 신탁사는 책임준공을 이행하기 위해 신탁자산(신탁고유계정)에서 공사비를 투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계획보다 공정이 지연되는 사업장이 늘어났다. 고금리와 원자잿값·인건비 증가로 공사비가 오르고, 중대재해법 시행에 따른 안전관리 강화로 공사 기간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공정률이 5%포인트 이상 차이 나는 사업장 수는 지난해 9월 116개로 2021년 말 48개 대비 142% 증가했다. 전체 사업장에서의 비중도 같은 기간 18%에서 33%로 늘어났다.

      최근 ▲여의도 시범아파트 ▲여의도 공작아파트 ▲서울 마포구 망원동 가로주택정비사업 ▲서울 관악구 신림 1구역 등 전국 100여건 가까운 사업장에서 신탁방식이 도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외에도 조합과 신탁사가 신탁방식 정비사업 업무협약(MOU)을 맺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신탁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토지신탁이 수주를 가장 많이 따냈으며, 코람코자산신탁이 완공한 사업장 수가 가장 많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사업대행자 방식'으로 재개발·재건축 조합을 대신해 도시정비사업을 이끌어가는 방법이다. 당시 지지부진한 정비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6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개정해 도입됐다.

      코람코자산신탁이 첫 삽을 뜬 후 2017년 25건, 2018년 44건, 2019년 64건 등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다만 신탁방식의 정비사업은 전체 정비사업장 중 4%에 불과하다. 

    • 지난해 4월 조합과 시공사의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둔촌주공 재건축 사례 이후 신탁방식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사업 기간이 길어지며 공사비 증액을 놓고 조합과 시공사가 갈등을 빚었다. 

      이외에도 일부 조합은 전문성과 투명성이 부족해 정비사업이 장기화되는 경우도 존재했다.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시공사가 제시하는 '터무니 없는' 조건에도 끌려다니는 경우가 허다했다. 조합원뿐 아니라 분양을 기다리는 수요자의 피해도 발생했다. 

      이후 각 사업장에서 둔촌주공과 같은 사태를 피하려고 신탁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그동안 신탁방식은 '조합 방식'에 비해 수수료가 비싸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다. 조합 방식은 입주민으로 구성된 조합이 각종 인허가, 시공사 선정, 분양 등 모든 절차를 스스로 처리하는 방법이다.

      신탁사가 신탁방식으로 받는 수수료는 총분양가의 약 3%로 책준형보다 '쏠쏠'한 것으로 알려졌다. 책준형은 일반적으로 명시된 수수료는 2%지만 협상 과정에서 1% 초반까지 낮아진다.

      아울러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책준형보다 분양 리스크가 적다는 평가다. 재개발·재건축 시 기존 거주지에 살던 조합원이 일차적으로 분양을 받기 때문에, 신탁사 입장에서 일반 분양보다 훨씬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보통 재개발·재건축은 조합원에게 70% 이상 분양을 마친 후 추가 분양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정부도 지난해 8월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발표해 '재개발·재건축 사업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전문 개발기관인 신탁사의 사업 시행을 촉진해 정비 사업이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골자다. 주민이 희망할 경우 조합 설립 없이 신탁사를 활용할 수 있게 신탁사 사업시행자 지정 요건도 완화하기로 했다.

      한 신탁사 관계자는 "책준형의 위험이 높아진 상황에서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리스크 대비 적지 않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