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트스위스 코코본드 상각, 국내선 태풍될까 미풍될까 촉각
입력 2023.03.27 07:00
    한신평 "트리거 때문…한국, 스위스와 다르게 해결"
    불안감 호소하는 자본시장 "처음 보는 위기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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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에도 한국 금융시장은 일단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CS를 UBS가 인수하는 과정에서 22조원 규모의 AT1(신종자본증권)이 상각, 채권시장에 위기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우려 정도에 그쳤다.

      국내로 불길이 번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란 것이 주된 의견이다. 한국과 달리, 스위스는 부실은행을 정리하는 데 있어 '채권자 분담(Bail-in) 방식'을 채택 중인 데 따른 결과인 까닭에서다. 지금으로선 유의미한 영향이 없는 상태지만, 레고랜드 사태 후폭풍을 견뎌냈던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뒤이어 발생 가능한 이슈에 주목하고 있다.

      CS 사태가 일단락된 주초, 증권가에서는 채권시장 경색 여부로 눈길이 옮겨졌다. 확대되는 세간의 우려에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는 "CS AT1 상각 사태에 대한 시장의 우려에 대해 시각을 빠르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라는 말로 서두를 장식한 리포트로 '우려가 과도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사태 추이를 지켜보던 자본시장 관계자들도 국내 채권시장으로 불길이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CS처럼 국내에서 AT1이 급격히 상각되는 상황이 발생할 확률은 현저히 낮다는 설명이다.

      코코본드는 Tier1 자본에 포함되는 AT1의 한 종류다. 계약을 통해 정한 특정 트리거가 발동되면 해당 증권의 원금이 상각되거나 주식으로 전환, 위기로 인해 발생한 은행 손실을 메우게 된다.

      금번 급격한 상각은 CS AT1 증권의 '트리거'에 따른 것에 불과하단 설명이다. 트리거는 ▲그룹의 연결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7% 이하로 떨어지거나 ▲스위스 금융시장 감독당국(FINMA)이 상각이 필요하다고 결정하거나 ▲CS그룹 AG가 파산하거나 부채의 중요한 금액을 지불할 수 없거나 기타 유사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한 공공부문 자본 지원을 필요로 하는 경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자본비율 7% 하회 요건은 상당히 이례적인 평가가 많다. 국내서 발행되는 AT1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고 나서야 전액 영구적으로 상각된다.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기 위해선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등 자본비율이 크게 나아져야 하는데, 국내 주요 금융기관은 10%중후반 수준으로 이를 관리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금융위원회나 예금보험위원회가 즉각적으로 부실금융기관을 지정하기보단, 기준 미달 정도에 따라 여러 차례 시정 조치를 부과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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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거 중 '감독당국의 결정' 부분도 일각에선 불안 요소로 지적됐지만 국내 은행권 AT1 조항에는 해당 내용 또한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CS 코코본드 채권자들이 문제 삼고 있는 '주주와 채권자의 우선순위 역전'도, Bail-in 방식을 채택한 스위스가 AT1 증권 계약서에 포함시킨 사유가 충족됨에 따른 결과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 한신평은 "국내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부실금융기관 정리 방식으로 여전히 구제금융(Bail-out)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라며 은행에 대한 정리 방식을 두고 Bail-in 국가와 Bail-out 국가의 정부 결정이 같을 순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는 코코본드 상각 전 부실금융기관 지정을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있다. 자기자본비율도 지금의 1/8 수준으로는 떨어져야 한다"라며 "그간 주주환원 시비가 걸릴 정도로 자기자본비율을 높게 유지해온 국내 금융지주로 불길이 번질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CS의 사업구조상 국내 금융지주들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CS그룹은 은행보단 되레 증권사들이 영위하는 사업의 비중이 다소 컸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CS는 지난해 핵심사업인 기업금융(IB)에서 실적을 내지 못하면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같은 분위기에도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도 포착된다. 지난해 이후 '처음 경험해보는 위기'가 연이어 터진 데 따라서다. 몇십년간 증권가에 몸 담아온 투자업계 관계자들도 "금번 코코본드 상각과 같은 처리를 본 사람은 여의도에 아무도 없을 것", "예측이 무의미해져서 향후 어떤 일이 터질지 두려울 정도"라고 토로하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 당시 직격탄을 맞았던 증권사 부동산금융 부문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아직까진 부동산업계에 유의미한 영향이 발생한 상태는 아니라고 전해진다. 다만 추후 CS 사태에 이어 이슈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 하에 상황을 지켜보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부동산PF 관계자는 "CS사태 여파에 대한 우려가 큰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이미 불이 붙은 기름에 조금 더 기름을 부어준 수준이다. 영향이 아주 없진 않겠지만 지금으로선 관망 중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