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행 규제완화 건의에...금융당국 "소비자 속이는 것부터 관둬라"
입력 2023.04.03 07:00
    Invest Column
    당국, '방카 규제 불합리' 일부 인정하고도 '다크패턴 규제 검토 의견'
    사용자 기만하는 '다크패턴' 도마 위...인터넷은행법에도 적용 필요성
    '당분간 당근 안 주겠다' 당국 심기 읽혀...존재 의의부터 증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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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전문은행의 영업행태를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시선엔 기본적으로 '불신'이 깔려있다는 것이 이번 은행권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활동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드러나고 있다.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 완화 건의를 사실상 거절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관련기사 : 카카오뱅크ㆍ토스뱅크ㆍ케이뱅크의 '내로남불')

      지난 22일 열린 제4차 TF 회의에서 '다크패턴'이 언급된 것도 상징적이라는 평가다. 다크패턴이란 사용자경험(UI) 체계를 교묘히 조작해 소비자를 속이는 설계를 뜻한다. 금융당국이 UI를 조작해 소비자를 속이고 있는 인터넷은행의 일부 행위를 파악하고 있으며, 이 부분이 해결돼야 규제 완화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카카오뱅크ㆍ토스뱅크ㆍ케이뱅크로 구성된 인터넷전문은행협의회가 TF에 제출한 건의사항에는 방카슈랑스 25%룰 적용을 예외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해당 규제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보험상품을 신규 취급할 때 특정 보험사 상품 총액 비중이 25%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다. 계열사 등 특정 회사에 판매를 몰아주는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협의회는 인터넷은행의 경우 '직원이 고객 상품선택에 개입할 수 없다'며 해당 규제 적용 예외를 요청했다. 해당 규제 준수를 위해 나열식 상품 판매만 가능한 상태로, 고객의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는 것이다.

      TF는 이에 대해 '비대면 디지털 영업환경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음을 인지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해당 요구를 바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대신 언급한 게 다크패턴이다. 다크패턴등으로 소비자를 속이거나 유인하는 문제 등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터넷은행들이 '방카슈랑스 25%룰은 불합리하니 규제를 적용하지 말아주세요'라고 건의하자 금융당국이 '불합리하긴 한데, 그 전에 소비자를 교묘히 속이는 짓을 못하도록 규제부터 해야할 것 같다'고 응수한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고객과의 신뢰'라는 은행업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빅테크가 은행을 경영하게 되며 생긴 업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인터넷은행 출범 이후 소비자들은 자신을 기만하는 듯한 사용자경험에 대해 불만을 토로해왔다. 예컨데 ▲'계좌에 돈이 부족할 때 알려드릴까요'라는 알림에 동의를 눌렀더니 실제로는 '마케팅 수신 동의'였다거나 ▲'계좌ㆍ카드 잔액 표시'를 눌렀더니 오픈뱅킹으로 연결되거나 ▲마이데이터 서비스 신청을 '숨은 돈 찾기 서비스'로 포장하는 식이다.

      다크패턴은 온라인ㆍ모바일 상거래 기반이 확산하며 정보기술(IT) 업계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마케팅 기법이다. 개념이 정립된 게 2010년의 일이다. 이후 더 교묘하고 악랄하게 소비자를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 기만이 점점 심해지자 일부 선진국에서는 다크패턴을 불법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2020년 개인정보보호법을 통해 일부 다크패턴을 금지했고, 지난해엔 유럽연합(EU)이 디지털서비스법에서 다크패턴을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국내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규제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비슷한 내용의 규제를 담은 전자상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된 상태다.

      이 개정안은 전자상거래법 제21조(금지행위)에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를 설계, 수정 또는 조작하여 소비자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행위' 조항을 신설하는 방식이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인터넷은행에 적용되진 않는다. 인터넷전문은행법에도 비슷한 조항을 신설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 과정에서 부실율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많은 데이터를 축적함으로써 대안신용평가모형을 보다 정교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당분간 '당근'은 주지 않겠다는 당국의 심기가 읽힌다"며 "수익성 확보 과정에서 소비자는 물론, 당국의 신뢰를 일정부분 잃은만큼,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