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금융 시장에서 다시 주목 받는 은행들
입력 2023.04.06 07:00
    금리 부담에 부동산PF 유탄맞은 증권사들
    상위권 휩쓸던 증권사 빈자리 채운 은행들
    일진머티리얼즈 주관사 12곳 중 10곳이 은행
    “대규모 거래서 안정적 조달 창구 필요” 분위기도
    초대형 인수금융 SK쉴더스 KB證 단독 주관
    증권사들 분위기 반전 계기 될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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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 5년간 인수금융 시장의 주도권은 증권사가 쥐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형 증권사가 초대형투자은행(IB) 라이선스를 통해 기업 여신에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은행의 고유 업무로 여겨졌던 인수금융 시장도 잠식해 왔다. 

      올해부터 상황이 반전하고 있는 모양새다. 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고금리가 고착하며 금융기관이 공격적인 영업을 제한받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조달 금리에 관한 부담이 크고 최근 부동산PF 발(發)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증권사는 인수금융 주선 실적이 다소 침체했다. 반면 그나마 조달 사정이 여유롭고 안정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은행에 돈을 빌리는 수요는 다소 늘어나고 있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1분기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해 인수금융 시장 규모는 약 5조1093억원이다. 이 가운데 은행이 주선한 금액은 약 2조7707억원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전체적인 규모는 지난해(약 11조300억원)에 비해 절반가량으로 줄었으나,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36.8%) 대비 15%포인트(p) 이상 증가했다.

      인수금융 리그테이블 상위권에 KB국민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산업은행 등이 위치했는데 5위권에 든 증권사는 삼성증권이 유일했다. 지난 수년 동안 분기 또는 연간 인수금융 리그테이블에서 증권사가 대부분 상위권을 차지한 것과는 상당히 대조를 이뤘다. 지난해 1분기만 보더라도 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 등이 5위권 내 순위를 기록했다.

      물론 올해 1분기 M&A 거래가 활발하지 않았던 점과 전체 인수금융의 상당 부분이 몇몇 거래에 국한돼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 다만 올해 초 가장 큰 규모의 M&A로 꼽히는 일진머티리얼즈 인수금융 주선사 대부분이 은행으로 구성돼 있는 점은 최근 시장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다. 

      롯데케미칼의 일진머티리얼즈 M&A 과정에선 1조2000억원 규모의 인수금융을 일으켰다. 전체 12곳의 금융기관이 인수금융 주선을 맡았는데 이 중 10곳이 5대 시중은행과 산업은행을 비롯한 은행으로 구성했다. 1조970억원 규모의 모멘티브 인수금융 리파이낸싱 거래엔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수출입은행이 주선사로 참여했고, 9000억원 규모의 메디트 인수금융 주선사엔 우리은행이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은행들의 약진은 최근 높아진 금리로 인해 증권사들이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일진머티리얼즈 거래의 경우 롯데그룹에서 애초 은행들과의 접점을 늘리기를 희망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국내 증권사 인수금융 담당자는 "롯데그룹은 기존에 은행과 거래를 이어왔으며 이번 계기로 관계를 더 '돈독히' 만들기 위해 시중은행을 참여시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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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리 부담과 별개로 최근 부동산PF로 촉발한 부동산 부문의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는 것도 증권사들의 부담 요인이다.

      정부의 강력한 재무건전성 규제를 받는 은행들은 부동산 관련 대출을 확장하지 않거나 유지하는 수준에 그쳤는데 이에 대한 풍선효과로 증권사·캐피탈·저축은행들의 부동산 여신 규모는 최근 수 년 새 급증했다. 국내 26곳 증권사의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PF 익스포저는 평균 44.2%이다. 실제로 각 증권사별로 늘어난 부동산 관련 여신의 리스크 관리가 제 1의 과제가 된 상황에서 인수금융 주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다소 경계하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M&A 시장 분위기가 다소 살아나고 있지만 여전히 절대적인 규모는 과거에 비해 줄어든게 사실이다.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은행들 역시 무리해서 거래를 수임하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거래 규모를 막론하고 리스크를 상쇄하기 위한 목적으로 단독주선보단 공동주선 전략를 세우는 곳이 상당수다.

      인수금융 시장에서 은행들이 주목받는 상황이 연말까지 지속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는 증권사들이 수익성 확보를 위해 다시 공격적인 영업에 나선다면 판도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인수금융 규모만 2조3500억원으로 상반기 최대 규모 인수금융 거래로 꼽히는 SK쉴더스의 주관은 KB증권이 단독으로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