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세에 가려진 현대차의 해외 투자 '낙제' 성적표
입력 2023.04.11 07:00
    동남아 최대 차량공유 업체
    3000억 투자한 그랩 지분가치 반토막
    英 어라이벌 1000억원 전액 손실
    올라, 오로라 등 신사업 지분가치도 ‘뚝’
    GSO로 구심점 바뀐 신사업 투자
    투자보단 회수에 집중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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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대차의 실적이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엔 국내 상장회사 가운데 분기 기준 영업이익 1위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오면서 오랜만에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해외 투자의 손실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에도 마주해 있다.

      차량공유, 자율주행 등 현대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야에 대한 크고 작은 해외 투자들에서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데 당분간은 '투자'보다는 '회수', 그리고 일부 투자건의 '정리'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현대차의 타법인 출자 지분의 평가손실은 약 5288억원을 기록했다. 직전년도인 2021년(7774억원)의 평가손실 대비 2500억원가랑 감소했지만 대부분의 손실이 해외 신사업 분야 지분 투자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2021년의 경우 중국상용차법인(HTBC)에서 7539억원의 평가손실을 반영한게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현대차가 해외 신사업 투자건의 대규모 평가 손실을 반영한 것은 사실상 지난해가 처음이다.

      지난해에 평가손실을 반영한 기업은 ▲동남아 1위 차량공유업체 그랩(Grab, 1400억원) ▲미국 전고체 배터리 회사 솔리드파워(Solid Power, 402억원) ▲미국 자율주행 개발 업체 오로라(Aurora, 555억원)  ▲미국 배터리 제조사 SES(315억원) ▲인도 차량공유업체 레브(Revv, 235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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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와 기아가 동남아 차량공유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교두보로 삼았던 그랩(Grab)은 지난해 약 2조2600억원(17억4000만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21년말 약 4조원의 순손실과 비교하면 적자 폭이 절반가량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조 단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2021년말 한 때 주당 16달러에 육박하던 그랩의 주가는 현재 3달러 수준에 걸쳐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2018년 약 3100억원(2억7500만달러)을 투자했는데 가파른 주가 하락에 대규모 평가 손실이 4분기 연속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상업용 전기차 기업 어라이벌(Arrival)의 경우 1000억원가량의 평가손실을 반영하며 사실상 투자금 전액의 손실을 기록했다.

      평가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투자 회사들의 경우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최대 2조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해당 분야 기업들이 현재의 현금흐름보단 미래 가치로 주목받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실제로 돈을 벌어들이거나 또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기업이 드물다 보니 투자자들의 기업가치평가(밸류에이션) 또한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평가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신사업으로 투자했던 분야 중 특히 차량공유 업체의 기업가치가 갈수록 떨어지고 사업 전망도 그리 밝지 못한 편"이라며 "현대차의 해외 투자 가운데 현재 상황에서 결실을 맺고 눈에 띄는 시너지를 내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대차를 중심으로 한 그룹의 해외사업 투자는 2018년 이후 급격하게 증가했다. 2017년 1000억원 수준이던 해외투자는 2019년 7000억원, 정의선 회장이 회장직에 취임한 2020년에는 1조3000억원을 훌쩍 넘었다. 다만 코로나 상황이 심화한 2021년부터는 신규투자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해 지난해엔 해외 신규 지분 투자가 제로에 수렴했고, 투자는 주로 국내에서 이뤄졌다.

      현대차의 해외 투자는 과거 정의선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했던 지영조 전 사장(현재 고문)이 이끄는 전략기술본부였다. 전략기술본부가 사라지고 이노베이션 담당으로 탈바꿈한 이후부터는 직접적인 해외 투자보다는 투자 대상의 관리 또는 회수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약 1~2년 전부터 해외 투자 건들에 대한 성과를 요구 받아왔는데 사실상 성공 사례라고 꼽을만한 투자가 없다 보니 투자 조직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며 "최근엔 투자보다는 회수에 집중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현대차의 해외 신사업 투자 포트폴리오 가운데 정리 대상도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2019년 기아와 함께 8400만달러(약 1060억원)을 투자한 크로아티아의 고성능 전기차 스타트업 리막(Rimac)이 대표적이다. 사실 지난해 현대차와 리막의 프로젝트가 종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대차의 지분 정리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가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거나, 지분법 평가손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기업들의 지분을 조금씩 정리해 나갈 것이란 평가도 있다. 또한 국내외에 산발적으로 투자한 자율주행 기술 개발 조직을 유지하거나 일원화하는 등의 전략적 구상도 잇따를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현대차의 신사업 해외 투자의 구심축도 바꼈다. 지난해 말 모빌리티 전략을 총괄하는 조직인 글로벌전략오비스(GSO)를 신설하며, 자율주행과 같은 미래차 전략과 함께 그룹 전체의 반도체 전략을 담당할 것으로 전해진다. GSO의 사령탑은 김흥수 부사장이 맡고 있는데 현대차 신사업의 해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현대차의 해외 지분 투자가 다소 잦아들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앞으로 현대차가 어떤 분야에 선택과 집중하는 전략을 취할 것인지는 관심의 대상이다. 현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선사인 HMM의 주요 원매자로 거론되고 있기도 한데, 사실 해운업에 대한 진출보단 차량용 반도체, 배터리 등 본업에 집중해야 하는 시점이란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