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고민 HMM 매각, 해결책은 산업은행-인수자 ‘주주간계약’
입력 2023.04.14 07:00
    HMM 매각 시동…구주 값 4조원, 2조원대 영구채 처리 고민
    산은, 영구채 주식 전환 않으면 배임…전환시 다시 최대주주
    구주 팔되 인수자 경영권 해하지 않는 영구채 처리 고려해야
    산은-인수자 '주주간계약' 거론, HMM 현금 활용도 견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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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최대 거래 HMM 매각이 본격화했지만 성사 여부를 낙관하긴 이르다. 매각자로선 주식과 영구채를 함께 파는 것이 최선이지만 인수자의 부담이 커지고, 영구채를 남겨두자니 산업은행이 다시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이에 일각에선 구주를 먼저 팔되 영구채의 주식 전환 및 처분 시점을 산업은행과 인수자간 주주간계약으로 정하는 방법이 해법으로 거론된다. 이는 인수자의 경영권을 보장하면서 HMM에 쌓인 현금을 전용하지 않도록 하는 방책이 될 수도 있다.

      지난 10일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 HMM 매각 주관사단은 착수회의(Kick off 회의)를 가졌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HMM 매각 성공을 위한 논의를 하겠다는 방침인데, 핵심은 매각 대상을 어디까지로 확정하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내놓을 구주는 약 40%로, 현재 시장 가격만 약 4조원이다. 통상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해지면 5조원대에 이를 지분이다.

      HMM은 사실상 유일의 원양 국적선사이자 국가 기간산업체다. 국내 기업이나 자본이 나서야 하는데 저만한 자금을 투자할 곳은 많지 않다. 현대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LX 정도가 자금력 있고 관심을 가질 만한 곳으로 거론된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이 5조원 이상을 투자한 사례도 인텔 낸드사업부(SK하이닉스, 10조원),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현대차, 10조원), 하만(삼성전자, 9조원), 현대건설(현대차, 5조원) 등 손에 꼽는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갖고 있는 영구채권 가격까지 포함하면 거래 규모는 더 커진다. HMM이 두 회사를 대상으로 발행한 영구채 금액만 2조6800억원에 이른다. 구주 시가에 이 채권까지 인수한다 치면 거래 규모가 7조원에 가까워진다. 인수자군이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회사가 영구채를 고정된 가격에 점진적으로 갚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HMM의 주가에 따라 영구채 가치도 변동될 수밖에 없고, 현재 가치를 평가하는 것도 쉽지 않다.

      HMM이 영구채를 상환하거나 인수자가 영구채까지 사들일 수 있으면 그나마 계산이 간단하다. 영구채의 주식 전환 및 주식전환권 행사 가격은 5000원이다. HMM 주식이 2만원을 오가는 상황에서 살펴 보면 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식으로 바꾸지 않으면 배임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인수자로선 향후 영구채의 주식 전환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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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MM 인수자가 지분 약 40%를 확보하더라도,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가진 영구채가 모두 주식으로 전환되면 두 회사가 다시 지분 50% 이상을 가진 최대주주가 된다. 인수자 입장에선 구주를 인수한 실익이 사라지게 된다. 이번 HMM 매각에서는 영구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매각자 입장에선 인수자의 부담을 낮추면서도 향후 전환한 주식을 파는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산업은행이 영구채를 일정 시기와 조건에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원할 것이란 시선도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영구채도 향후 인수자에 넘길 수 있는 권리를 얻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되 그 주식을 인수자의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처분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전환 기간 역시 최대 2048~2050년까지 남은 만큼 전환 시기나 물량을 정하는 데도 여유롭다. 산업은행 등이 구주 대부분을 팔되 주요주주로 남아 이사회에 참여하고, 영구채 처분에 대한 내용을 인수자와 ‘주주간계약’으로 묶으면 경영권을 둘러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주요주주로 남아 주주간계약을 맺으면 인수자의 향후 행보를 제어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HMM은 지난 2~3년간의 호황으로 막대한 이익을 냈고 10조원 이상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다만 앞으로 컨테이너선 업황은 점차 꺾일 것이란 예상이 많다. 향후 업황 침체기를 버티려면 유동성이 필요하다. 산업은행과 인수자가 HMM의 현금을 해운업에 관련된 사업에만 활용하도록 약정을 맺으면 위기를 넘는 데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한 해운업계 전문가는 “산업은행 등이 HMM 지분을 인수자에 넘기되, 남아 있는 영구채는 주식으로 전환한 후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식으로 분산 매각한다는 주주간계약을 맺으면 거래의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며 “산업은행이 주요주주로서 이사회에 참여하면 HMM에 있는 현금이 해운업과 무관한 곳에 흘러나가지 않도록 견제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