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1번가, 내년엔 웨이브…투자자 회수 고민 계속되는 SK ICT 패밀리
입력 2023.04.17 07:00
    주요 계열사 2018년 이후 적극 투자 유치
    증시 침체 속 FI 청구서 기일 점점 다가와
    올해 11번가·원스토어, 내년 웨이브 만기
    하이닉스 부진 속 쉴더스 매각으로 숨통
    기한 연장·회사 매각·볼트온 등 방안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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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은 2년 전 통신과 반도체, New ICT(정보통신기술) 자산을 시장에서 온전히 평가받겠다며 SK텔레콤(통신)과 SK스퀘어의 인적분할을 결정했다. 한참 호황기를 지날 때라 장밋빛 전망이 있었지만 작년부터 유동성의 힘이 줄면서 계획에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11번가, 콘텐츠웨이브 등 줄줄이 돌아오는 재무적투자자(FI) 자금 상환 스케줄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뾰족한 수는 없는 사운데 시장에선 회사 매각부터 볼트온(Bolt on)까지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거론되는 분위기다.

      11번가는 지난 2018년 H&Q코리아로부터 5000억원을 조달하며 2조7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투자 후 5년 내 상장하기로 약정을 맺었지만 FI에 보장한 수익률(3.5%)을 충족하기 어려웠고 결국 상장 철회로 가닥을 잡았다. SK스퀘어로선 투자 기한을 늘리는 것이 당장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지만 핵심 출자자(LP) 국민연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은 지난달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에서 11번가 지분 매각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11번가를 탐낼 만한 곳은 제한적이다. 유통 대기업들도 초기 수준의 11번가 인수 제안을 받거나 검토를 하기도 했지만 몸값으로 1조원 이상은 어렵다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꼭 팔아야 한다면 티몬 M&A처럼 큐텐과의 지분교환 방식 정도가 현실적인 안으로 거론된다.

      내년에는 콘텐츠웨이브(Wavve) 투자 만기가 돌아온다. 회사는 2019년 2000억원 규모 5년 만기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내년까지 상장하지 못하면 복리 이자(만기보장수익률 3.8%)를 쳐서 돌려줘야 한다. 회사는 작년 적자 폭이 확대되는 등 재무 사정이 녹록지 않다. 성장 전망이 밝다고 보기도 어렵다. 티빙(TVING)과의 통합을 원했으나 결실이 없었고, 티빙과 시즌(Seezn)의 통합으로 토종 1위 OTT 자리도 내줬다. 조단위 투자 계획 대비 이목을 사로잡을 콘텐츠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11번가 매각을 위해 대기업과 접촉한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나오지만 FI에 약속한 가격을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올해 11번가에 이어 내년 웨이브 등 투자금을 돌려줄 일정이 계속 돌아오니 SK스퀘어 내부적으로도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은 SK하이닉스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메모리 수요가 감소하며 비상등이 켜졌다. 당분간 분기마다 조단위 적자 행진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인텔 낸드사업부(솔리다임) 인수도 갈길 바쁜 SK하이닉스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 M&A 사상 최대 거래(90억달러) 트로피가 이제 와선 짐이 되는 분위기다. 미-중 분쟁, 미국 보조금 문제 등으로 사업 불확실성이 커졌다.

      SK하이닉스는 자사주를 활용해 2조2000억원 규모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업황이 침체된 상황에서 대규모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결국엔 대규모 주식이 시장에 풀리면 주가엔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란 시선도 있다. 결과론적이지만 회사 분할로 인해 SK텔레콤이라는 안전판이 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나마 하반기 반도체 수요 증가 예상, 삼성전자의 감산 결정 등이 호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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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SK스퀘어-SK텔레콤-SK하이닉스는 ‘SK ICT 연합’ 출범 소식을 알렸다. 큰 틀에서의 연대를 이어가고 있는데 SK텔레콤고 SK스퀘어와 비슷한 고민이 있다. 2019년 SK텔레콤의 자회사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가 합병할 당시 미래에셋증권이 FI(지분율 8.01%)로 참여했다. 마찬가지로 5년 내 상장 조건이 붙어 있다. 상장을 통해 3.5%의 수익률을 맞춰줘야 하는데, FI도 상장을 썩 낙관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SK스퀘어는 원스토어의 상장도 추진해야 한다. 2019년 외부 투자자로부터 약 1000억원의 성장 자금을 조달하며 3년 안에 상장하기로 약속했다. 이 때문에 작년 ICT 계열사 중 상장을 가장 서둘렀지만 결국 철회했다. 대신 상장 시한을 12개월 연장하기로 하는 등 투자 조건을 조정했는데, 올해 말 이 기한이 돌아온다. 일정이나 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상장을 낙관하기 어렵다.

      다만 원스토어 투자자들은 다른 계열사 FI에 비해 우호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작 게임 등이 입점하기 시작하면 점차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지난 11일 공정위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앱마켓의 압도적 시장 지배력을 활용해 경쟁사의 게임 출시를 막았다고 보고 구글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티맵모빌리티도 2021년 FI로부터 4000억원을 유치하며 수년 내 상장 조건을 걸었다. FI에 약정한 조건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SK스퀘어의 티맵모빌리티 지분까지 묶어서 팔 권리(Drag along)가 있다. 회사는 그 경우 FI 지분을 일정 수익률을 더해 사들일 수(Call option) 있다. 언제 수익 구간에 접어들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작년 KB국민은행으로부터 2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현금 유동성은 부족하지 않다는 평가다.

      SK스퀘어가 올해 SK쉴더스 매각에 성공한 것은 다행스런 일로 꼽힌다. SK쉴더스 역시 작년 상장을 추진했다가 철회한 터라 FI 자금을 돌려줄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EQT파트너스는 SK스퀘어와 FI의 구주, SK쉴더스가 발행하는 신주까지 인수해 SK쉴더스 지분 68%를 확보하게 됐다. SK스퀘어 입장에선 주주총회 특별결의도 가능한 수준까지 지분을 물린 셈인데, 정작 회사와 자문사들은 매각 계약 후 자축했다는 후문이다.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가진 외국 자본이 아니었다면 SK스퀘어가 상당한 재무적 위기에 처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SK스퀘어는 쉴더스 매각 대금 중 일부를 자사주 매입에 활용해 주가 부양 효과를 보기도 했다. 나머지 매각 대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도 관심사다. 얼마간의 유동성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쌓여 있는 FI 청구서를 감안하면 넉넉하다고 보긴 어렵다.

      이에 이 자금을 활용해 계열사 관련 투자에 나설 것이란 시선도 있다. 11번가의 경우 혼자서 수조원대 몸값을 내기 어려우니, 시장에 나와 있는 이커머스 잠재 매물을 인수해서 붙인다는 것이다. 티맵모빌리티가 확장 행보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시장 지배력이 절대적인 만큼 덩치를 키우는 것이 급선무기 때문이다. SK스퀘어 측은 2021년 비바리퍼블리카(토스)가 인수한 타다(법인명 VCNC) 등을 비롯한 모빌리티 회사들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