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린 '초관심사' HMM 매각…누가 주인될지는 결국 정부 '의중'에 달렸다?
입력 2023.04.19 07:00
    업황 변동성에 영구채 변수까지
    몸값 높은 HMM 감당할 데 많지 않아
    인수후보군들 손사래 치는데
    시장에선 여전히 '현대차' 참전 기대
    해운업 특성상 정부 결단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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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최대 해운선사이자 유일한 컨테이너선사인 HMM의 매각이 본격화했다. 올해 자본시장, 특히 인수합병(M&A) 시장의 최대 관심사인만큼 딜(Deal)이 계획대로 진행될지, 누구의 품에 안길지 주목된다.

      슈퍼 호황이 일단락되는 국면에서 HMM의 몸값은 비싸다는 평가가 많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인수후보군들은 여러 이유를 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딜의 규모, 산업의 특수성 등을 감안하면 결국 매각 측인 정부의 속내가 가장 중요하다. 관심이 있든 없든 이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후보들은 극소수로 좁혀진다.

      한국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삼성증권ㆍ삼일회계법인ㆍ법무법인 광장을 매각자문단으로 선정하고 HMM 민영화에 본격 착수했다. 매각 측이 내놓을 구주는 약 40%로, 현재 시장 가격은 약 4조원, 통상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해지면 5조원대에 이를 지분이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HMM은 사실상 유일의 원양 국적선사이자 국가 기간산업체다. HMM이 산은과 해양진흥공사를 대상으로 발행한 영구채 금액은 2조6800억원으로, 이것까지 감안하면 거래 규모는 7조원에 가까워진다. 이렇다보니 국내 기업이나 자본이 나서야 하는데 저만한 자금을 감당할 곳은 많지 않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포스코, LX 정도가 인수후보군으로 거론된다. HMM의 전신이 현대상선이기에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은 현대그룹 적통의 명분을 앞세울 수 있다.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꾀하는 포스코는 예전부터 해운업에 관심을 보여왔고, LG그룹에서 분리된 LX그룹 역시 상사업을 기반으로 외연 확장이 절실하다.

      다만 인수후보군들은 손사래를 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1월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우리 중장기 사업 전개 방향과 HMM 인수는 전혀 맞지 않다"며 "현재로서는 HMM 인수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 조선사인 현대중공업도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게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현대차그룹의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12일 "HMM 인수 의사가 전혀 없고, 모빌리티 운송에만 집중할 예정"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1월 컨퍼런스콜에서 인수의사가 없다고 밝혔는데도 시장에서 계속 유력 인수후보로 언급되자 재차 입장을 낸 것이다.

      인수전 흥행이 어렵겠다는 관측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해운사 매물이 많은 상황에서 과도한 몸값, 특히나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 영구채가 딜의 향방을 가를 변수로 부상했다. 산은과 해양진흥공사가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보유지분은 70%를 넘기게 된다.

      영구채가 변수가 되겠지만 딜의 성사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HMM 매각의 성격이 특별하기 때문에 정부가 인수자와 어떻게 협상을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이번 거래는 "정부가 HMM을 진성 매각할 생각과 의지가 있느냐"에서 시작해, 지분 몇 %가 문제가 아닌, "실질적이고 영구적인 경영권을 가져갈 적격자가 누구냐"로 귀결된다. 

      정부는 국적 해운사인 한진해운의 파산을 목도했고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 입장에선 공적 자금보다 더 중요한 게 이 산업을 전개할 수 있는, 확실한 자금력을 가진 경영자에게 HMM을 넘겨주는 것이 '책임 소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일각에선 해운업을 경험해 본 해운사들에 기회를 주라는 목소리도 내놓고 있다. 삼라마이다스(SM)그룹 얘기다. SM그룹이 2013년 대한해운을 인수한 데 이어 2016년 한진해운의 아시아-미주 노선을 인수하는 등 원양컨테이너선 분야에 진출해 있어 사업 이해도가 높고 HMM 인수 시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SM상선은 지난해 HMM 지분을 잇달아 매입하며 5.52%까지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SM그룹이 여타 인수후보군들에 비해 자금력이 크게 떨어지고, HMM에 비해 사업 규모가 작다는 점에서 '승자의 저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입장에선 특혜 논란 등 추후 시끄러운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산업 특성상 재무적투자자(FI)나 외국 기업에 넘길 수도 없다. 다시 손사래 치고 있는 인수 후보군들을 봐야 한다.

      M&A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조선업과 해운업의 수직계열화가 장점이지만 업황 변화에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등 골치 아픈 문제가 분명 있고, 포스코는 회장이 외풍에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M&A를 진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LX그룹은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자금조달과 안정적 경영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며 "결국 눈이 가는 대상은 현대차"라고 전했다.

      시장에선 "현대차는 현대글로비스가 부인 발표를 하긴 했지만 어디까지 글로비스가 낸 입장이고 현대차 등 다른 계열사가 인수 주체로 나서면 문제가 없다"며 여전히 참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리고 그러길 바라고 있다. HMM 딜이 그 사이즈나 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과거 대우조선해양 매각과 비슷한 양태로 흘러가고 있다. 2009년 당시 한화가 자금난을 이유로 대우조선 인수를 포기했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건 현재 HMM을 감당할 수 있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없는 자금력이 가장 중요하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80조원)와 기아(36조원), 현대모비스(37조원)가 비교적 균등하게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모빌리티를 강조하는 주력 3사 중 누가 참전해도 이상할 게 없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이 강조하는 '모빌리티'는 이동을 편리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각종 서비스나 이동수단을 얘기한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플라잉카'도 있는데 글로벌 물류의 중추인 해운도 모빌리티 관점에서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라고 설명했다.

      HMM이 '현대(現代)'의 정통성을 더할 수 있다는 건 덤이다. 과거 현대차는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싸고 현대그룹과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현대상선 지분은 쥐고 있었다. 그만큼 범현대가에서 현대상선은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사이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계열사였다.

      현대차가 압도적인 자금력을 앞세워 현대건설을 인수했던 것도 여러 이유 중에서 현대그룹의 정통성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HMM처럼 현대건설도 산은이 매물로 내놨고 인수전이 과열되면서 인수가는 적정가 3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현대그룹이 5조5000억원을 제시하면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자금조달에 대해 제대로 증빙하지 못하면서 MOU(양해각서)가 해지됐고 결국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가 함께 뛰어들어 5조원에 인수했다.

      현대차는 현대건설의 인수로 인해 정주영 시절 현대그룹의 정통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됐고, 그룹은 이를 기념해 명칭을 공식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바꿨다. 현대상선까지 품에 안게 되면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과 현대상선, 과거 현대그룹의 양대 계열사를 모두 가져옴으로써 정의선 시대에 확실한 정통성을 갖게 된다. 이는 특히 정몽구 명예회장에겐 실리 못지않게 중요할 수 있다.

      증권가에선 HMM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을 14조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매각 측은 HMM의 현금이 매각 과정에서 쓰지 않고, 해운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실탄이 되길 원하고 있다. 매각가를 낮추기 위해 현금성 자산을 투입하는 것은 해운업황의 전망을 보면 부담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를 이해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인수자는 국내에 많지 않다.

      해운업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정부가 HMM의 지분을 무조건 모두 털어낼 이유가 없다.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강해지는 환경에선 현대차도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가로 정부의 우산을 쓸 수 있다. HMM 매각이 진행될수록 현대차에 눈길이 가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