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한국식 금융위기' 뇌관 된 저축은행...'살얼음판' 금융권
입력 2023.04.20 07:00
    두 줄짜리 허위 문자에 온 금융권이 '가슴 철렁'
    연장될수록 사업성 떨어지는 브릿지론 뇌관 여전
    공매 매각가율 최저 50%대...캐피탈ㆍ증권사 부실 전이
    뱅크런 발생시 수신구조 비슷한 인터넷은행 등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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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아침, 한 통의 문자가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됐다. 업계 수위의 저축은행 두 곳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스(PF) 대출 부실로 1조원대의 결손이 발생했으므로 잔액을 모두 인출하라는 내용이었다. 해당 저축은행들은 한동안 예금자들의 항의 섞인 문의로 진땀을 빼야 했다. 

      24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고, 10만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으며, 76조원의 예금 중 32조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는 평가다.

      그 뒤 12년이 흘렀다. 저축은행 업계는 일단 지표상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되찾았다. 지난해 말 기준 총수신은 사상 최대인 120조원을 넘어섰다. 평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BIS 비율은 13.25%,  연간 순이익은 총 1조6000억원,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1%에 달한다.

      이런 지표에도 불구, 불과 두 줄의 허위 문자에 금융시장의 심리가 뒤흔들렸다. 저축은행중앙회는 물론, 금융감독원이 다급히 진화에 나섰을 정도다. 금융 소비자들의 관심은 하나로 모아진다. 대체 저축은행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저축은행에 계속 예금을 맡겨도 괜찮은 걸까.

      아직까지 저축은행의 건전성에 구조적으로 큰 문제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전평이다. 다만 점차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만약 지방ㆍ중소형 저축은행 등 약한 고리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대형저축은행ㆍ캐피탈ㆍ증권사ㆍ인터넷전문은행 등지로 공포 및 부실 전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말 기준 저축은행의 부동산 관련 익스포저(위험노출액)은 5조2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 중 대부분이 PF 직전 단계인 '브릿지론'에 투입돼있다. 브릿지론은 본PF 전 토지 매입 및 인허가를 받는 단계에서 나가는 대출로, 본PF가 구성되면 해당 자금으로 대출을 상환받는다.

      브릿지론 시장에는 저축은행을 비롯해 캐피탈사, 중소형 증권사 등이 진출해있다. 저축은행의 브릿지론 건당 평균 대출 규모는 40억원 안팎, 캐피탈ㆍ증권사는 평균 50억~100억 안팎으로, 복수의 업체가 컨소시엄으로 대주단을 구성해 자금을 투입하는 게 일반적이다.

      브릿지론을 투입한 사업장이 거의 대부분 본PF로 진행이 됐던 2021년까지와는 다르게, 지난해부터는 본PF가 불발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 경우 대주단은 만기를 연장하며 본 PF 구성을 기다리기 마련이지만, 이를 견디지 못한 대주단 한두 곳이 만기 연장을 반대하면 상황이 꼬인다. 담보로 잡은 토지를 매각해 빚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부동산 침체로 인해 토지가 높은 가격에 팔리지 않으면 그대로 손실이 확정되는 까닭이다.

      지난해 7월 연체가 발생한 경기도 시흥시 생활형 숙박시설 브릿지론 사업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저축은행 9곳과 새마을금고가 약 800억원을 투입했는데, 대주단 일부가 만기 연장에 반대하며 토지가 공매로 넘어갔다. 브릿지론 토지의 최근 대법원 매각가율은 담보가치의 57~88% 수준으로, 손실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다. 결국 이 사업장은 한국신용평가 추산 1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난 것으로 분석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본PF가 진행되지 못하고 돈이 묶였을 때 가장 곤란을 겪는 쪽은 아무래도 자본력이 약한 중소형 저축은행인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만기 연장을 반대해 토지가 공매로 넘어갈 경우 다른 업권의 대주단도 손실이 확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지난 2월 '저축은행 PF 자율협약'을 개정한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자율협약 미이행시 손해배상 책임을 부여해 구속력을 강화하는 대신, 여신한도ㆍ자산건전성 분류ㆍ임직원 면책 등의 인센티브를 줬다. 

      규제도 일시적으로 완화하고 추후 책임도 묻지 않을테니,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에 대한 만기 연장에 적극 나서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만기 연장'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신용평가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이미 브릿지론 사업장 4곳 중 1곳은 한 차례 이상 만기를 연장했다. 올해 상반기에 전체 브릿지론 사업장 중 64%의 만기가 도래한다. 올해 연말 기준 거의 대부분의 브릿지론이 1차례 이상 만기가 연장될거란 뜻이다.

      현재 브릿지론 금리는 연 10~13%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2배 이상 올라있는 상태다. 본PF 구성이 연기될수록 사업성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뜻이다. 신용평가업계에서는 브릿지론 만기가 3회 이상 연장된다면 사업성이 크게 악화돼 기존 구조로는 추진이 쉽지 않다고 내다보고 있다.

      저축은행 부동산PF의 부실여신비율은 이미 치솟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1.4%로 연초 0.7% 대비 두 배 늘었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말(2.9%) 보다 낮다지만, 당시 11.6%에 그쳤던 요주의이하 여신비율이 같은 기간 23.7%로 폭등했다. 문제 소지가 있지만 일단 틀어막아둔 여신이 급증했다는 뜻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7조원의 PF 대출 중 40% 가량인 3조원 안팎에서 부실이 발생한 게 도화선이 됐었다. 

      저축은행발 뱅크런 역시 현존하는 위협이다. 지난해 금리 상승기에 저축은행들은 최대 6%대 예금, 3%대 중후반의 수시입출금식 상품을 내놓으며 시중 자금을 끌어들였다. 한 해 동안에만 총수신이 17조8000억여원 늘어났다. 연간 수신 증가율이 17.4%로 같은 기간 은행 증가율 4.7%를 크게 웃돌았다.

      이 중 예금자보호법상 보호한도(5000만원) 이상 '거액 예금'이 32조원에 달한다. 유사시 가장 먼저 저축은행을 이탈할 대표적인 '불안정적 예금'이라는 지적이다. 지점 앞에서 밤새 줄 서 출금 대기표를 받았던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모바일뱅킹으로 손쉽게 예금을 인출할 수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일어난다면 예금 인출 속도가 100배 빠를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PF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지방ㆍ중소형저축은행에서 뱅크런이 발생하면 2011년의 학습효과로 인해 대형저축은행들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고, 이 상황에선 수신 구조가 저축은행과 비슷한 인터넷전문은행과 증권사의 수시형 발행어음 등으로 공포가 확대될 수 있다"며 "정부가 브릿지론의 본PF의 전환 지원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중심 정상화 펀드 등의 정책을 빠르게 추진하는 건 금융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저축은행발 뇌관부터 관리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