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황' 침몰시킨 CFD, 'SG사태'로 국내서도 폭발...커지는 규제 목소리
입력 2023.04.27 10:25
    2021년 아케고스, CFD 마진콜로 이틀만에 26조 손실
    국내서도 CFD 통해 통정ㆍ자전매매로 주가 조작 발각
    전문투자자 규제 완화ㆍ대주주 요건 강화 겹치며 폭증
    美선 전면금지...과세범위 포함 등 규제 필요성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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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發) 무더기 주가 급락 사태로 차액결제거래(CFD)의 위험성이 재조명받고 있다. '한국계 월스트리트 신화'로 불리던 빌 황의 아케고스 펀드도 CFD로 고위험ㆍ고레버리지 투자를 진행하다 이틀만에 200억달러(약 26조원)의 손실을 보며 몰락한 바 있다.

      CFD는 ▲고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며 ▲소유권이 부여되지 않고 ▲실제 거래자의 정체가 숨겨진다는 특징 때문에 조세 회피와 통정 거래 등 편법ㆍ악용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을 이전부터 받아왔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아케고스 사태 이후 증거금률 조정으로 레버리지 비율을 낮추는 정도의 규제만 추가했을뿐, 사실상 방임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 24일 삼천리ㆍ대성홀딩스 등 최근 3년간 주가가 급등한 가스 관련주 등 8개 종목이 일제히 하한가로 폭락하며 알려졌다. 매도 창구는 SG증권이었다. SG증권은 국내 CFD 시장에서 스왑(swap;교환) 및 헤지(hedge;위험분산) 역할을 주로 담당하기 때문에, 사태 촉발 직후 증권가 일각에서는 CFD 담보부족으로 인한 반대매매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27일 현재 이번 사태에 전문직ㆍ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주가조작 세력이 개입했음이 밝혀졌다. 이들은 지난 3년여에 걸쳐 고객 명의의 계좌를 직접 운용하며 통정매매ㆍ자전매매를 통해 서서히 해당 종목의 주가를 끌어올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행각이 지난 3년간 감시망에 포착되지 않은 배경으로 CFD가 지목된다. CFD는 투자자가 주식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산 시점과 판 시점의 차액만을 결제하는 장외파생계약이다. 증거금으로 거래 금액의 일부만 내고, 판 시점에 손익만 정산한다. 

      2015년 교보증권이 처음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고, 2019년 이후 대형증권사들도 동참하며 10여곳의 증권사에서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이들 국내 증권사는 CFD 계약에 따른 상환 위험을 SG증권 등 외국계 증권사에 수수료를 주고 이전한다. 

      외국계 증권사는 현물을 보유하거나, 다른 파생계약을 만드는 방식으로 또다시 헤지한다. 때문에 국내 증권사에 주문을 내도, 실제 매수ㆍ매도는 국내 증권사가 계약을 체결한 외국계 증권사 창구로 진행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들은 매수 거래 창구가 외국계 증권사로 표시되면 '외국계 자본이 들어왔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커 추종매매가 이어지는 일이 많다"며 "이 때문에 CFD 계약이 주가 조작에 활용될수도 있다는 염려가 많았다"고 말했다.

      2019년 연간 8조4000억원 안팎이었던 증권사 CFD 거래금액은 2020년 30조원, 2021년 70조원으로 폭증했다. 증권가에서는 2019년 전문투자자 요건 완화와 대주주 요건 강화 규제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한다.

      CFD는 고위험ㆍ고레버리지 상품이지만, 국내에서는 기관투자가 혹은 일정 자격을 갖춘 '개인 전문투자자'에게만 허용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진입 규제를 설정해놨다. 이런 규제가 이전까지는 나름 효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는 평가다. 

      문제는 2019년 금융당국이 증시에 모험자본을 공급한다며 금융투자상품 잔고 5억원 이상이던 전문투자자 요건을 5000만원으로 대폭 낮추면서 발생했다. 2019년 연간 3000여건이던 개인 전문투자자 등록건수가 2021년 2만4000여명으로 폭증했다. CFD 거래가 폭증한 시점과 일치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전문투자자 문턱이 대폭 낮아진데다 2020년 4월부터 '15억원 이상 혹은 지분율 1% 이상'이던 대주주 요건이 '10억원 이상'으로 강화된 것도 CFD 폭증의 큰 원인"이라며 "대주주에게 부과되는 양도소득세를 회피하기 위해 개인 자산가들이 대거 소유권이 없는 CFD 계약으로 갈아탔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랬지만, 금융당국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2021년 아케고스 사태로 CFD 거래의 위험성이 알려지자 10%였던 증거금률을 40%로 상향하고, 한국거래소 세칙 개정을 통해 실제 거래 주체 정보를 신고하도록 바꿨을 뿐이다. 

      금융권 일각에서 ▲해당 거래를 증권사 신용공여 한도에 포함하고 ▲동일 행위 동일 과세 원칙에 따라 실제 주식 거래와 동일한 양도세율을 부과하는 등의 규제책을 언급했지만 반영되진 않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미국 내 거주자 및 미국 시민의 CFD 거래를 원천 금지하고 있다. 빌 황의 아케고스 펀드 역시 역외 펀드를 통해 유럽 및 아시아계 투자은행과 거래를 진행했다. 

      국제증권거래위원회(IOSCO) 역시 CFD 등 장외레버리지상품은 지나친 거래 위험이 있다며 2018년 규제를 권고하기도 했다. CFD 상품이 처음 탄생한 영국의 금융행위청(FCA)가 2016년 샘플 조사를 시행한 결과, CFD 시장 참여자의 82%가 손실을 본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운용사 관계자는 "CFD 계약을 금융소득종합과세 영역에 포함시키기만 해도 조세 회피 목적의 CFD 거래 상당수가 사라질 것"이라며 "금융당국은 아직도 불공정거래와 시세조종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