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이어 바이오도 초격차?…M&A 대상·자금·전략 모두 애매
입력 2023.05.18 07:00
    정부 바이오 육성 기조 속 삼성 행보도 눈길
    이재용 회장, 미국 바이오시장 장기간 출장
    시장에선 대형 수주·M&A 기대 고개 들지만
    자금력·그룹 전략·늦은 시기 등 걸림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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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가 바이오를 반도체 신화를 이을 핵심 먹거리로 밀고 있다. 바이오가 국가적 육성 산업으로 떠오르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광폭 행보를 보인다. 머지 않아 큰 성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고개를 들지만 현실적인 장벽 역시 낮지 않다.

      단번에 개발 역량을 끌어올리려면 대형 M&A가 필요하지만 삼성은 지난 수년간 제약-바이오 합종연횡 흐름 밖에 있었다.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자금력도 여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바이오에서도 반도체처럼 개발과 생산 사이에서 이해상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바이오 분야에서 23건의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윤 대통령은 2월엔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한국판 보스턴 클러스터 조성’을 언급했다. 정부는 작년 첨단바이오 분야를 12대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했고, 연내 민관 역할분담 등 전략 로드맵을 내놓기로 했다.

      정부의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 기조에 맞춰 굴지의 대기업들도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행보도 눈에 띈다. 방미사절단으로 참여했던 이재용 회장은 미국에 남아 바이오 산업 챙기기에 분주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북미 법인을 찾아 ‘반도체 성공 DNA’를 바이오 산업에서도 이어가자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은 3주간의 출장 일정 중 존슨앤존슨(J&J), BMS,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FP), 바이오젠 등 글로벌 바이오사 수장들을 대면했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과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이 동행했다. 바이오젠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합작했고, J&J와 FP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객으로 모두 삼성 바이오 사업과 연관이 깊은 곳들이다. 때문에 머지 않아 대규모 CDMO(위탁개발생산) 수주 계약, 대규모 M&A 발표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는데 상황은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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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는 2010년 바이오 산업을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했고, 2018년엔 4대 미래성장사업에도 넣었다. 2011년과 2012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하며 사업을 본격화했다. 두 회사 모두 2019년 이후 본격적인 실적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규모 투자에 힘입어 글로벌 1위 CDMO 기업으로 거듭났다. 시가총액만 50조원을 넘는다.

      사업 실적이 좋지만 아직 자금 여력은 여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작년 4월 바이오젠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23억달러(약 2조7655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8억1250만달러는 1년, 4억3750만달러는 2년 안에 나눠서 지급하기로 했다. 올해부터는 2조원의 자금이 들어가는 5공장 건설도 본격화한다. 현재로선 M&A에 신경쓸 여유가 많지 않다.

      단순히 생산 거점에 그치지 않으려면 바이오 의약품 개발 역량이 필요한데, 그 주체가 돼야 할 삼성바이오에피스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형 M&A를 하려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의존해야 한다. 사실상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바이오 사업에서 대형 M&A가 나오려면 그룹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데 복잡한 지배구조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작년 4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3조20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증자에 참여했다. 다만 이때는 바이오젠과 계약에 따라 지분을 사주지 않을 수 없었고, 이미 사업화에 성공한 CDMO를 지원할 명분도 있는 상황이었다. 글로벌 시장을 선도한다는 확신이 없는 개발 사업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다시 넣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아직 불안정하다. 궁극적으로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8.51%)을 가져오는 식으로 구조가 바뀌지 않겠냐는 시선도 있다. 삼성물산이 수십조원을 마련하기 위한 카드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삼성전자에 넘기는 안이 거론되기도 한다. 지금은 삼성물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율이 높지만 삼성전자로 무게추가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어쨌든 현 시점에선 삼성물산도 삼성전자도 앞다퉈 바이오 산업 지원에 나서긴 어려운 상황이다. 삼성물산은 자금력이 부족하고, 삼성전자는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터라 주주들의 눈치도 봐야 한다. 삼성전자 해외 법인에는 현금이 쌓여 있지만 세금 문제 등을 감안하면 활용하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삼성그룹은 지난 수년간 시장의 원성을 들을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기조가 강했다.

      삼성그룹에서 대형 M&A가 나온 것도 오래 전이다. 그룹 최대 M&A라는 하만 인수도 벌써 7년 전이다. 반도체 기업 M&A가 숙원으로 꼽혔지만 총수 부재 등 여러 변수 때문에 실행되지 못했다. 보수적인 기조를 이어가며 검토만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최근 레인보우로보틱스 소수지분에 투자한 정도가 눈에 띈다. 그 사이 경쟁사들은 합종연횡 시도를 이어가며 덩치를 키웠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은 다른 반도체 경쟁사들의 견제에 성장 속도가 더뎠다.

      이는 바이오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전략라인, 재무라인 모두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보수적인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도 매년 수조~수십조원 규모 매머드 M&A가 일어나며 대형화가 진행됐다. 확실한 개발 역량과 파이프라인이 있는 회사는 너무 비싸고, 작은 회사는 단기간에 거둘 실익이 없다. 생산에서는 최고 수준 역량을 갖췄지만 개발 능력은 아쉬운 상황이 반도체와 닮아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결국 바이오 산업을 키우려면 그룹 차원에서 자금을 내려줘야 하는데 돈 없는 삼성물산은 나서기 어렵고 삼성전자가 키울 것인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지난 수년간 삼성그룹이 보인 행보를 감안하면 바이오 쪽에서 대형 M&A가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