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사태서도 드러난 '손실의 사회화'...줄소송의 종착지는 '정부'?
입력 2023.05.18 07:00
    시작된 소송전, 1차 타깃은 주가조작세력과 CFD발급 증권사
    증권사 책임 묻다보면 금융당국 관리감독 책임으로 번질 가능성
    2019년 이후 DLFㆍ라임사태 거치며 '원금 보장'이 '뉴 노멀'돼
    법인세 주는 등 손실은 사회화...'자기책임 원칙' 명문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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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G증권ㆍ차액결제계좌(CFD)발 주가 급락 사태가 소송전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대규모 주가 조작과 그에 따른 손실 책임이 누구 탓인지 가리기 위한 신호탄이다. 소송의 칼 끝은 일단 주가조작세력과 키움증권 등 CFD 계좌를 개설해 준 증권사로 향한다.

      금융권에선 여전히 관리감독책임을 지닌 금융당국 등 정부로 소송전이 확대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펀드 사태를 거치며 '선량한 투자자'에 대한 '원금 보전'이 일종의 기준선이 된 까닭이다. 사태 수습을 위해 내린 정치적 판단이 '자기책임 원칙'을 무너뜨렸고,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형국이란 지적이다.

      SG사태에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소송전은 이달 초부터 본격화했다. 지난 1일 법무법인 이강이 피해자 10여명을 대리해 고소장을 제출했고, 9일엔 법무법인 대건이 피해자 60여명을 대리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외에도 현재 원앤파트너스, 법무법인 한누리, 법무법인 대환 등이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소송 대상에 대한 판단은 조금씩 다르다. 이강과 대건은 주가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투자자문업체 관계자를 고소했다. 원앤파트너스는 키움증권 등 CFD 계좌를 개설해 준 증권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한누리의 경우 변제 능력이 있는 대상에게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아직 소송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피해 현황만 접수 중이다.

      금융권에서는 해당 소송이 최종적으로는 금융당국, 즉 정부를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주가조작 세력으로 의심되는 업체는 이번 무더기 폭락 사태에서 대규모 손실을 입어 변제 능력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키움증권 등 CFD 계좌 개설 증권사의 경우,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전문투자자는 일반 투자자 보호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이 핵심 변수로 꼽힌다.

      만약 투자자 측에서 CFD 계좌 개설과 관리가 잘못됐다고 따져 묻는다면, 증권사는 물론 한국거래소 및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 책임까지 따져 올라가야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사태에 앞서 금융당국이 벤처투자를 활성화한다며 전문투자자 자격 요건을 대폭 완화한 것 역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금융당국은 2019년 증시에 모험자본을 공급한다며 금융투자상품 잔고 5억원 이상이던 전문투자자 요건을 5000만원으로 대폭 낮췄다. 2019년 연간 3000여건이던 개인 전문투자자 등록건수가 2021년 2만4000여명으로 급증했다. 이와 비례해 2019년 연간 8조4000억원 안팎이었던 증권사 CFD 거래금액은 2020년 30조원, 2021년 70조원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전문투자자 문턱이 대폭 낮아진데다 2020년 4월부터 '15억원 이상 혹은 지분율 1% 이상'이던 대주주 요건이 '10억원 이상'으로 강화된 것도 CFD 폭증의 원인"이라며 "대주주에게 부과되는 양도소득세를 회피하기 위해 개인 자산가들이 대거 소유권이 없는 CFD 계약으로 갈아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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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이 이랬지만, 금융당국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2021년 아케고스 사태로 CFD 거래의 위험성이 알려지자 10%였던 증거금률을 40%로 상향하고, 한국거래소 세칙 개정을 통해 실제 거래 주체 정보를 신고하도록 바꿨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정책 실기(失期)에 대해 투자자들이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이전과는 달리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같으면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 전망 자체가 회의적이었을 거란 지적이 많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는 평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모든 선량한 소비자는 피해 발생시 원금 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일종의 자연법으로 실정법 위에 자리잡으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SG사태 피해자들 역시 정부에 관리감독 책임을 물어 원금보장을 요구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DLFㆍ라임펀드 사태를 수습하며 '자기책임 원칙'이 희미해진 것이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2019년 당시 금융당국은 해당 사태를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손보기 위한 카드로 활용했다. 분쟁조정위원회에서 100%에 가까운 배상 결정이 내려졌고, 금융당국은 관리 감독 책임을 물어 최고경영자(CEO)를 줄줄히 문책했다. '피해자는 선량한 시민'이라는 프레임이 공고화했다.

      이전까지는 배상비율이 50%를 넘는 경우가 없었다. 동양증권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사태가 최대 23%, 우리은행 파이시티 특정금전신탁이 최대 40%, 키코(KIKO) 사태 역시 최대 40%였다. 기존의 판례와 최소한의 자기책임 원칙이 무너지고, '원금 보장'이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분위기는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올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만약 CFD 계좌를 개설한 증권사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조정결과나 판결이 나온다면, 해당 회사는 충당금을 적립해 이익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는 법인세와 주주배당의 축소로 이어진다. 실적 만회를 위해 각종 상품의 금리나 수수료에 일정 비용이 전가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실제로 DLFㆍ라임펀드 사태에 대한 배상 책임이 본격화된 2020년 4대 금융지주가 적립한 대손충당금은 4조원에 달한다. 전년대비 1조5000억원 넘게 늘어난 규모다. 충당금은 적립한만큼 순이익이 줄어든다. 당시 배당성향을 고려하면, 추가 충당금 적립으로 인해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배당 중 3000억원이 넘는 금액이 줄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손실의 사회화가 지속되고 있는만큼, 자기책임 원칙이 더 와해되기 전에 제대로 명문화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자기책임 원칙은 법의 기본 구성 원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현행법에 명문화돼있지 않다. 자본시장법에서는 하위 규정인 금융투자업 규정에 단 한 줄로 다뤄져있을 뿐이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고 이해관계자가 많아지며 자기책임 원칙 역시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적극적 해석과 '자신이 결정하지 않은 것에는 책임이 없다'는 소극적 해석이 대립하고 있다. 좀 더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