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PO '올해 장사 끝?'...울퉁불퉁 증시에 빅딜 '연내 상장 포기'
입력 2023.05.19 07:57
    CPI 변수 지나가니 이번엔 '美 부채한도 협상' 리스크
    '시장 안정 기다리자' IPO 부서들 올해 수익 기대감 접어
    올해 예상 빅딜들 합산 시총 50兆 달했지만...'공염불' 그쳐
    美 부채한도 리스크 3분기까진 지속될 듯..."상황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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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 규모가 크게 축소될 전망이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증시에 변수가 잇따르며 대어(大魚)급 거래들이 잇따라 일정을 뒤로 미루고 있는 까닭이다. 대형 증권사 IPO 부서들은 이미 올해 수익에 대한 기대감을 접고, '시장 안정을 기다리자'며 고객 관리에 들어간 상황이다.

      물가상승(인플레이션) 고비가 지나가자 곧바로 '미국 부채한도 협상' 변수가 찾아오며 증시는 바람잘 날 없는 상황이다. 유통시장이 흔들리니 발행시장은 기업가치에 큰 욕심이 없고, 매크로 영향을 덜 타는 중소형 거래로 연명하고 있다.

      16일 증권가에 따르면 최근 빅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한 대형 증권사 IPO 부서는 고객사에 '미국 부채한도 리스크가 해소된 이후 공모 절차를 밟자'는 의견을 제출했다. 6월까지는 상황을 지켜보고 가급적 하반기에 추진하자는 뜻을 전한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무리해서 빅딜을 올렸다가 수요예측에서 체면을 구기거나 원하는 수준의 가치평가(밸류에이션)를 받지 못하는 게 지금은 더 큰 리스크 요인"이라며 "매크로 상황이 워낙 좋지 못하다보니 안정적 공모가 가능한 시기를 기다리자는 제안에 기업들도 수긍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예상됐던 빅딜들은 대부분 상장 공모 절차 진행을 중단할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컬리ㆍ케이뱅크 등 올해 1분기 상장이 예상됐던 공모주들은 모두 일정을 연기했다. LG CNSㆍ11번가ㆍCJ올리브영ㆍ현대엔지니어링ㆍ현대오일뱅크ㆍSK에코플랜트 등 올해 상장을 검토하던 대기업 계열사들도 마찬가지다. 1년의 거의 절반이 지나간 현 시점에서 구체적인 상장 일정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올해 예정됐던 이른바 '빅딜' 10여곳의 상장 후 예상 시가총액을 모두 합산하면 50조원에 이른다.  일반적인 공모 비중을 감안하면 이들이 시장에 나왔을 경우 총 공모 규모는 10조원을 훌쩍 넘는다. 이들 기업들이 상장에 속도를 내지 않으며 올해 국내 IPO 시장은 중소기업 위주의 '도토리 키 재기' 시장이 됐다. 상반기 합산 공모 규모(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제외)가 1조원을 넘지 못하는 건 2018년 이후 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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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연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증시에 부담을 주는 변수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다.

      그간 증시에 부담을 줬던 소비자물가지수(CPI) 이슈는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CPI는 전년대비 4.9% 상승으로 2021년 4월 이후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며 5%선 아래로 내려섰다. 그간 증시는 물론 금융시장의 발목을 잡았던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고 있다는 증거였지만, 증시는 혼조세로 마감됐다.

      시장은 이미 다른 변수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지금 증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인으로는 6월1일로 예정된 미국 부채한도 협상 기한이 꼽힌다. 

      미국은 정부의 부채 상한선을 의회의 승인을 받아 결정하는데, 현재 규정된 한도엔 지난 1월 이미 도달한 상태다. 이후 긴급조치를 통해 미국 국채에 대한 이자 지급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나, 6월 이후엔 이마저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채 이자 지급 중단은 국가의 이한이익상실(디폴트)을 의미한다.

      지난 2011년 '미국 신용등급 위기'도 이 부채한도 협상 난항에서 비롯됐다. 당시 미국 신용평가사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하향하며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급락했다. 수출 부진 우려로 코스피 지수는 이후 2주간 17% 급락했고, 한국 경제성장률 예상치도 0.2%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2013년에도 부채한도 협상 난항에 이은 정부 예산안 합의 난항으로 미국 연방정부가 문을 닫았으며,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현재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미국 연방정부의 보유 현금이 바닥나는 날짜인 'X-데이트'(X-date)를 6월1일로 못박고 있다. 골드만삭스ㆍ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이 날짜를 대략 7월말로 추정하고 있으나, 6월에 한 차례 고비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 정부 회계연도 시작 시점인 10월초까지 이 리스크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미국 부채한도 위기 분석 레포트를 통해 "실제로 디폴트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며 "합의는 단기적으로나마 지연되고, 금융시장에 한 차례 충격을 준 다음, 민주당의 소폭 양보와 함께 한도 증액으로 귀결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부채한도 협상 리스크가 6월을 넘어 3분기 내내 발목을 잡는다면 IPO 대어들로서는 연내 상장 가능성을 엿보기 더욱 힘들어질거란 평가다. 한 차례 예비심사를 통과한 회사들도 현 시점에선 대부분 6개월인 상장 예비심사 유효기간이 종료된 상태다. 다시 상장예비심사부터 절차를 밟는다면 당장 준비를 시작해도 상장 공모까지 5~6개월이 소요되는데, 3분기까지는 매크로 변수를 지켜봐야 할 가능성이 커 물리적으로 연내 상장은 어려워지는 것이다.

      다른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금융감독원의 깐깐한 증권신고서 검수로 인해 '공모 일정이 밀리지 않은 딜이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중소형 딜 역시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올해에만 11곳, 지난해 하반기부터 40곳에 달하는 SPAC이 상장한 것은 최소한의 부서 운영을 위한 자구책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