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값 오를 땐 여신 2배 늘리더니...건설사 우산 뺏는 은행들
입력 2023.05.23 07:00
    4대금융 건설업 여신 25조...5년새 67% 급증
    1군 건설사도 6~7%대 고금리...취급 줄어
    건설사 관련 여신 부실 늘어 어쩔 수 없다지만
    중견 건설 줄도산 2011년 '우산 뺏기' 재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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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진정 국면에 들어가며 기업들 자금 조달 사정도 다소 나아지고 있지만, 위기가 현재 진행형인 건설사들은 여전히 힘겨워하는 상황이다. 유동성 급증 기간 동안 건설업 관련 여신을 두 배 가까이 늘렸던 은행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단속'에 들어가며 돈줄을 죄고 있다는 지적이다.

      '1군 건설사'들도 평균 이상의 고금리를 지불해야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다. 은행들은 건설업계의 부실 위험과 이로 인한 대손충당금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해묵은 '우산 뺏기'논란을 피할 순 없을 거란 평가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ㆍ신한금융ㆍ하나금융ㆍ우리금융 등 4대 은행지주사의 건설업 관련 여신 총액은 지난해 말 현재 25조2700억여원으로 5년 전인 2018년말 15조5300억여원 대비 63% 증가했다. 2019년까지 정체 상태를 보이던 건설업 여신 총액은 글로벌 유동성 폭증과 국내 부동산 정책 실책에 따른 집 값 급등을 틈타 크게 늘었다. 특히 2021년엔 전년대비 5조원 넘게 늘어났다.

      가장 적극적으로 건설업 관련 여신을 늘린 곳은 국민은행을 중심으로 한 KB금융이었다. 2018년말 3조2700억여원으로 4대 금융그룹 중 건설업 관련 여신이 가장 적었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6조8400억여원으로 1위가 됐다. 5년새 여신 증가율이 109%에 달한다. 이 기간 기업 대출 총액은 55% 늘었다. 업종별 대출 증가율에서도 건설업이 1위였다.

      우리금융도 2018년부터 2022년 사이 건설업 관련 여신이 2조7000억여원, 66%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기업 여신이 40% 성장한 것을 고려하면 건설업 관련 여신 증가폭이 가팔랐던 셈이다. 2019년 건설 여신을 크게 줄였던 하나금융은 2022년 한 해 동안에는 4대 금융 중 가장 큰 폭으로 건설업 관련 여신을 늘렸다. 가장 보수적으로 대응한 곳은 신한금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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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 기준 약 25조원의 건설업 관련 여신 중 12조원 가량은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스(PF) 관련 사업장 대출이며, 10조원 안팎이 건설사에 대한 직접 대출로 추정된다. PF 제외 건설사 직접 대출 역시 지난 5년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부동산 침체가 바닥을 찍은 2015년 이후에도 은행들은 한동안 건설업 관련 여신을 '현상유지' 수준에서 관리해왔다"며 "2018년 이후 집 값이 오르기 시작하고 유동성까지 풀리며  건설사가 다시 '소중한 고객'이 됐고, 관련 여신도 급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好)시절은 3년도 채 가지 못했다. 미국이 시작한 글로벌 기준금리 인상 행렬로 소비가 위축되고 자산 가격 상승세가 누그러지자 은행들은 곧바로 건설업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이후로는 건설사 관련 여신은 롤오버(차환)를 해주지 않거나, 신규 취급을 거의 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전언이다. 자금 조달이 되더라도 상당한 고금리를 줘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건설의 경우 지난 1분기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 등으로부터 받은 외화 운전자금대출의 금리가 12%대로 정해졌다. 지난해 4분기 농협은행 등으로부터 단기자금을 차입하면서는 6.6%의 금리를 적용받았다. 코오롱글로벌 역시 우리은행으로부터 1000억원의 대출을 받으며 연 6.86%의 이자를 주기로 했다.

      지난 2월 하나은행으로부터 3년짜리 장기대출 3000억원을 받으며 한숨 돌린 GS건설 역시 적용 금리는 5.9%로 당시 신규취급액 기준 대기업대출 평균금리(5.24%)를 크게 웃돌았다. 그나마 절반은 단기금리와 연동되는 변동금리 대출이었다. 메리츠그룹으로부터 지원받은 1000억원의 단기대출 금리는 7%였다.

      그나마 은행 지원이 나오면 다행이었다는 평가다. 지난해 4분기 농협은행ㆍ대구은행ㆍ경남은행 등으로부터 급하게 단기차입금 400억원을 조달한 동부건설의 경우, 지난 1분기 은행 추가 조달이 쉽지 않자 사모사채로 방향을 선회했다. 두 차례에 걸쳐 190억원을 사모사채로 조달하며 투자자에게 약속한 금리는 연 10%였다. 태영건설은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를 통해 글로벌 사모펀드 KKR로부터 자금대여를 받으며 연 13%의 이자 지급을 약속했다.

      은행들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건설업 관련 여신의 부실 비중이 급격히 올라가며 건전성 관리를 위해 익스포저(위험노출액)를 줄이거나, 취급가격(금리)을 높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가장 급격히 건설업 관련 여신을 늘린 하나금융의 경우, 기업대출 중 건설업 고정이하여신비율이 1.24%에 달한다. 전체 평균 0.24%는 물론, 익스포저가 가장 큰 제조업 0.36%와 비교해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전체 기업 여신 중 건설업 관련이 차지하는 비중은 3.5%에 불과하지만, 적립한 충당금 중 건설업 관련이 차지하는 비중은 14%나 된다.

      국내 금융권은 지난 2011년 '건설사 우산 뺏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중견 건설사인 임광토건, 고려개발, 범양건영, LIG건설 등 상위 100개 건설사 중 24곳이 워크아웃 혹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이들 대부분이 회계상 영업 흑자를 기록 중이었는데도 PF 부실화 과정에서 은행들이 자금 회수에 들어가며 부도 위기에 몰렸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에서 부동산이 경착륙하지 않게 엄중히 관리하며 은행들 역시 부동산 PF 지원안 등을 내놓곤 있지만, 막상 건설사들이 느끼는 운전자금 부담은 상당한 상태"라며 "은행들이 소매금융 부문에서 정부 압박으로 인해 박해진 마진을 기업금융, 특히 건설ㆍ호텔레저 등 취약차주로부터 보충하려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