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찔끔 증자에 BIS비율 줄타기 계속…정부 추가 지원은 '오리무중'
입력 2023.05.24 07:00
    BIS 비율 13% 턱걸이…지난해 말보다 하락
    올해도 한전 대규모 적자 예상…부담 지속
    자본확충 안간힘…후순위채 발행·증자 등
    "산은 정부만 바라보지만…여전히 '검토중'"
    • 한국전력(한전)의 대규모 적자 여파가 KDB산업은행(산은)의 재무 건전성까지 짓누르고 있다. 건전성 지표인 BIS 자기자본비율이 정부 권고치 13%를 가까스로 넘는 수준까지 왔지만 올해도 실물경기 둔화, 한전 적자 등 여력이 많지 않다. 산은이 후순위채 발행 등 자체적인 자본 확충을 꾀하지만 충분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정부에서 아직 뾰족한 수를 내놓지 않고 있어 더욱 애가 타는 분위기다.

      산업은행은 지난 18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1200억원 규모 신주 발행 안건을 의결했다. 정부가 현금출자 하는 방식으로 증자에 참여하며, 주당 5000원에 2400만주가 발행된다.

      지난해부터 산은은 한전의 지분법 손실에 따른 자본 감소를 막기 위해 자본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34조원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6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며 산은의 재무 건전성에 부담을 주고 있다.

      산은은 2015년 정부로부터 한전 주식 8000억원의 현물출자 받아 최대주주(현 지분율 33%)에 올랐다. 한전의 순손실은 지분법 평가에 따라 산은의 손실로 잡힌다. 강석훈 산은 회장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전에 1조원 손실이 나면 지분법상 산은의 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6bp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은행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인 BIS 비율은 점점 악화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희곤 의원실에 따르면 산은의 BIS 비율은 작년말 13.40%에서 3월말 13.08%까지 하락했다. 금융당국의 권고치를 가까스로 유지했다.

      산은은 연중 BIS 비율 관리를 위해 후순위채 발행, 구조조정 기업 매각 추진 등 자체적인 재무 건정성 개선 노력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산은의 BIS 비율이 13% 아래로 떨어지면 조달비용 상승에 따라 혁신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조건이 악화된다. 글로벌 신용도 우려로 외화채 발행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산은은 BIS 비율 사수를 위해 리스크 관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지역 개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일부 중단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한 산은 관계자는 "내부에서 일부 업무 속도가 느려지고 있는데 BIS 비율 관리 영향이 없지 않다"며 "한전 이슈 때문에 BIS 비율 유지가 아슬아슬한 상태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산은은 최대한 '자체 해결'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3월 이사회에서 후순위채 발행 한도를 2조원으로 설정하고 4월 8000억원 규모의 조건부자본증권(후순위채)을 발행했다. 지난해 11월에도 5000억원 규모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시장에서는 산은이 상반기 BIS 비율, 한전 적자 등의 추이를 보고 추가로 후순위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6월부터는 산은의 해외 대출채권 매각도 가능해진다. 해외 인프라 등 장기 프로젝트에 묶인 대출 채권들을 해외 금융사에 매각하는 방안도 고려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한전의 대규모 적자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산은의 부담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한전의 적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지만, 괄목할 개선세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궁극적으로는 정부의 추가 지원이 필요할 것이란 평가가 많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전 적자에, 경기 부진까지 겹치면서 산은 내부에서도 BIS비율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고민이 많다"며 "국책은행이 BIS 비율이 너무 낮으면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정부는 뭐하고 있나’ 지적할 수 있어 국가 위상에도 악영향이 미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 최대한 손을 벌리지 않고 비율을 유지하는게 산은 경영진의 책무라 신경을 많이 쓰고 있겠지만 결국 정부가 도와주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라는 특수성에 따라 정부의 지원이 법에 명문화돼 있다. 산업은행법 제 32조 ‘손실금의 보전’ 조항에 따라 산은의 결산순손실금은 회계연도마다 적립금으로 보전하고 적립금이 부족할 땐 정부가 보전한다고 규정한다.

      정부는 2015년 2조원 규모의 현물출자를 했고 이후 여러 차례 유상증자가 시행되고 있다. 2021년 1조1000억원, 지난해 약 1조3000억원의 현금을 출자했다. 지난해 말과 3월 말에는 각각 5650억원, 4350억원 규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지분을 출자해줬다.

      여기에 1200억원의 현물출자가 또 이뤄진 것인데, 이는 BIS 비율을 잠시 정부 권고치 이상으로 유지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21년과 2022년 산은에서 1조원가량의 배당금을 챙겼다. 한전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져도 배당금은 별도 기준으로 산정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정부가 받아가는 자금, 산은에 요구하는 역할 등을 감안하면 정부의 지원이 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현재 시점에서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사안은 파악하고 있지만 정부도 살림이 빠듯한 터라 계속 자금을 퍼줄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전 적자가 금융공공기관에 대한 정부 재정 투입으로 이어진다는 비판 여론도 신경써야 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산은의 재무건전성 문제를 정부에서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 않다"며 "결국 기획재정부에서 사인이 떨어져야 산은도 움직일텐데 기재부가 내부 검토만 하고 있어 산은도 기재부 결정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