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건 '범죄도시3'뿐…'1조원 재고' 폭탄 미루기 중인 韓영화
입력 2023.06.01 07:00
    70~80편 미개봉 영화 쌓여…재고 물량만 1조원
    韓영화 부진에 개봉 지연…"손실 확정만 늦출 뿐"
    콘텐츠 패러다임 OTT로…신규 투자도 얼어붙어
    "범죄도시3 흥행 여부에 한국 영화 운명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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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영화업계에서 이달 31일 개봉하는 ‘범죄도시3’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1,2편이 연달아 ‘히트’를 쳤다는 점은 물론이요, 이번에는 ‘범죄도시3’ 흥행 여부에 한국 영화의 명운이 달렸다는 다소 무거운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최근 한국 영화 성적은 참혹하다. 지난달 개봉한 한국 영화 ‘리바운드’ ‘드림’ 등이 연이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실적을 냈다. 숫자만 봐도 ‘한국 영화 침체기’를 부정할 수 없다. ‘드림’ 이전 올해 한국 영화 중에서 관객 100만명을 넘긴 작품은 황정민과 현빈 주연의 ‘교섭’ 정도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영화 관객 수는 173만명으로 3개월 연속 200만명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같은달과 비교하면 나아졌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7~2019년 동월 평균치(395만명)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은 24.8%에 그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파르게 상승한 티켓 값이 영화관의 문턱을 높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특히 한국 영화의 부진이 두드러진다는 점은 뼈아프다. 지난달 흥행작 1~3위(스즈메의 문단속, 존윅 4,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모두 외국 영화다. 지난달 외국 영화 관객수는 524만명으로 지난해 동월(224만명)보다 133.7% 늘었다. 2017~2019년 동월 평균치(892만명)의 58.7% 수준을 회복했다.

      이러니 당장 기댈 곳은 '범죄도시3' 뿐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범죄도시 2편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달성하며 침체된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이 나온 바 있다.

      아직 남은 위험 요소는 많다. 현재 시장에는 촬영을 마쳤지만 개봉하지 못한 한국 영화만 70~80편이 쌓여 있다. 팬데믹 때 사회적 거리 두기로 영화관이 아예 문을 닫은 영향도 있었다. 총 제작비가 200억원이 훌쩍 넘는 대작 영화가 다수고, 웬만한 영화도 제작비가 100억원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시장에 약 ‘1조원’ 어치의 재고가 쌓인 셈이다. 영진위에 따르면 2019년 한국 영화의 편당 평균 순제작비는 76억500만원, 홍보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총제작비는 100억8000만원 수준이다.

      코로나 영향이 줄어든 지금은 한국 영화가 연이어 참패를 하면서 투자배급사 및 극장들이 ‘차마 개봉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영화가 개봉을 하기 전까지는 손익이 확인되지 않지만, 개봉을 하고 실적이 나오면 손익이 반영된다. 흥행에 참패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면 결국 재무제표에 손실이 쌓이는 구조다. 

      미개봉 영화를 지금부터 1년 간 1주에 하나씩 개봉한다고 해도 50편밖에 개봉하지 못한다. ‘재고 처리’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진짜 팬데믹 후유증’은 1~2년 후에 시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콘텐츠처럼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상품을 추후에 시장에 내놓는다고 흥행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손실을 한꺼번에 인식해야 할 위험이 있다. 게다가 신규 투자가 뚝 끊겨 1~2년 후에 개봉할 영화들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투자배급사나 극장 등 개봉을 결정짓는 곳들의 경영진은 지금 손실을 떠안게 될까봐 ‘본인 임기’에 개봉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재고가 쌓인 상황에서 신규 투자도 못하고 있으니 다음에 부임하는 경영진 입장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을 맞닥뜨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콘텐츠는 몇 개월만 지나도 촌스러워지기 때문에 뒤늦게 개봉한다고 좋은 성적을 내기는 힘들 것"이라며 "마치 부동산에서 부실 자산 반영을 계속 미루는 것처럼 ‘폭탄 미루기’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 영화 업계를 향한 투자도 얼어붙었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은 전년 대비 8.9% 감소한 6조7408억원이다. 이중 영진위 예산은 850억원으로 전년 1100억원에서 삭감됐다. 팬데믹 이후 영화 산업이 타격을 입고 1~2년 내 영화 발전 기금이 고갈될 위험에 처하자 감액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반면 한류 콘텐츠와 OTT 관련 예산은 늘어났다.

      중소기업벤처기업부가 3월 발표한 2023년 2차 모태펀드 정시 출자공고에 의하면 올해 벤처펀드규모는 약 1조4000억원이다. 주요 출자 분야가 영화, 스포츠, 관광 관련 사업인 펀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675억원을 출자한다. 이중 한국영화 투자펀드는 400억원 규모로 책정됐는데 지난해 대비 270억원 줄어들었다. 

      투자 시장도 마찬가지다.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영화보단 드라마’ 선호도가 강해졌다. 전문적으로 영화 투자를 해오던 일부 투자사들도 시리즈물로 눈을 돌리거나 OTT용 영화 투자에 관심을 두는 분위기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 공개에 유명 작가가 붙는 ‘흥행 보증’ 작품일 경우 외부 투자를 받기보다 OTT와 제작사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도 강해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패러다임이 완전히 OTT의 시리즈물로 가면서 영화 쪽은 투자 심리가 좋지 않은 편”이라며 “대박 여부를 점칠 수 없는 ‘콘텐츠’ 자체보다는 OTT나 콘텐츠 시장 성장에 따른 수혜를 받는 업체들이 수익성 차원에서도 안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