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된 삼전·하이닉스 주가…'AI 수혜론? 아직은 엔비디아만 돈 버는 구간'
입력 2023.06.02 07:00
    지난달 삼성전자·SK하이닉스 나란히 연중 최고가 기록
    엔비디아 시총 '1조 달러' 돌파하며 AI 기대감 커져
    수혜 가능성 높지만 당장 주가 반영하긴 섣부르단 평
    AI 산업 길목 틀어쥔 엔비디아…메모리는 '묶인' 신세
    결국 주가는 메모리 업황 따를 전망…단기 과열은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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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주 주가가 2주 사이 급등했다. 재고 우려가 해소되고 있는 데다, 엔비디아가 시총 1조달러를 돌파하는 등 인공지능(AI) 산업 수혜 기대감까지 가세한 덕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당장은 엔비디아만 돈을 벌어가는 국면이라 주가가 실적을 앞질러 치솟는 걸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21년 '9만전자 직후 미끄럼틀' 현상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시각이다. 

      지난달 30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장중 한때 각각 7만2500원, 11만3400원을 기록하며 나란히 연고점을 경신했다. 외국인 투자자 매수가 집중되기 시작한 지난 15일 이후 10거래일 만에 삼성전자는 12%, SK하이닉스는 30% 이상 주가가 치솟은 것이다. 1일 양사 주가는 고점보다 약 2% 안팎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삼성전자는 7만원대, SK하이닉스는 11만원대 주가를 유지하고 있다. 

      예견된 주가 회복이지만 시장에선 기대보다 오름세가 크게 가파르다는 분위기가 전해진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재고가 최악을 지나고 있다는 관측과 함께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를 비롯한 지표가 업황 회복을 가리키고 있는 건 맞다는 평가다. 다만 AI 산업 수혜 기대감까지 주가에 반영하기엔 때가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현시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과 주가를 결정짓는 건 주력인 DDR4 D램 등 메모리 반도체의 업황인데 이제 초입에 들어선 AI 산업이 단기간 내 주가 급등을 부추기는 모습이라 부담이 크다"라고 전했다. 

      전방 AI 산업의 성장이 양사 반도체 사업 수혜로 이어질 거란 방향성 자체는 맞지만 현재 주가는 속도 측면에서 과열이 우려된단 얘기다. 

      반도체 업계에선 AI 산업이 10년 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핵심 먹거리로 부상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지난 수십년 동안 PC에서 스마트폰, 데이터센터에 이르기까지 기술 변화로 새로운 응용처가 부상할 때마다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 왔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가 메모리 반도체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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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비디아가 최근 장중 시총 1조달러(원화 약 1300조원)을 돌파한 것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엔비디아는 지난 24일(현지시각) 1분기 매출액이 71억5000만달러(원화 약 9조5000억원)로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원화 기준으로 시장 전망치보다 9000억원가량 높은 매출액을 올렸는데, AI 반도체 수요가 기대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게 숫자로 드러났다는 평이다. 

      그러나 아직까진 엔비디아만 돈을 쓸어 담는 형국이다. 엔비디아가 전방 AI 산업으로 향하는 길목을 거의 틀어쥐다시피 한 까닭이다. 

      현재 AI 산업 기술 경쟁은 대형화로 요약된다. 오픈AI가 자연어 모델인 GPT 시리즈를 내놓으며 AI 모델이 다루는 파라미터(매개변수) 개수가 일정 수준을 넘기면 비약적인 성능 개선을 보인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파라미터 개수는 AI 모델의 규모와 복잡성을 나타내는 성능 지표로 통한다. 파라미터 1000억개 선이 일종의 '티핑 포인트'로 꼽히는데, 돌풍의 주역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챗GPT가 약 1750억개 수준의 모델이다. 

      이 초대형 AI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한 핵심 반도체가 엔비디아의 범용 그래픽처리장치(GPU)다. 연산처리에 특화한 GPU 수천장에서 수만장을 하나의 반도체로 이어붙여 인간 두뇌를 모방하는 식이다. 오픈 AI가 GPT-4를 학습시킬 때 엔비디아 A100을 1만장가량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때 AI 학습에 특화한 기억장치가 SK하이닉스가 개발한 고대역폭 메모리(HBM)다.  

      챗GPT 이후 글로벌 빅 테크는 앞다투어 자체 AI 모델 구축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최근 엔비디아 어닝서프라이즈의 배경이다. 수완 좋은 엔비디아는 때맞춰 종전 A100보다 성능을 세 배 개선한 H100을 내놨는데, SK하이닉스의 HBM3가 탑재된다. 빅 테크가 AI 기술 패권 경쟁에 열을 올릴수록 엔비디아를 거쳐 SK하이닉스로 낙숫물이 흘러가는 구조다. 

      작년 기준 전 세계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50%, 삼성전자는 40%, 마이크론은 10% 선이다. 연평균 30~40% 성장을 전망하는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씩 나눠가진 셈이다. 이렇게 보면 양사를 최대 수혜자로 보는 데 무리가 없다. 

      그러나 올해 HBM 전체 시장 규모는 약 7억3000만달러 규모로 전망된다. 원화 기준 약 1조원이다. 연평균 40% 성장을 가정하면 2027년 4조원 규모로 커진다. 점유율 기준으로 양사 몫은 각 1조8000억원, 슈퍼사이클 시기 영업이익률 50%를 가정해도 4년 후 양사는 HBM에서 각 1조원 남짓 이윤을 거둘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삼성전자의 작년 영업익 43조원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는 반도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구축해 마진을 듬뿍 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내놓은 H100은 종전 A100보다 성능을 세 배 개선하면서 가격도 세 배인 3만달러 이상으로 책정했는데 기존 반도체 산업 가격 논리와 정반대"라며 "수익이 엔비디아로 귀속되는 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 어느 회사의 HBM을 어느 가격에 얼마나 탑재할지도 엔비디아가 결정하는 구도이기 때문에 양사에 돌아갈 몫이 묶여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HBM 외에도 관련 인프라 투자가 늘며 반사수혜가 상당할 거란 기대감도 높다. 그러나 이 역시 AI 산업 자체가 초입에 해당하는 만큼 당장 실적을 유의미하게 끌어올릴 정도로 보는 시각은 제한적이다. 

      글로벌 빅 테크의 AI 투자가 늘면 엔비디아 GPU를 거쳐 HBM으로 유입되는 자금 외에도 서버 등 관련 인프라 투자도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현재 D램 시장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차세대 먹거리인 DDR5 수요가 유의미하게 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전체 D램 시장에서 비중은 아직 1% 안팎에 그친다. 

      삼성전자의 경우 AI 학습용 GPU 수요가 커지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서 덕을 볼 가능성도 있다. 엔비디아 H100은 TSMC의 4나노(mm) 선단공정으로 만들어진다. TSMC 생산능력 이상으로 수요가 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유일한 대안이다. 현재 엔비디아를 견제해야 하는 AMD 등 팹리스가 삼성전자의 선단공정 발주를 대안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파운드리건 메모리 반도체건 실적으로 드러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투자업계에선 AI 인프라가 구축되고 스마트폰이나 전기차, 로봇 등 기기에 AI 반도체 탑재가 본격화하면 비로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돈을 벌어 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은 챗GPT도 수익 모델을 타진하는 단계이고 엔비디아 GPU가 너무 비싸서 설비투자(CAPEX) 효율이 떨어지는 것도 한계로 거론된다"라며 "AMD를 통해 엔비디아 독점 구도가 깨질 가능성도 있고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시장에서 다양한 고객사를 갖추게 될 때 실적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업황 전망과 실적을 벗어나기 어렵단 분석이다. 곧 드러날 2분기 실적부터 업황 회복 효과가 드러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진 조심스러운 시각이 적지 않다. AI 인프라 투자가 역설적으로 DDR4 D램 등 주력 사업 업황 회복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현재 AI 산업 수혜 기대감이 지난 2021년 초와 같은 주가 흐름을 재현할까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당시 삼성전자 주가는 개인투자자 매수세가 합세하며 9만8000원 이상으로 치솟았다가 2년 내리 미끄럼틀을 탔다. 비대면 전환에 대한 지나친 낙관과 주가 과열에 대한 피로감 등 이유가 원인으로 꼽힌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무거운 주식이 기대감을 앞당겨 반영해 단기 급등하는 게 좋은 흐름은 아니라고 본다"라며 "아직 2분기 실적을 확인하기 전이고 AI 산업 수혜는 수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주가가 급하게 치솟아도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