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항상 ETF가 나오면 고점일까?
입력 2023.06.13 07:00
    취재노트
    'ETF의 저주', 기획성ㆍ테마성 ETF 늘어나며 생겨
    '지수' 추종하지만...ETF 제조사들이 지수도 개발
    '팔릴만한' 테마 담아야 하는데 순환매 주기 빨라져
    분산 규제 완화되고 퇴직연금 타깃되며 더 쏟아질 듯
    • '상장지수펀드(ETF)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특정 테마의 ETF가 새로 시장에 출시되면 이는 보통 해당 테마의 '고점' 신호이며, ETF 투자자들은 대개 손실을 본다는 것이다. 올해 대세라던 미국 무위험 지표 금리(SOFR) ETF도, 이차전지 ETF도, 유럽명품 ETF도 이 저주를 피할 순 없었다.

      이는 ETF가 더 이상 '진짜' 인덱스 펀드(Index Fund)가 아니게 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란 지적이다. ETF는 여전히 지수(Index)를 추종하지만, 그 지수를 제조사들이 마음대로 만들어 내면서 패시브(Passive;시장 평균 수익 지향) 투자라는 ETF의 핵심 가치가 퇴색됐다는 것이다.

      '저주'의 근원을 이해하려면 ETF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ETF는 보통 자산운용사가 만들고 증권사가 판매한다. 상품을 만드는 건 운용사 뿐만이 아니다. 주요 증권사들도 상품기획ㆍ전략 파트에 ETF 담당 인력들을 두고 있다. 증권사에서 먼저 특정 구조의 상품을 운용사에 권해 함께 개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운용사는 운용보수를 받고, 증권사는 지정참가회사(AP)ㆍ유동성공급자(LP)로 참여해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ETF는 일단 '지수 추종형' 상품인만큼, 추종할 지수가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S&P500, 코스피 같은 대형 지수 추종형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포트폴리오 등 ETF의 투자 구조가 결정되면, 해당 구조를 반영한 지수를 펀드평가사에 의뢰해 새로 만든다. 

      예컨데 삼성자산운용이 지난해 상장한 국내 첫 '단일종목 ETF'인 'KODEX 삼성전자 채권혼합 Wise'는 삼성전자 보통주를 30%, 국고채를 70% 편입한 상품이다. 이 ETF는 삼성운용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개발한 'Wise 삼성전자 채권혼합 지수'를 추종한다. 이 지수는 삼성전자 주가를 30%, 한국자산평가 국고채 총수익지수를 70% 반영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특정 ETF 상품을 위해 새로 개발한 지수는 동어반복이나 순환참조에 가깝다"며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이 인식하는 '패시브'라는 의미와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지수 개발과 유지에도 비용이 든다. 매몰비용이 발생하니, 애초에 투자자들이 관심이 있는 주제를 선정해야할 필요성이 커진다. 주목받는 특정 산업군이나 상품군을 기반으로 새로운 지수를 만들면, 해당 지수의 최근 수익률 그래프도 '예쁘게'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이니 마케팅하기에도 좋다.

      영원히 우상향하는 테마는 없다. 지수 개발부터 상품 출시까지 아무리 짧아도 한두 달의 시일이 소요되는데, 이 사이에 테마는 식기 마련이다. 기초자산의 가격이 지나치게 많이 올라 투자 메리트가 없어질때쯤 ETF 상품이 출시되는 이유다.

      ETF를 기획하는 이들도 할 말은 있다. 최근 3년간 씨클리컬 산업의 업황 주기도, 산업군별 순환매 주기도 이전에 비해 대폭 빨라진 것이 사실이다. 기존엔 크게 주목받지도, 수익률이 좋지도 못했는데 앞으로 뜰 가능성이 있다고 미리 선점해 내놓는 ETF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자연히 지금 당장 잘 팔리는 기획상품 출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시장 환경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상황은 더욱 잦아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8월 ETF의 분산요건 규제를 완화했다. ETF는 최소한 10종목(1종목 비중 30% 이하) 이상의 자산을 담아야 한다. 이전까진 혼합형의 경우 주식 10종목, 채권 10종목을 따로 담아야 했는데, 이를 완화해 상품군을 따지지 않고 모두 합쳐 10종목만 담으면 되도록 했다. 삼성전자 한 종목(비중 30%)에 각종 채권(비중 70%)을 섞은 '단일종목 ETF'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퇴직연금 계좌에 개별 주식 종목은 담을 수 없지만, 국내 ETF 상품은 담을 수 있다. 극단적인 테마형 ETF인 단일종목 ETF가 노리는 게 바로 퇴직연금 시장이다. 3~5가지 소수 테마 종목에 집중투자하는 ETF도 가능하다. 위험자산인 주식 비중이 40% 이하면 된다. 예컨데 이른바 '에코프로 삼형제'를 40%가량 담고, 나머지는 7종류 이상의 국공채로 채운 ETF 상품이 나온다면, 퇴직연금으로 투자할 수 있다. 이런 ETF는 '안정형 상품'으로 분류돼 퇴직연금 위험자산 투자 제한에도 걸리지 않는다.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ㆍ운용사 가릴 것 없이 향후 성장 동력을 10년 후 800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인 퇴직연금 시장에서 찾고 있는만큼, 지금보다 더 기획성 ETF 상품을 많이 만들어야 할 유인이 있다"며 "ETF 시장의 최종 승자는 KG제로인ㆍ에프앤가이드 등 지수를 만드는 펀드평가사들이 될 거란 말이 나올 지경"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