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투자자 설명회에서 사라진 오성홍기
입력 2023.06.26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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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미국으로 향하는 우리나라 기업들 가운데 현대차는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엔 LG·SK그룹과 손잡고 현지 대규모 배터리 투자를 확정했고, 중장기 생산·판매 전략을 비쳐봤을 때 미국이 현대차의 제1시장이란 점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노선이 확실하게 정해진만큼 최근 현대차의 투자설명회에선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운 ‘중국’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대차는 현재 닥친 위험(리스크)중 중국을 가장 앞서 설명했다. 투자설명회의 핵심이었던 전기차의 생산 전환, 판매 계획에서도 한국과 미국·유럽을 주요 국가로 표현한 반면 중국은 ‘기타 국가’ 중 하나로 분류했다.

      지금은 초라한 판매 성적표를 거두고 있지만 중국은 한때 현대차의 제1시장이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실제로 현대차의 전성기를 견인한 일등국가 중 한 곳이었다.

      중국 시장이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 것은 2017년. 중국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의 보복 일환으로 한한령을 본격화한 직후다. 중국과의 관계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불거졌고 최근엔 그 수위가 더 격화했다. 그 결과 2016년 중국에서 180만여대의 차량을 팔았던 현대차는 지난해 33만대를 겨우 판매하는데 그쳤다.

      중국은 계륵(鷄肋)과 같은 시장으로, 버릴 수만은 없었다. 대외 변수가 사라지고 정치적 리스크가 해소하면 다시금 가장 큰 수익을 안겨줄 국가란 기대감도 있었다. 전기차 시장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전세계에서 전동화 전환이 가장 빠른 중국 시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떤 완성차 기업도 선택하기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적어도 글로벌 기업들의 탈(脫) 중국이 가속화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사실 중국 시장의 부진이 현대차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불과 1~2년에 불과하다. 중국 부진은 상수, 더 이상 나빠질 것 없는 시장이 그룹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졌다. 사실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것은 현대차뿐만은 아닌데 성공가도를 달리던 폭스바겐과 같은 외국 완성차 브랜드도 전기차 변혁기를 맞아 중국 내 자국 브랜드에 밀리며 예년의 위상을 잃어가는 추세다. 

      오히려 중국 시장의 부진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북미와 유럽 등 현대차의 거점 지역에 더 힘을 쏟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의견도 나왔는데, 실제로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 신흥 시장에 과감한 투자가 가능해진 상황을 조성했다. 

      중국의 빈자리는 점점 신흥국이 채워가고 있다. 일본 브랜드의 텃밭이던 베트남만 보더라도 올해들어 현대차는 토요타를 제치고 판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차량공유를 비롯한 동남아 신사업의 투자 성과는 미미하지만 본업이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사업구조가 마련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현대차의 탈(脫) 중국 계획은 점점 더 구체화하고 있다. 판매 차종을 대폭 줄이고 공장을 매각하는게 핵심이다. 현대차는 2021년에 중국 1공장을 매각했고, 지난해 5공장을 중단한 바 있다. 올해는 1곳의 공장이 추가로 가동을 중단하는데, 중단한 공장은 모두 매각할 계획이다. 매각 후 남은 2곳의 공장은 신흥시장 수출 확대를 위한 기지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팰리세이드 등 고급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계획을 세웠다. 완전한 철수가 아닌 사업 재편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데 사실상 수익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이라기보단 현상 유지를 위한 전략이란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가 중국시장에 진출한지 20년이 흐른 지금, 달콤했던 중국몽(夢)에서 점점 깨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