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신용도 엇갈리니…주관사의 회사채 발행기업 선호도 달라졌다
입력 2023.07.06 07:00
    기업 곳간 어려워지며 회사채 발행 늘었지만
    롯데·CJ그룹은 재무건전성 악화로 투자 수요↓
    주관·인수단에선 미매각 감수해야 하나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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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 상반기 회사채 발행이 늘면서 증권사 커버리지 부서에는 활기가 돌고 있다. 경기침체, 금리인상 등으로 재무부담이 커진 대기업들이 채권시장을 찾는 발길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권사 내부에서는 일부 그룹사의 가파른 재무건전성 악화를 잠재적 리스크 요인으로 보고 있다. 신용등급 강등으로 투자수요가 줄어들면 미매각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를 인수하는 건 주관사의 몫이다. 평판이 크게 떨어진 롯데·CJ그룹 등은 주관사단에서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관찰된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2023년 상반기 채권자본시장(DC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해 SK그룹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7조5150억원으로 집계됐다. 대기업 집단 중 가장 큰 규모로 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 두 배가량 늘었다. 주요 은행의 그룹별 여신 한도가 거의 소진됐지만 반도체, 배터리 등 주력 사업 부문에 자금 소요가 지속된 영향이다.

      발행이 대폭 증가한 SK그룹은 주관사단의 최선호 발행사로 꼽힌다. 자금 소요로 회사채 시장을 찾는 일이 늘었지만 시장에서 우려할 정도로 재무 부담이 커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SK그룹은 SK텔레콤(AAA), SK하이닉스(AA) 등 우량등급을 가진 계열사를 필두로 회사채 투자 수요를 대거 흡수하면서 대표주관사의 실적 올리기에 한몫했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커버리지 관계자는 "SK그룹은 과거에나 지금이나 회사채 시장 발행 '넘버원 빅이슈어'고, 특히 올해는 리그테이블 순위를 가를 정도로 발행이 많았다"라며 "원래 SK그룹 주관경쟁이 치열하다. SK그룹은 SK증권을 필두로 대형증권사와 중소형사로 주관사풀과 인수풀을 마련해두고 주관·인수 계약을 고루 맺어 그때그때 전략적으로 파트너십을 정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기준 두 번째로 발행이 많았던 LG그룹도 주관사단이 선호하는 곳이다. 계열사들이 대체로 AA등급을 보유하며 재무사정이 우수해 투자자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는 평가가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AA), LG전자(AA), LG화학(AA+), LG이노텍(AA-), LG CNS(AA-) 등이 있다.

      다만 업황 악화로 영업적자를 기록 중인 LG디스플레이가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지난달 국내 신용평가사 3사는 LG디스플레이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일제히 하향했는데 금리 인상 추세로 시장 수요는 줄어든 반면 설비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뤄져 영업적자가 예견되기 때문이다. 이에 당분간 신규 발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LG그룹은 대체로 실적도 양호하고 시장점유율 방어도 잘하고 있어 투자자 사이에서 인기가 좋지만, LG디스플레이는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적자도 이어지고 있다. 향후 회사채 발행보다는 은행 대출을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최근 계열사 등급이 여럿 강등된 롯데그룹은 이전보다 주관사단에서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관찰된다. 최근 6월 정기평가에서 롯데케미칼(AA+→AA), 롯데지주(AA→AA-), 롯데캐피탈(AA-→A+), 롯데렌탈(AA-→A+)의 장기신용등급이 일제히 하향 조정됐다. 롯데그룹의 핵심 자회사인 롯데케미칼의 이익체력이 타격을 입자 계열통합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롯데그룹 채권 투자 수요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관사단 및 인수단은 미매각을 감수해야 한단 관측이 나온다. 롯데케미칼, 롯데물산 등은 올 초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가까스로 미매각을 면했다. 7월4일 진행된 롯데쇼핑 수요예측에서도 만기 2년의 단기물에만 수요가 집중됐다. 롯데그룹 입장에서도 미매각이 발생했을 경우 총액인수를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증권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CJ그룹은 회사채 시장에서 이전보다 존재감이 희미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CJ CGV는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채권 투자 수요가 더욱 감소, 발행 환경이 녹록지 않고, CJ ENM도 실적회복이 더뎌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게 기관투자자들 사이의 중론이다. 올해 상반기에 발행이 증가한 타대기업 그룹사 대비 증가 폭도 크지 않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제일 걱정되는 곳이 CJ그룹이다. CJ CGV 같은 경우 채권시장에 나오지 못하니 유상증자로 선회한 것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온다. 다양한 사업들을 영위 중이지만 양호한 실적을 기록 중인 계열사는 손에 꼽는다"라고 말했다.

      일부 그룹사의 경우 일반 회사채보다는 유상증자로 자금을 마련하는 등 자금조달 방법을 고민 중으로 알려진다. 아직 차입금 금리가 부담스러운 가운데 증시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내년에 금리가 인하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는 기대감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회사채 시장 관계자는 "다수의 발행사가 9월 채권 발행을 검토했지만, 최근엔 주저하는 분위기가 관찰된다. 제조업체들에 4~5%의 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증시 상황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라며 "상반기 조달을 끝낸 대기업 그룹사는 내년에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하고 있어 하반기엔 상반기보다 조달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