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논 카본'(친환경) 부각 자금조달…다시 시작된 '제값 받기'
입력 2023.07.14 07:00
    하반기 접어들며 늘어나는 SK그룹發 거래 움직임
    SK이노·E&S·에코플랜트 등 '친환경' 사업 부각 초점
    작년 거론된 '논카본' 분류 작업?…재평가 유도 전략
    종전 지배력 희석 방식 조달 반복될 경우 반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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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이 동력이 약해진 파이낸셜 스토리 재가동에 들어간 분위기다. SK이노베이션이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가운데 주력 비상장 계열사인 SK E&S나 SK에코플랜트도 추가 투자 유치를 앞두고 기업분할 등 방식을 고려 중이다. 

      시장에선 SK그룹이 '논(Non) 카본'으로 표현하는 친환경 신사업을 내세워 재차 제값 받기 전략에 돌입했단 평이 나온다. 

      SK그룹은 지난 상반기 SK온의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를 제외하면 기존 파이낸셜 스토리를 떠올리게 할 만한 행보를 보이지 못했다. 그룹 곳간 사정이 악화하며 기업공개(IPO)가 무산된 SK쉴더스를 좋은 가격에 매각하기도 했지만, 시중 자금을 활용해 그룹 전반 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과는 거리가 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반기로 접어들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지난달 SK이노베이션이 유상증자 계획을 깜짝 발표한 데 이어 SK그룹 발 거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추진 중인 거래 대부분은 친환경 사업 가치 부각에 초점이 맞춰진 모양새다. 

      SK이노베이션의 유상증자도 내부적으로 기존 주력인 정유와 화학 등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우려가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확인된다. 업황 불확실성에도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지만 장기 기업 가치 측면에서는 좌초자산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당초 지난 하반기부터 친환경 신사업 투자에 힘을 쏟을 예정이었으나 SK온 투자 유치가 난항을 겪으며 계획이 틀어진 바 있다. SK온이 필요한 자금을 거의 확보한 만큼 SK이노베이션도 더 늦기 전에 유상증자를 통해 친환경 사업 비중 확대 작업에 돌입한 셈이다. 

      이어 거론되기 시작한 SK E&S와 SK에코플랜트의 추가 조달 작업 역시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투자 업계에 따르면 그룹 수소 사업을 주도하는 SK E&S는 현재 추가 투자자 확보를 앞두고 지배구조 개편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연말까지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서 수 차례 투자를 유치하긴 했지만 시장에선 사실상 도시가스 자회사 매각에 가깝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조달한 자금으로 친환경 사업 비중을 가파르게 끌어올리고 있지만 분할 등 방식으로 떼어낼 경우 더 좋은 조건에 수월하게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대 1조원 규모 추가 투자 유치에 나선 SK에코플랜트도 마찬가지 행보로 받아들여진다. 이미 수년 전 사명에서 '건설'을 떼어낸 뒤 환경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친환경 기업으로 탈바꿈했지만 여전히 실적 절반 이상은 종전 건설 부문에 해당하는 솔루션 사업부가 책임지고 있다. 상장이건 신규 투자자 유치건 건설업 색채는 희석시키고 친환경 사업을 부각시키는 편이 유리하다.  

      시장에선 지난해 SK그룹 제주포럼에서 거론된 '논 카본' 분류 작업이 본격화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 SK그룹 계열사 기업 가치 제고 방안에 대한 외부 컨설팅 과정에서 '카본'과 '논 카본' 식으로 사업부를 분할해 재평가를 유도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유사한 흐름으로 보인다"라며 "논 카본에 해당하는 친환경 사업만 발라내면 후한 값에 새로 투자자를 확보하기도 쉽고 그룹 기업 가치에 기여할 수 있다는 복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분할 후 투자 유치를 통한 기업 가치 재평가 유도 및 회수 과정에서 시장 반감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SK그룹은 대기업 그룹사 중 상장 중간지주가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지배구조 상 SK온 외에도 모자회사 동시 상장이 예고된 계열사가 적지 않다. 친환경 사업 확대를 위한 조달 과정에서 재차 지배력 희석이 반복될 경우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시중 자금이 몰리는 신사업으로 색채를 빨리 바꾸는 게 SK그룹 강점이나 '에쿼티(equity) 장사'라는 오명도 따랐다"라며 "친환경 사업을 부각해 기업 가치 재평가를 유도하는 전략 자체를 문제 삼긴 어렵지만 종전 방식이 반복될 경우 시장 호응을 이끌어내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