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하면 사고 난다…더 까다로워지는 해외 PE 한국 투자
입력 2023.07.21 07:00
    아시아 권역 내 한국 주목도 올라갔지만
    시장 불안 이어지며 거래 종결 부담 커져
    위약금 키우고 블라인드 펀드 연계성 확보
    회수도 거래 종결 중요…W&I 보험은 필수
    높아진 기업결합 벽…문화적 차이도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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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들어 해외 사모펀드(PEF)들의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아시아 투자용 자금은 많은데 중국 투자는 어려워지면서 사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성장 여력도 있는 한국이 주목받는 분위기다. 각 PEF의 본사가 한국 투자를 독려하며 여러 해외 PEF가 한 거래에서 경쟁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이런 열기와는 별개로 한국 시장에서 거래하기는 점점 까다로워지는 분위기다. 시장이 어수선하고 거래 종결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진다. 해외 PEF와 거래하려는 곳들은 확실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는 PEF가 회수에 나설 때도 마찬가지다. 거래의 형태가 다양해지며 신경쓸 것도 느는 양상이다.

      해외 PEF가 거래를 철회했을 때 적용되는 위약벌 요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전까지는 이름난 대형 PEF의 경우 별다른 위약벌 조건이 없거나, 거래액의 3% 선에서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10%에 육박하는 경우도 나타나는 것으로 전해진다.

      블라인드펀드 운용사의 경우 출자자(LP)로부터 자금을 받아오기(Capital call) 전에는 매도자에 별도의 이행 보증금(Deposit)을 제시하기 어렵다. 때문에 위약벌 규모를 키워서라도 거래 종결의 확실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규모가 작거나 이름값이 떨어질 경우 요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

      PEF는 거래 시 특수목적법인(SPC)을 활용한다. 이 SPC에 지분출자금(Equity)을 넣고, SPC 명의로 대출(Loan)도 받는다. 다만 투자 확정 전까지는 SPC는 별다른 실체가 없는 껍데기 회사에 불과하다. 계약상 문제가 생겨 직접 당사자인 SPC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실질 자금원인 블라인드펀드, 나아가 LP에까지 실력 행사를 하기 쉽지 않다.

      IMM PE는 올해 에어퍼스트 소수지분을 블랙록자산운용에 매각했다. LP 배당을 위한 거래인 만큼 계약 이행을 두고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신경을 썼다. 계약 당사자는 SPC지만 문제가 생길 경우 블라인드펀드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작년 PI첨단소재 M&A 무산 사례가 이러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평가다. 작년말 베어링PEA는 선결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PI첨단소재 인수를 포기했고, 매각자 글랜우드PE는 올해 위약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위약벌은 500억원, 전체 거래규모(1조2750억원) 대비 약 3.9% 수준이다. 글랜우드PE는 SPC에 문제를 제기해도 결론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회사 가치에도 득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PEF는 보증금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위약벌 조건을 둬서 거래 이행을 강제한다”며 “거래 무산 사례가 많아지며 위약벌 요율도 높아지는 분위기인데 규모가 작거나 이름값이 떨어질수록 요율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해외 PEF가 투자회수에 나설 때도 확실한 끝맺음이 중요하다. 진술과 보장(W&I) 보험을 활용해 거래 후 분쟁에 휩싸이거나 법적다툼으로 이어지는 위험을 끊어내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일반 대기업은 지분이나 자산 매각 시 W&I 보험을 거의 활용하지 않지만, 해외 PEF는 거의 대부분 W&I 보험 가입을 계약 조건으로 명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선 LP에 이익을 배분한 후에도 사안에 따라 다시 환수할 수 있는 장치(Clawback)를 둔다. 이는 한국 PEF도 마찬가지지만, 좁은 국내 LP 시장을 감안하면 사실상 활용 가능성이 없다는 평가다. 해외 PEF가 국내 기업을 인수하면서 매각자를 LP로 참여시키는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해외 PEF는 환수 장치를 마련하는 게 당연하지만, 재투자하는 입장에선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해외 투자자의 국내 투자에 대한 제도적 장벽은 전보다 높아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부터 글로벌 M&A를 심사할 ‘국제기업결합과’를 신설해 운용 중이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처럼 국가 안보와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요소를 살피겠다는 것이다. EQT파트너스의 SK쉴더스 인수가 첫 심사 대상이었는데, 아직 사례가 많이 쌓이지 않아 심사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공정위 새 부서에서 기존 기업결합 심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질문을 하거나 자료를 요구하는 바람에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들이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